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詩集『일일일 시一日一 詩』
비
비가 세차게 때린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으니
온몸을 푸르게 던져
수직으로 꽂힌다
팔다리에 젖어드는 빗물은
흔들지 않는 마음에는
한 방울도 스미지 않는다
빗길은 흥건한 슬픔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봄비가 내린다
비는 참 많은 이름을 가졌다 봄날 일을 한창 해야 하는데 그때 내리는 비를 '일비'라고 한다 나라면 쉬라고 '쉴비'라고 할 텐데 한창 더운 여름에는 비가 내리는 시원하다 그때는 다들 늘어져 누워서 잠을 잔다 그때 내리는 비를 잠비라고 한다 나라면 '선비'라고 할 텐데 누구나에게 고루 시원함을 나눠주는 착할 '선'을 써서, '떡비'는 가을추수를 끝내고 떡을 만들어 먹는 때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나눔 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술비'는 일없이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 비가 내리고 술생각이 나니 자연 그때 마시는 비를 '술비'라고 한다 나라면 '심심비'라 할 텐데
그 밖에도 비는 안개비 는개 그믐치 달구비 이슬비 목비 못비 발비 가랑비 실비 여우비 가루비 작살비 죽비 억수비 웃비 단비 바람비채찍비 흙비 등 비의 이름난 찾아도 50여 개는 족히 된다 그래서 비의 이름을 더 늘일 마음은 없다
단비는 땅속까지 흘러 잠을 깨우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마싹 마른땅에 흘러든 비는 어디건 가리지 않고 촉촉이 스며들어 가물어서 숨이 넘어갈 지경인 만물이 생명을 부여잡게 한다 살다 보면 인생에도 가끔은 단비가 내린다 그 비들도 삶을 촉촉하게 적시기도 하는 걸까 사람들은 어둡고 춥고 쓸쓸한 느낌들을 비와 연관 짓는다 바짝 마른 슬픔에 더하는 것도 눈물이고 그 슬픔으로 해가 보이지 않는 것도 비가 내리기 때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비는 반가운 손님이 될 때가 있고 두려운 손님이 될 때가 있다 생에 내리는 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적절히 내리는 비를 맞아 본 사람이 햇살의 가치를 알고 느낀다 초봄 새 생명이 피어나는 시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비 한여름 뙤약볕에 내리는 비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 한겨울 건조하여 산불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내리는 비의 고마움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마음이 따뜻하고 가슴에 여유를 지니며 살아가지 않을까 비는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인생의 비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비가 내리는 봄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