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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육아-번외 편 2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by 이파리

깊은 병 중에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으로 막내딸과 외손자를 돌봐주시던 엄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해를 넘기고 봄이 시작될 무렵 엄마는 끝내 입원을 하셨다. 결국 우리 집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만 긴 여행길의 시작. 처음 진단 이후로 늘 조마조마하던 마음에 덜커덕, ‘이게 끝이구나’ 싶은 어두운 예감이 들었지만,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아이 맡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는 이제 막 태어난 지 6개월을 넘긴 시점이었다.

다행히 비교적 가까운 곳에 동갑인 우리 부부보다 두 살 위인 손위 시누이가 살고 계셨다. 우리보다 한참 먼저,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한 그녀는 외동아들을 막 중학교에 보낸 육아 선배이자 아이를 남편만큼이나 예뻐하는 사람이었다.

결혼 무렵, 아직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의 시누이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살림살이며, 남편과 아들을 세심하게 돌보는 시누이에게서 감동을 느꼈다. 순도 100%의 사랑을 본 느낌이었다고 할까.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위하는 일이 여자의 일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사랑보다는 이성의 지배를 받던 내가 시누이가 빚어낸 ‘사랑’의 실재를 보았기 때문이었고, 덕분에 결혼은 어쩌면 생각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믿음을 얻었다.

사랑이 많은 시누이는 조카 맡길 데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남동생 내외를 안쓰럽게 여기고는 조건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셨다. 아이 맡기기에 마음이 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시누이가 지극히 사랑하는 외동아들이 이제 막 사춘기 중학생이 되어 성장의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청소년의 겪는 온갖 모순과 갈등을 안다. 또, 부모의 세심한 이해와 인내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특히나 외동으로 자랐고, 엄마의 전폭적인 애정과 관심, 완전한 공감과 이해를 독점하던 중학생 조카의 일상에 갑자기 말도 못 하는 사촌 동생이 등장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파괴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아이는 수시로 형을 귀찮게 하고, 떼를 쓰거나 울고, 형의 물건을 흩트리며 작은 폭군 노릇을 했을 터, 게다가 하필 중학교 입학에 맞추어 우리 아이가 등장을 해버렸으니... 지금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여전히 유머가 넘치고 너그러운 그 조카는 어린 나이에도 불평 없이 아기에게 엄마의 시간과 애정을 양보했고, 또 가장 부족할 수 있었던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와 장난을 제공해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카와 시누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조용히 해냈는지, 내 아이를 위해 무엇을 줄이고, 포기하고, 미루었는지를 깨닫는다. 나만의 고립된 세상에 머물며, 내 시간을 방해받기를 무엇보다 꺼리던 내게 시누이와 어린 조카는 타 존재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세상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스승이기도 했다.

의사소통도 안 되는 어린아이를 종일 돌보면서 시누이는 먼저 자신의 휴식과 자유를 포기하였다. 남편과 중학생 아들의 아침 뒷바라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기저귀 가방과 함께 들이닥치는 아기를 받아 들고 숨 가쁜 이어달리기를 해야 했다. 아이는 돌아서는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서 한바탕 울어댔고, 그치고 나면 대단한 식욕을 발휘했다. 당연히 쉼 없는 배설과 뒤처리에 시누이의 손을 마를 새가 없었다. 게다가 솥단지 밑바닥까지 반짝반짝 윤을 내는 깔끔한 성품이었는지라, 아이의 엉덩이는 한 번도 짓무른 적이 없었고, 집을 나설 때보다 훨씬 야무진 매무새로 귀가하곤 했다. 기저귀 가방에 대충 개켜 넣은 옷가지나 아이용품은 시누이의 손에서 더 깨끗하고 말끔해졌고, 나는 ‘이 거즈 손수건이 이렇게 뽀얀 색이었다고?’를 연발하며 넙죽넙죽 수고의 결과를 향유했지만, 끝내 그 정갈함에는 이르지 못했다.

