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형은 과거 인물, 사건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 경우이다. 유구한 전통문화유산을 현대라는 토양 속으로 끌어 들여 수용할 경우, 스스로 그 문화를 체계화 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는 수용의 한계를 안게 된다. 후자의 경우, 당대의 시대적 요청에 현재 얼마나 부응하는가에 따라 노력이 드러난다.
과거의 문화유산을 현재의 시점으로 끌어 들이는 경우, 역사와의 연속선상에서 현실적 재창조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새로운 생존을 위한 전투적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또한 고유의 문화적 유산을 축적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유구한 전통 문화를 재창조하려는 몸짓이 필요하다
박물관 마당에
금방이라도 흙물이 배어나올 것 같은
빗살무늬토기가 구워지고 있다
략
짐승의 뒤를 좇던 사내의 숨소리
나뭇잎을 건드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스르륵 무너진다.
머뭇, 빗금진다.
내 몸에도 빗금이 많다.
가슴은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르고
돌아보지 못했던 등짝이 시리다.
-유행두 「빗살무늬토기」일부
적막한 고분 속 오랜 부활을 꿈꾸던
가야의 영혼들이여
이제 분연히 일어나
축제의 마당에 나와 함께 춤추어라
우륵의 가야금 소리에
질금질금 배설하던 아라야
치맛단 동여매고 어우러져라.
-나갑순 「가야고분, 북소리」일부
집을 사면 집을 지으며
풍차모양의 태양문양을 새겨넣고
두어마리 신어가 마주보고 았는
아유다풍으로 꾸밀거예요.
드라비다어로 부르는 원주민의
노래가 들리는 체류공간
토기찻잔에 장군차를 준비하고
-김우정 「구야국으로 보내는 편지 2」일부
얼크레 설크레 칡넝쿨 사랑을 나누었거나
가락국 부국강병에 앞장 설 부마
영웅호걸 황세 앞길 막을 수 없어
당산나무 옹이 사이로 아픈 가슴 부여쥐고
사랑앓이로 먼저 저세상 가버린 여의
한없이 가슴 쓸어내리며 흘린 눈물은
봉황대 언덕에 차꽃으로 피어
하얀자국으로 선연하네.
-이복희 「여의, 그리고 황세」일부-
오늘도
텅 빈 봉황대 대숲 언덕에서
가야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가야로 돌아갈 하늘을 쳐다보다
..
대숲으로 들어갔다.
김용웅「대나무 숲에서」일부
할머니는
밤마다 둥근 청동거울을 닦아
우리 가슴 속 어둠을 비추신다.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살고 있는 나도
검은 머리에 하나 둘 흰머리 생기니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청동거울 닦을 시간이 온 것 같다.
이제야 금관가야 여인이 되나보다
-하선영 「오늘밤 청동거울을 닦다」일부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자태의 왕비가 솔향기 가득 품고 사뿐사뿐걸어 나올 것같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이 왕비의 산책시간일지도 몰라’ ‘어쩌면 이 솔향기는 왕비의 향기일지도 모르고’
-류현옥 「솔바람 타고 온 가야의 향기」일부-
시인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이며 언어 예술가들의 주된 도구이기도 하다. 시인이 사고와 사물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음미하는 과정을 거쳐, 시로 표현되는 순간 시는 생명성을 얻는다. 그래서 한편의 시에는 시인의 상처, 생각, 감정들이 녹아있으며, 따라서 시는 시인의 영혼을 표현하는 자기 존재의 표정이 되기도 한다.
유행두의 시는 빗살무늬 토기를 통해 과거의 가야를 본다. 원시시대 사냥하는 사내를 느끼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가 하면 청동기시대, 가야의 옛모습과 현재의 자신을 결부지어 생각한다.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과거를 과감하게 현재의 자신에게 끌어들여 독자의 공감을 부추긴다. 이를 통해 화자는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여 원시 세계 속의 자기 존재감을 인정받고자 한다.
말하자면 이 시는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의 민무늬토기, 가야김해의 돗자리무늬, 창살무늬를 한 공간에 공존시켰다 하지만 시상은 빗살무늬에 집중시켜 독자에게 가야문화유산의 공유하리라 설득력한다. 빗살무늬는 신석기 시대에 출현한 토기무늬이며 청동기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민무늬 토기가 출현한다.
김해토기(BC 1세기~ AD 3세기, 회현리 조개무지발굴)는 선사시대 민무늬토기와 신라토기의 과도기에 해당되는 토기를 말하며 기면에 돗자리 무늬, 창살무늬 같은 인문(印文)이 새겨져 있다. 이를 참고하자면 이 시의 화자는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그리고 현대를 넘나들면서 공간의 해체를 통해 여전히 시켜놓고 있다.
나갑순의 시에는 과거 삶의 현장이 현재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재현되기를 갈망하는 화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문화는 놀이를 근저로 이루어진다. 바로 그 놀이가 몸을 통해서 실현되는 부분이 축제이다. 몸짓이 살아있는 표현이 축제이다. 이 시에서는 표현의 중심에 몸을 두고 축제를 하는 가운데 고분 속에 부활을 꿈꾸며 자는 듯 누워있는 ‘가야의 영혼’들이 축제에 동참하기를 갈망한다.
김우정의 시는 현재 속에 과거의 생활문화를 끌어들인다. ‘태양문양’ ‘아유다풍’ ‘드라비다어’와 같은 어휘 사용하여 가야에 대한 환영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과거를 현재 속에 혼용시킨다. 인간의 삶은 끝없는 고민의 미로이다. 하지만 화자는 이러한 복잡한 삶의 끝없는 고민들을 과거 문화와의 융합으로 무화시켜 현실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복희의 시의 화자는 봉황대 언덕을 거닐면서 부국 강병하려는 가야국의 부마로 떠나버린 황세를 그리워하는 여의의 심정으로 헤아려 본다. 사랑하는 황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어 그리워하다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여의는 하얀 차 꽃으로 피어 화자의 눈앞에 어른댄다. 여의의 가련함이 마치 현재 속에서 존재하는 모습으로 표현하여 현재 공간 속에 화자가 과거 여의의 아픔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그밖에도 김용웅의 시에서 '봉황대 대숲 언덕' 하선영의 시에서는 '청동거울' '금관가야 여인' 류현옥의 글에서는 '왕비의 산책시간'이라고 하여 과거 이 지역의 특성을 환기시키는 대목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작품화하고 있다
시란 시인의 체세포 곳곳에 축적된 무수한 기억과 상처 상념들이 시인의 내면에 있는 미세하면서도 강한 외침들과 화합하여 씨앗이 되고 타인의 가슴으로 들어가 시인과 소통한다. 이렇게 독자는 시를 통해 시인이 감지한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꿈꾼다.
따라서 시인이 과거의 문화 유산을 소재로 시를 쓰고자 할 때에는 과감하게 자신의 사고를 풀어헤치거나 실험하거나, 아니면 강하게 절제하여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야만 개성이 강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감은 다소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의 시들은 이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점에서 지역성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