초록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어느 봄날의 일기』



봄날



어디서 왔는지 잠을 깨운다

아직은 저멀리 눈산인데

바람으로 다가와 초록을 흔든다

긴 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말없이 누웠던 몸이 일어난다

살아있다 꽁꽁 언 땅 속에서

초록 단장하고 기다리고 있다

봄날이





긴긴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계절이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봄날이 길거나 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길든 짧든 혹독하든 아니든 어떤 형태로든 겨울은 있고 봄 또한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태어나보니 이미 봄인 사람들은 겨울을 알지 못한다 열대지방의 사람들이 눈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춥다는 것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가 넓어지거나 자연 생태 환경이 바뀌면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삶을 살아가면서 늘 봄날인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닥친 겨울을 아무런 대책 없이 본의 아니게 살면 어떨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었다면 어떨까 좀 더 삶에 고통에 초연해질 수도 있고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아무리 겨울 뒤에 봄이 온다고 해도 결코 다시 올지 아닐지 다른 모습으로 올지 약한 강도로 올지 더 강한 강도로 올진 모르지만 겨울은 올 것이고 그 겨울을 지난겨울처럼 보내기 않겠다는 각오에서 트라우마는 극복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주 지나온 일들을 잊는다 하지만 머릿속 어느 부분에 저장되어 있다가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트라우마로 발현되기도 한다 다시 초록이 왔다 봄날이 다가왔다 지난겨울을 다 잊고 어두운 땅 속에서 초록을 준비한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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