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백지영·김신용

by 김지숙 작가의 집

전통가옥 보존구역 내 한옥들은

전신에 흙먼지를 털지 않은 채 고스란히

삭아내려도 有口無言이라는 듯

시간의 발자국 아래 깊이 찍히고 있다.

그 일대만이 도드라지게 폐허로 함몰되는

결핍이 상호처럼 눈부시다.

-이수익「결핍도 때로는 눈부시다」



정적뿐인 마을의 빈집들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햇살은 한가로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무료한 졸음을 졸고

마당의 꽃들은

바람에 나직히 몸을 굽히며

지나간 이야기 혼자 속삭인다

모두가 떠나가버린 푸석한 마당

외로움 안고 버티는 대문은

찾아주는 발 길 오늘도 기다린다.

-백지영, 「양동 마을 스케치」



폐가 앞에 서면, 문득 풀들이 묵언 수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떠올릴 말 있으면 풀꽃 한 송이 피워 내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 떠나 버려진 것들 데리고, 마치 부처의 苦行像처럼

뼈만 앙상해질 때까지 견디고 있는 것 같은 풀들

인적 끊겨 길 잃은 것들, 그래도 못난이 부처들처럼

세월을 견디는 그것들을 껴안고, 가만히 제 집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흙벽 무너지고 넝쿨풀 우거진 폐가

사람살이 떠나 풍화에 몸 맡긴 집,

그 세월의 무게 못견뎌 문짝 하나가 떨어져도, 제 팔 하나 뚝떼어 던져주고

홀로 뒹구는 장독대의 빈 항아리, 마치 소신 공양하듯 껴안고 등신불이 되는

풀들, 그렇게 풀들의 집으로 고요히 돌아가고 있는 폐가

그 폐가 앞에 서면

마치 풀들이, 설산 고행을 하듯 모든 길 잃은 것들 데리고 귀향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풀의 집은 풀이듯 데려와, 제 살의 흰죽 떠먹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김신용, 「폐가 앞에서」


이수익의 시 「결핍도 때로는 눈부시다」에 표현된 ‘집’은 사람의 존재가 가 닿지 않은 ‘폐허’로 읽혀진다. 오랜 세월을 품고 차츰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집’은 시간 속에서 생명성을 상실한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쉽게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집’의 존재가 화자에게는 오히려 사라지는 가운데, 녹아있는 생명의 결핍을 오히려 눈부시다 여긴다. 화자에게는 ‘집’은 오랜 세월을 가슴에 품어온 ‘한’의 표상으로 익혀진다.

백지영의 시 「양동마을 스케치」에 표현된 ‘집’은 빈집으로 폐허가 된 모양 사람하나 오고가지 않는다. 사람의 흔적 대신 햇살이 툇마루에 앉아 졸음을 졸고 있고, 바람이 대신 찾아와 마당과 이야기하고 있는 고적한 곳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팍팍한 ‘집’이긴 하지만 햇살, 꽃, 바람 등이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공간이다.

김신용의 시「폐가 앞에서」)의 ‘집’은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풀들이 고행하는 양 견디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풍파에 못 이겨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간 집은 이미 따뜻함을 상실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집’은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어버린 사람이 道도 法도 벗어던진 해탈자의 모습으로까지 그려진다.

앞서 언급된 시에 나타나는 ‘집’은 화자의 내면을 표출하는 매개가 되는 ‘집’과 그림처럼 바라보는 정경으로서의 ‘집’으로 양분된다. 전자의 경우, ‘집’은 ‘따뜻하고 안락함을 지닌 공간으로서의 가정’을 연상하거나 따뜻함을 상실하고 이를 갈망하는 정서의 양방향으로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 ‘집’은 주로 외형적 의미를 취하며, ‘페허’ ‘廢家’ 등으로 표현되어 인기척이 끊이고 따뜻한 가정의 기능은 상실된 채 모든 고통을 겪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수만큼 다양한 현실을 살아가지만 저마다 동상이몽을 하며 그들의 '집' 속에 존재한다. 그들이 사는 ‘집’은 그들의 수만큼 다양한 삶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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