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소리

by 김지숙 작가의 집

람소리

솔바람 소리




베란다에 앉으면

소나무 갈기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언제 또다시 이 소리들에

마음이 흔들릴까


솔바람소리는

어릴 적 기차소리보다

둥글게 말려 귓전에 들린다

이런 소리를 언제까지

귀담아듣고 앉았을까


들으면 안다 시간이 가는 소리

세월이 흐르는 소리

추억이 커지는 소리

솔바람에 담긴 채 아찔한 순간을

담아낸 수많은 소리들의

숨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린다




바람 부는 날 아침 일찍 베란다에 앉으면 바람소리가 난다 솔바람소리 자작나무 소리가 다르듯이 아침바람 소리 낮바람 소리 저녁 바람소리도 다르다 아니 바람소리는 시시각각 다르다 바닷물이 하늘이 매 순간 다른 모습이듯이 바람소리도 늘 그랬다 다만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문득 바람소리에도 형태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겨울바람은 고드름처럼 차갑고 뾰족하다면 봄바람은 연분홍 꽃잎처럼 부드럽다 봄날이 차가울 수도 있지만 그 차가움은 부드러운 차가움이다 가울 바람은 끼칠까츨한 성품을 지닌 아이 같다 만지면 손에 가시가 들 것 같은 바람이 분다 여름 바람이야 태풍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느끼기는 쉬지 않지만 그래도 무더위를 양 어깨에 얹고 가만히 느끼면 작은 한줄기의 바람이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조금 더우면 에어컨에 조금 추우면 히터를 켜고 사는 삶에 익숙해 바람이란 제대로 그 모양을 내어 줄까 의심스럽지만 바람을 느끼기에 요즘처럼 적당한 때는 없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수평선에서부터 둥글게 싣고 온 목소리를 한껏 부풀려 내고 있다 뱃고동 소리를 들어서일까

어찌 들으면 자동차 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뱃고동 소리를 닮은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세월과 시간을 녹이는 노을과 더불어 조금씩 더 커져가는 저녁이다

어제 오랜만에 숲으로 들어갔다 최근에 분 바람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있디 왠지 봄에 부는 바람은 아무리 커다란 상처를 안겨도 믿기지 않는다 눈앞에서 나무들이 픽픽 쓰러져 있고 숲은 쓰러진 나무로 발걸음을 떼어 놓기가 힘들 지경이다 거대한 나무들도 곧 쓰러질 듯 뿌리가 뽑힌 채 불안하다 이는 흙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때문일 거다

이 일대의 흙들은 황토 흙이 대부분이고 물이 섞이면 빌가루를 갠 것처럼 뭉쳐져서 돌들이나 바위가 섞인 다른 흙들처럼 지지를 하지 못한다 드러누운 커다란 나무 아래를 보면 대부분 누런 황토에 자리 잡았다 자잘한 돌하나 없다 물이 없으면 땅을 머지처럼 가볍고 가루처럼 부드럽다 자연 생존환경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하니 솔방울을 많이 달고 그래서 주변에 떨어져 발아되어 빼곡히 새끼들을 키우고 그러다 보니 햇볕을 받지 못해 어느 정도 자라면 고사하고 건조기가 되면 죽은 나무끼리 서로 몸을 부대껴서 불꽃이 일고 쓰러진 나무들은 죽어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처음 불꽃이 방화가 아니라면 이런 순으로 불이 나는 것 같다 오래전에 쓰러져 죽은 나무도 숲을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랫지방에 살 때에는 숲지킴이가 너무 많아서 군데군데 산 초입에 들어서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숲지킴이나 숲지킴이 순찰 차량을 본 적이 없다

소나무 숲이 둘러싸인 해돋이가 보이는 바다를 멀리 두고 있는 지금의 펜션에 산다는 것이 참 좋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산불이 나고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을 가까이서 접하다 보니 누가 담뱃불을 던지면 어쩌나 불이 나면 어쩌나 불이 나면 무엇을 들고나가야 하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주변에서 산불이 난 소식들이 들리면 심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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