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잠깐 편지를 잊었다
한 때는 생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삶을 고백하고
날밤을 새며 읽고 쓰던 일들이
이제는 가물가물 옛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쓴 편지는 누구에게 보냈나
그리고 편지는 또 언제 받았던가
편지를 쓰지 않고도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때는 왜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을까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면 우체부의 등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을까
한때 꽃잎보다 곱던 편지들은
이제 한통도 남아 있지 않고
무슨 말들을 주고받았는지
긴긴 사연도 모두 잊었다
묻고 담하고 안부 전하던 편지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잘 있나>
짤막한 문자하나 허공에 던진다
오래전에는 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그래서 필체도 나름 정리가 되고 글씨 잘 쓴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마도 편지를 자주 쓴 사람치고 글씨체가 나쁜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편지를 쓴 지는 하도 오래 되어 마지막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문득 우체부가 등기를 가져오면서 편지를 주고받던 생각이 났다 우표가 새로 나오면 꽃처럼 예쁜 그 우표를 사서 편지에 부치면 위로가 됐다 정갈한 편지지를 사고 봉투를 붙이고 나면 날밤을 새기도 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우체통에 꽂혀있는 편지를 발견하면 온통 기쁨으로 설레던 날들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편지봉투를 뜯는 일처럼 여겨졌고 내 마음속으로 들이는 일이 편지를 보내는 일처럼 느껴져 한 자 한 자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몇 번을 찢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면서 편지를 쓰고 나면 그게 위로가 되고 때로는 밤새며 쓴 편지를 읽어보면 도무지 보낼 수가 없어서 찢곤 했다
나는 말하고 너는 읽고 네가 말하고 나는 읽기만 할 뿐인데, 왠지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 사이는 아무리 오래 세월이 지나고도 낯설지가 않고 다정하다 한 때 마음속을 들락거려서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서 사는지 묻지 않아도 그저 편지를 주고받던 그날들로 되돌아가서 정답기만 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키운 마음들이 허투루 자라지는 않았나 보다 불쑥 만나도 언제나 반가운 마음이다 이제는 편지보다는 시를 쓴다 누구에겐가 가닿아 마음이 따뜻하기를 바라는 편지 같은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