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 이솔

by 김지숙 작가의 집


꿈길로도 안 오시는 어머님이

이팝나무꽃되어 소복입고 오셨네요

오늘아침

어머님이 정성들여 지으신 이팝나무꽃밥을

눈으로 양껏 배불리 먹고요

올 한해도 어머님 생각하며 튼실하게 살겠어요

-김시종「이팝나무꽃」



C. G.융에 따르면 모성(母性)이란 집단무의식 존재의 황홀한 차원 생명수의 근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의식적으로 근원적인 여성의 이미지인 생명성을 지닌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곧 자신의 운명의 여자 형상으로 재현된다는 점에 유의한 바 있다(이승훈 1995) 그런데 이 모성 원형은 양가성을 띠며 이는 보편적인 인류의 모성적인 심리 또는 모성본능 출산 인내 포용 양육 보호의 본능과 같은 긍정성과 뜨거운 파괴적 야성 마취 독점욕 등의 부정성을 지닌다.

대개의 여성은 가부장적 의식을 내면화시키면서 인내하고 희생하며 살거나 반대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끝없는 노력하며 살아간다. 스스로의 욕망을 가슴 깊이 묻고 살지만 그러한 갈망 때문에 삶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가부장적 억압과 존재론적 상실감에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라캉의 말처럼 나르시즘적 자아 이상과 재결합하려는 욕망으로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래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욕망이 클수록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데, 이는 성격상 남성적 욕망과는 결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김시종의「이팝나무꽃」에서는 ‘이팝나무꽃’이 되어 오신 어머니의 눈으로 배불리 밥 먹는 자식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모성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꾸며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녀가 잘 성장하게 된다.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이팝나무꽃’을 소재로 삼은 이 시에서 ‘이팝나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 가지는 자녀를 기르는 밥의 이미지로 양육의 수단이 되는 무한한 긍정성을 지니지만 다른 한 가지는 앞서 언급된 할망 설화에서처럼 ‘이팝나무꽃’이 곧 ‘어머니’인 점에 착안한다면 살신성인의 의지를 표출하는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온몸을 던진 어머니를 이팝나무꽃으로 여기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존재로 자기 것이라고는 없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어머니의 상으로 비춰낸다



사랑한다고 습관적으로, 좋아서 말한다

발아래로 능선을 딛고 ‘야호’ 지르는 소리

사랑으로 몇 겹을 싸서 멀리 보낸다

다 커버린 아이가 ‘엄마 사랑해’ 말한다

그 깊고 떨리는 색깔의 음성

예민한 엄마의 가슴에 얹혀서 굳어버린 화석돌나무

-이솔 「돌나무 앞에 서서 외치다」 일부




유교문화의 산물인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성우월주의라는 근대적 사유 속에서도 여성의 피억압적 삶은 여전히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초래한 착취와 정복으로 훼손된 여성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으로 기존의 속성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른다.

이는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단정된 모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비가부장제적이고 성별에 기반을 두지 않는 창조적 비폭력으로서 포용과 생명의 원리를 지닌 본래의 삶 속에서 여성성을 찾아 가는 데에 중심을 둔 것으로 기존의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데 깊은 의미를 두었다고 하겠다

이솔의「솔나무 앞에」에서 화자는 여성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를 만난다. 그녀는 가슴 위에 화석돌나무를 얹고 키우며 나날을 살아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고통의 길을 따라 가면 그 끝에는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더한 모성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 무수한 헌신과 출산 보살핌 안락함을 대변하는 여성적 특성을 지닌 그녀는 분명 남성우월주의 입장에서는 짐 지운 모성성을 놓지 못 하고 살아왔으리라

또한 주체적 자각을 물론 자신의 욕망조차 억압당하지만 자식의 출세를 위해 참고 견디며 희생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조차 지워지고 상실된 채 자식을 위해 스스로 소리 없이 소멸되었으리라 이러한 어머니의 희생으로 성장한 아이는 뒤늦게 화석돌나무를 보면서 이를 깨닫고 어머니의 생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에는 여전히 기존의 가치관 속에서 살다간 변화되지 못한 모성성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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