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화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강정화


암실暗室은 밖으로부터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만들어진 방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곳이나 필름을 현상하는 곳은 대표적인 암실에 해당된다 영화관을 생각해 보면 암실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암실에서는 단 한줄기 빛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수많은 형태의 시공간을 눈앞에 데려와서는 사람의 감정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어둡다는 장소적 특성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속에서 영상의 움직임을 통하여 표현된 요소들을 보고 보이는 가운데 일련의 상상과 지각 속에서 관람객이 함께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제까지 살았던 삐걱이는 방 말고

거꾸로 누워도 안락한 풍경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방에

오른쪽에 국화향 끌어다 넣고

왼쪽에 큰 눈 닮은 그림자 세우고

그 모습 줄지어 서게 한 뒤

세월 가도 변하지 않는 그리움으로

작업할 나만의 작업실 하나 갖고 싶네


여태껏 살아온 그런 분위기 말고

파란색으로 찍으면 파랑새 되고

노란색으로 그리면 노란 풍금소리 나올

구름기차 타고 어디라도 당도할

도깨비방망이 문 앞에 두고

아무도 탐내지 않을 나만의 사진첩에서

암호로 부르면 뛰어나올

단둘이 접선이 되는 통로 끝에

그리움 가득한 암실 하나 갖고 싶네.

-강정화 「암실 하나」




강정화의 시 「암실 하나」에서 화자는 암실에서 추억을 영화처럼 떠올리고 미래를 상상하고 그리움을 완성하는 공간으로 삼고자 한다 화자는 비언어적 표현들은 시각적 요소들로 전달한다. 물론 언어적 기호는 사실 내용을 전달하는 주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삐꺽이는’ ‘안락한’ ‘끌어다 넣고’ ‘찍으면’ ‘뛰어나올’ ‘접선되는’ 등과 같은 생래적이고도 심리적 행동 정보를 비언어적 요소로 변용시켜 전달한다. 이러한 비언어적 요소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언어적 표현인 ‘그립다’는 자신의 내적 감정을 훨씬 효과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 시의 화자는 과거의 그러지 못한 삶을 바로 지금 암실이라는 시공간을 택해서 시작하려고 한다. 가장 바라는 바는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화자가 바라고 원하는 단 한 사람과 ‘접선’이 되는 그런 공간의 주인공이 되려 한다. 남들의 반응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온전히 믿고 행하겠다는 소망을 표출한다. 단지 그런 사람이 사진첩 속에 튀어나와야 하는 ‘추억’ 속의 그리움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암실은 은둔생활을 뜻한다. 화자는 추억 속의 사람과 동일선상에 자신을 두고 떠나간 그와 함께 하려는 소망은 현재 존재하는 공간에서 갖는 모든 감각에 대한 거부를 포함한다. 혼자서는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화자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들 공간을 찾고 있다. 그래서 화자가 존재하는 현재 공간과는 별개의 암실 속에서 자신을 떠나간 대상을 그리워하고, 그 공간에서는 자신이 이끌어 나갈 주도적 삶의 의지를 발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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