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지숙 작가의 집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한시간도 하루도 길기만 하다


그러지 않았는데

늘 바쁘기만 했는데

오늘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태풍에 꺾인 굵은 가지처럼

날다 떨어진 행글라이더처럼

문득 온 몸이 움츠려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괜히 우울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먹는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일도 시들하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고 그냥 베란다의 꽃들을 살핀다 벌레가 들었는지 뿌리파리는 어디가 알을 낳았는지 방금 깨어난 뿌리파리의 새끼들은 어떻게 할 지 등등에 마음을 써 본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꽃에 뿌리려든 계피가루 푼 물을 씽크대에 올려두고는 모르고 더듬거리다가 모르고 그냥 마셨다 기분이 묘했다 한번도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뱉아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이미 위 속으로 직행했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생수가 아니고 지하수에 계피가루만 탄 것이니 특별히 야단을 떨 필요가 없다 이 동네 어느 식당이든 지하수로 음식을 만드니 음식의 국물은 당연히 지하수를 들이키는 일일터이니 말이다

원효도 해골바가지에 들어 있던 물을 기분 좋게 마셨다고 하더니 나도 첫 모금은 아무 생각없이 들이켰다 벌컥 마시다가 계피향이 올라오면서 문득 어제 밤에 계피를 탄 지하수 물이 떠올랐다 그래도 농약이나 비료를 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일들이 있어서인지 오늘은 그냥 방바닥에 납짝 엎드려 이런 저런 생각만 한다 비내리는 날이나 공기가 나쁜 날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제는 꽤 여러 날을 이 동네에서 살아서인지 이제는 그다지 궁금한 곳은 없다 그 곳도 그냥 그러려니 저 곳도 그냥 그러려니 생각을 하니 동네를 이곳저곳 다니던 마음도 시큰둥하다 재미없다 시골마을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래도 깨 흥미로운 곳이었는데, 건조주의보가 내리면서 신경이 더 쓰인다

잠 자고 있는데 불이 나면 어쩌나 소나무 숲이 불쏘시개라는데 그곳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니 잠 들기 전에 불안하고 잠 속에서도 가끔 불이 나는 꿈을 꾼다 그래도 요즘은 비가 내리고 습기가 차니 불걱정은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같은 나라 안이라지만 숲 속은 참 다르다 소나무 숲이 위협적이라는 것도 쓰러져 죽은 나무들이 장작이 된다는 것도 아는 것이 우울한 기분을 더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 숲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걸까 잔잔한 죽은 소나무들을 덜어내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혀 바람이 불어도 서로에게 부딪치지 않게 하는 일들을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군사상의 문제도 있고 인건비가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관리가 안되니 특히 강원도에 불이 더 자주 나는건 아닐까

문제는 여기 살지 않을 때는 불이 나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곳에 살면서부터는 산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걸까 비오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비내리는 날은 적어도 산불이 나지는 않을테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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