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주

by 김지숙 작가의 집

이덕주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 최고의 수장이며 국가원수이자 실질 통치자이기도 하다 문問 사思 수修를 기초로 논리적으로 불교에 대한 공부방법을 제시하는 달라이 라마는 그 칭호를 몽골의 알탄칸에 의해 붙여졌다 그는 3대 달라이 라마인 소남 갸초에게 봉헌한 이름으로 그 법통을 잇는 화신들에게 사용되고 있으며 티베트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인정한다

불교에서는 수많은 윤회환생을 거쳐 모든 중생이 부모가 아니었던 적이 없기에 모든 부모에게 연민과 자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회란 중생이 번뇌와 업으로 삼계육도의 생사세계를 멈추지 않고 돌고 돌아 사망 후 다시 영혼이 되었다가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고 하며 삼라만성은 인연법에 의해 윤회한다




백 년 전, 입안에 삼킨 울음을 뱉지도 못한 채 또 걷는다. 환승으로 가는 도시를 향해 한 발을 뗀다. 경전을 왼손에 옮기며, 탁발승의 다리를 떠나지 못한다

탁발을 끝낸 빈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어디서 왔는지. 버림받았다는 몸을 버리지 못하는 건, 너의 생이다.

귀를 막아도 발목을 끄는 소리. 탐험을 좋아하던, 익숙하지 않은 그의 자리를 차지한다. 나의 다리는 숲에서 나와 도시를

떠돈다. 이 도시에 그의 흉내를 내는 입술이 거리를 메운다 라마 경전을 손에 든 탁발승의 환승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이덕주「또 다른 생」 전문



법구경에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주인, 그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경험한 것들의 원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책임져야 하고 그 결과 비로소 자신의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동을 산스크리트어로 Kamma(業)이라 한다. 또한 이는 몇 번이고 생을 윤회하면서 자신이 지은 업을 받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업을 쌓으면 존귀한 존재로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비천한 신부분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개달음을 얻어 해탈하게 되면 번뇌와 업을 끊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따라서 깨달은 자들을 부처라 한다 대부분은 억겁의 세월을 윤회하며 부처로 깨달음을 얻는다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자신과 타인의 전생에 대한 회상이 존재하며 이는 업과 연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윤회란 생성소멸을 반복하면서 변화하며 이 세계의 모든 현상에 윤화 아닌 것은 없으며 낮과 밤 춘하추동 생로병사 우주의 순화과 자연변화가 모두 이 윤회의 현상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윤회의 인정을 어려운 점은 기억에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전쟁의 죄로 현생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덕주의 시「또 다른 생」에서는 ‘백 년 전’ ‘탁발승의 환승’이라는 표현에서 윤회에 근거한 삶의 가치관이 나타난다. 한 때는 탁발승이었던 전생의 화자는 현생에서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도시를 떠돈다. 이는 자기가 행동한 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 과보를 자기가 받는 철저한 자기 책임주의 사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존을 위한 부분에서만큼은 공정한 분배를 꿈꾼다 따라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이나 재화를 불공정하게 분배한다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한 불공정의 원인이 타고난 능력 운과 같은 상황의 공정성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해서 윤회를 내세우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행위에 따라 과거의 업이 발현되기도 하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현재의 행위 여부에 중심을 두어 사람을 평가한다

시에서 화자는 윤회의 자리에 서서 윤회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생의 모든 것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담담한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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