아이는 그런 고모와 순식간에 정이 들었다. 아침에 아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던 아이는 집에 올 땐 고모와 헤어지기 싫다고 울어댔다. 아이는 고모 옆에서 젖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걸음마를 배웠다. 요즘은 세 돌이 지나서도 기저귀를 하는 아기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린 아기에게 뭔가를 조절하도록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돌이 채 되기도 전, 아이는 기저귀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먹성도 좋고 살집도 있던 아이의 엉덩이 형편을 근심하던 시누이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유아 변기 이용을 유도하고, 성공했을 때마다 엄청난 환호와 칭찬으로 격려해준 덕분이었다. 아이는 배변 훈련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축축하고 더운 기저귀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좋았는지 큰 실수 없이(나의 입장일 뿐) 기저귀를 떼었고, 덜떨어진 엄마인 나는 이번에도 뒤늦게야 기저귀를 떼려면 양육자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아이의 배변 실수로 인한 자잘한 잡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고모 집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가 나기 시작했다. 하얀 쌀알처럼 작은 이가 잇몸에서 돋아나는 모습은 사랑스럽지만, 잇몸이 근질거리고 아파서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젖을 먹다가 작은 이빨로 물기라도 하면 나의 얕은 모성애는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 젖을 떼야만 했다. 약국에서 쓴 약을 사다 바르고, 붕대로 가슴을 동여맸다. 썩 기능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몇 달이나 물고 빨던 엄마젖이 사라진 것을 본 아이는 놀라 당황했고,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아이는 고모 옆에서 이틀인가 사흘을 지내고서야 젖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 며칠간 아이가 얼마나 떼를 쓰며 젖 내놓으라고 울어댔을지... 죄송합니다, 형님!

젖을 뗀 아기는 물컹한 이유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어른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탐도 많은 아기 밥을 매 끼니 어떻게 해 먹이셨을지. 무엇을 만들어 먹였는지 내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시누이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셨다는 뜻일 터이다. 소꿉놀이처럼 자잘해서 더 일거리가 많은 아이의 밥 먹이기.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그 일과. 나는 그 감사를 아직도 전달하지 못했다.

아이는 고모가 잡아주는 손길에 의지하고, 형의 책상을 흩트리며 걸음마를 배웠고, 이내 바깥에 나가 놀자고 떼를 썼다. 붕붕카의 바퀴가 빠지도록 언덕을 질주했으며 놀이터에서 흙놀이를 했다. 그때마다 시누이는 몇 시간이고 어린 조카가 싫증이 날 때까지 바로 옆에 서서 주시하고 있었음을 나는 잘 안다. 내가 지겹고 지루해서 남편에게 미루기 일쑤였던 그 과정들. 당신의 아들을 키우면서 다 끝냈다고 생각했을 그 시간들을 어린 조카를 위해 다시 시작한 젊은 시누이께 나의 시간을 잘라드리고만 싶다.

늘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준 시누이 덕분에 아이는 일찍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빠빠 뿜 마’처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의성어를 기분 좋을 때면 뱉어내곤 했다. 아마도 당시에 제일 좋아하던 아빠와 고모를 동시에 부르는 말이 아니었을까. 아이는 고모와 형에게서 말을 배우고 어휘를 늘려나갔다. 세 돌 무렵 어느 날에는 아이가 글자를 읽어서 우리를 놀라게도 했다. 시누이가 유아용 학습지로 아이를 가르치신 것이었다. 지금도 ‘고모 안 계셨으면 넌 아직도 문맹일 거’라며 아이와 농담을 하곤 한다.

볕이 드는 베란다 장판 위에 아이와 앉아 글자를 가르치던 시누이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큰 소리 한 번 없이 아이를 가르친 그 사랑의 근원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감탄할 뿐이다. 글자나 숫자를 배운 것은 물론, 아이는 인사하는 법, 절제하는 법, 사랑을 표현하고 감사하며 예쁘게 말하는 법 들을 고모에게서 배워왔다. 나는 아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때마다 신기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랜 반복과 시행착오와 양육자의 인내로 얻어진 결과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해냈다면 엄청난 자부심과 자랑으로 떠들썩했을 일들을 정말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네 아이가 착해서 그렇다는 말 한마디로 덮으신 노고와 근심과 긴장을 나는 끝내 완전히는 알지 못하리라.

아이는 엄마보다는 고모의 등에 업혀 편안해했고, 한없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보살핌 덕분에 사랑을 믿는 아이가 되었다. 양육자로부터 상처 입은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사랑받는 아이로 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었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자주 고함을 지르고 행동이 굼뜬 아이를 못 견뎌 화를 냈다. 그러면서 더 어린아이를 오직 사랑으로만 길러준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곤 했다. 덕분에 이제는 사랑이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대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작용임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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