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육아가 가능하려면
아이가 자라고 말로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나의 엄마 노릇도 제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넘치도록 받았던 아빠의 사랑을 마음에 새긴 아이는 여전히 아빠를 좋아했다.
감추어 두었던 남편의 육아 공로 한 가지를 공개하면서 남편의 육아기를 마치려고 한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작은 수첩에 첫 기록을 남기기 시작해서 쭈욱 육아 일기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아이의 일기에 엄마, 아빠의 생각과 답장이 담긴 아이의 책을 해마다 만들어 주었다. 정식 출판사에서 도서 번호를 부여받은 출판물은 아니지만, 매해 겨울이면 일 년 동안의 성장기를 타이핑해서 사진과 그림을 넣고, 제본까지 공을 들이던 그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유아기 전체를 관통하는 <해마 아빠의 육아 일기>를 비롯해서 해마다 <**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책들은 훗날 아이가 더 어른이 되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되리라.
독박 육아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지친 양육자(대부분 엄마)의 모습이 그득 담겨 있다. 나 역시 서투르고 힘겨운 초보 엄마였기에 육아의 힘듦과 고단함을 모르지 않는다. 여전히 여자에게 과부하되기 마련인 가사와 육아와 결혼에서 발생되는 감정노동의 부당함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했다면 그 아이의 세상에 혼신을 다하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는 생각도 변함은 없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짧은 시간 동안 그 아이의 세상이 견고하게 지어지도록 지켜주는 일, 완벽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해주는 일,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각인시켜 주는 일에 엄마 아빠의 구분이 있어야 할까? 엄마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일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는 말처럼 모성을 예찬하는 많은 표현이 동서고금에 있어왔다. 그러나 이쯤 해서 아버지 노릇에 무게중심을 옮겨보면 어떨까.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아버지도 부모이다. 또한 내 남편과 많은 아버지들이 보여 주었듯이 아버지들도 육아를 잘할 수 있고, 아이와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다.
나는 부족한 엄마였지만 남편이 큰 몫을 해주어서 우리는 도합 평균점쯤 되는 부모가 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나는 둘이 함께 '부모'라는 단위가 되었고 그 안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부' 단위의 하위 역할 중 하나로, 아이라는 공동의 대상을 양육하는 일임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부족한 엄마 노릇의 죄책감에 짓눌렸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위축되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타고난 따뜻함에 더해, 부모 노릇의 본질을 생각하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넓혀 준 남편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깨달았다. 남은 일은 가족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 이 깨달음을 공유하고 다음 세대 부모들과 연대하는 일일지 모른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크게 부족한 것도 없어 보이는 내 아들을 비롯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출산을 유보하거나 포기하고 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국가 존립에도 위험한 요소가 된다고들 한다. 인구가 많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별도로, 아이의 탄생은 인간 종이 멸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직접적 증거이면서 각 개인의 삶에는 절대적인 기쁨이고 소명이다. 우리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꼈던 벅찬 환희를 젊은이들이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평생 노력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경제 환경, 손꼽히는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이면서도 여전히 야근이 낯설지 않은 근무 환경, 임출육의 고된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전근대적 의식 등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육아의 부담은 젊은이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21세기에도 많은 여성들이 엄마가 되기 위해 경력을 포기한다. 삶의 중요한 일부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순수하게 기쁨일 수만은 없을 테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부모 자신도 중요하다. 출산율 제고의 핵심이다. 출산장려금, 양육보조금 등의 금전적 지원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모 외의 양육 안전망이 겹겹이 둘러쳐져야 한다. 영아기부터 걱정 없이 24시간을 맡길 수 있는 전문적이며 신뢰도 높은 시설, 돌발적인 상황에서 119가 달려오듯, 아이의 긴급 상황을 지체 없이 돌봐주는 시스템, 독박 육아에서 숨 쉴 구멍이 되어 줄 지역사회의 돌봄 손길 등.
양육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아이를 길러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젊은이들은 근심 없이 생명 탄생의 기쁨을 누리고, 아이가 커가는 보람을 느낄 것이다. 부모만의 아이가 아니라 세상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랄 때, 나와 남편도 기꺼이 이웃의 아이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