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 류혜향

by 김지숙 작가의 집





묵은 옷장에서

옛날의 ⌜선데이 서울⌟ 이라는 주간지가 웃고 있다

요염한 포즈를 취한 여인의 나신이 울컥 다가온다

아, 이런 잡지가 어찌 옷장에 처박혀 있었는지

상자 밑에 깔린 채 반세기를 견뎌왔으니

들떴던 내 청춘과 함께 사랑받았던 여인을 깊이 숨긴 채

시치미를 떼듯 결백한 듯 살아왔구나

통속적인 주간지일망정 표지모델의 여인에게

정신을 잃었던 청춘 시절

아니, 부끄러운 시절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주간지⌜선데이 서울⌟ 표지 모델을 보니

그때 뛰었던 흥분이 미진으로 일어난다

여인은 예 그대로 매력적이다

세월과 무관하게 젊어 있는 여인은

언제까지 늙은 나를 유혹할 것인지,

아니면 유혹 당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김종목「 표지모델의 유혹」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또 때로는 유년기부터 이미 성적으로 우리들 눈에 별개의 것으로 비쳐진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 여자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수동성 교태 모성애에 어울리게 결정해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아이의 생활에 처음부터 개입하여 단정지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 인생의 직분을 떠맡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 하여 사회의 관습과 통념에 의해 길들여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시에 등장하는 잡지 모델 역시 그러한 통념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여자라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난파시키는 여신이다. 이는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존재이며 이브의 이미지로 본능을 상징한다. 이러한 여성성이 발현되는 경우, 여성은 어머니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독립된 개체로서 분리되려는 욕구를 지닌다.

왜냐하면 여성의 본능에도 자신을 발전시키거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갈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는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이거나 본능에 충실한 요부로서의 양상을 띠거나 변덕스럽고 일관성 없는 속이기를 잘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므로 어머니 역할 수행에는 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종목의 시「표지모델의 유혹」에서 화자는 ‘젊은 날에 들떴던 내 청춘과 함께 사랑받았던 여인’의 요염한 나신에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때 뛰었던 흥분이 미진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매력을 느끼는 한 표지모델의 여인에 ‘유혹할 것인지 유혹 당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 의문을 던진다.





문밖에서 잠은 서성대고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서 반짝거린다

한 알 다 달라고 떼쓰시던 어머니

떨리는 손으로

잠 한덩어리 반으로 자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숙면이 영원으로 이어질까봐

남겨진 시간을 나누듯

어머니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의 골짜기 깊어지면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반쪽씩 갈라주는 손길에서

마음의 두께를 느끼며

오늘 밤도

사랑을 나누듯 잠을 나눈다

-류혜향「마음의 두께」


W.게린Guεrin은 어머니를 대지의 어머니의 적극적인 양상으로 훌륭한 어머니, 이는 생의 원리 탄생 포근함 양육 보호 다산 성장 번영을 상징한다. 예로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업 풍요 결혼의 여성 데모텔 케레스을 든다. 반면, 대지의 어머니가 가지는 부정적 양상을 띤 무서운 어머니로 무당 여자 마법사 마녀 매춘부 요부 관능성 성적인 방종 공포 위험 암흑 해체 거세 죽음 을씨년스런 상황에서의 어두운 성향을 지닌 무의식을 상징한다.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로서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 공주 요조숙녀 영적인 성취의 화신으로 여긴다.

류혜향의「마음의 두께」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잔잔한 감정을 드러난다. 화자는 부모님의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두께를 느낀다. 화자의 아버지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 잠 한 덩어리 반으로 자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숙면이 영원으로 이어질까봐 남겨진 시간을 나누듯’에서 화자는 ‘문밖에서 잠이 서성거리는’ 어머니의 불면을 해소하기 위해 한 알의 약을 반으로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행여 몸이 약한 어머니가 약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못 볼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고 섬세한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물론 모성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동등관계로 생각하는 ‘영적 동반자로’서 여성을 한 자리에 놓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사람의 내면에는 다양한 양면성을 지닌다 때로는 훌륭한 어머니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능성을 지니기도 한다 훌륭한 여성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면을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니며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이를 뭉뚱거려 표상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긍정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W.게린의 잣대로 세상의 여자들을 바라보고 구분짓고 하는 것은 이분법적인 가치관을 잣대로 여성을 바라보고 양면으로 나누는 우를 범하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결같이 선한 존재인 신이 아니며 신조차도 노하기도 하니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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