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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글을 쓰는 이유

by 이파리

일상다반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늘 행하는 일을 뜻한다.(나의 경우에는 일상주반사. 차 대신 맥주를 마신다.) 자판 앞에 앉아 매일의 일상에서 수면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을 옮겨 보려고 한다. 어떤 날에는 비교적 또렷하게 떠오르는 물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물빛 자체가 흐리고 탁해서 떠오르는 것이 썩지도 않는 폐기물인지, 예쁜 물고기인지도 뚜렷하지 않기도 하다. 아직 미숙한 초보 낚시꾼인 나는 두서 없이 뭔가를 건져 올리기 급급하다. 그렇더라도 내 생각의 궤적을 아카이빙하고 싶다. 미숙한 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어른이 된 이후의 성장은 가능한지 알아보는 자아탐색의 방식이기도 하다.


뭔가를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깊어간다. 글을 쓰는 일이 이토록 중심 잡기가 어려운 일이었나. 내 글을 읽어 줄 타인의 시선은 물론, 나 자신의 검열, 글이 일으키는 상처와 고통들이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멈춰 세운다. 생각지도 못했던 증상이다. 쓰다가도 마음이 힘들 것 같으면 멈춰버리기 일쑤이고, 쓰다만 조각들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일깨우는 바늘이 되어 또다시 나를 들쑤신다. 나 자신이 겪는 고통은 그렇다 하더라도 혹여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뭐라고 타인의 마음을 건드리나 싶은 염려가 소심한 나의 글을 더욱 위축시키기도 한다.(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글을 버려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때로는 묵은 때를 벗겨내는 심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얻는 것도 아닌 나의 글쓰기. 그런데도, 특별한 기쁨이나 성취감이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왜 쓰는가. 왜 뭔가 써야한다고 스스로 들볶고 있는가. 반항하는 어린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가 목표인 양 게으름을 피워대면서도 마음은 편치가 않은가.


어릴 적부터 사려과다와 생각 속에서 헤매기가 특기였고, 책 속에서 길을 잃으며 더 한층 심화된 잡생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의 삶. 설거지를 하면서도, 음식을 조물락조물락 만들면서도 나는 어딘가에서 정처가 없는 나의 영혼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의 이중성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린 날에도 교실에 멍하니 앉아 있기는 하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지도록 즐기지 못하는 스스로가 이상했다. 일 미터쯤 위의 어딘가에 눈이 있어 꼭두각시처럼 뚝딱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은 이질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뒤늦게 이해했다. 말을 하면서도, 친구들이 웃으니 따라 웃으면서도,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또 다른 나는 허공을 맴돌곤 했다. 그래서 말과 움직임이 적고 곧잘 영특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성적표에는 '두뇌 총명하나 산만함'이라는 평가가 빠지지 않았던 것일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이 산만함을 가두어두려고, 최소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간수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나 나름의 일코(일반인 코스프레-평범한 사람인 척하기)였을 것이다. 남 못지않게 과업을 수행하는 직장인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야 했고, 살림에는 타고난 소질이 잼병인 주제에 맏며느리 노릇을 맡았다. 엄마 노릇은 여전히 서투른 아마추어이고, 무심한 친구이자 불성실한 동료의 모습을 어떻게든 감추며 산다. 유일한 변명이라면 이 노릇들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 다시 말해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점뿐이다.


혼자 있을 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고독을 사랑한다거나, 영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거나 등의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나의 서투름,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서투름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이유 때문이다. 멀쩡하다가도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이게 내 진심인가?'라든지, '이 말이 적절하지 않으면 어쩌지?', 혹은 '괜한 말 했다가 후회하지는 않을까?' 같은 망설임이 스몰토크를 방해하고, 상대에 대한 호의의 표현으로 지은 표정이 허위라는 자각에 갑작스레 건조한 얼굴이 되곤 한다. 가식과 위선을 떨까 봐 스스로를 옥죄고 이미 자연스런 관계 형성은 물 건너간다. 사회 안에서 육십 년을 살아온 사람, 게다가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내면이 이런 모습이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자의식 과잉이라 흉을 잡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때로 나의 일코가 성공하여 타인의 눈에 멀쩡한 생활인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나의 안에는 여전히 삶에 미숙하고 불안정한 눈빛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닌 내가 있음을. 미워할 수만도 없는 내 안의 나에게 존재를 인정해 주고, 가능하다면 그 수줍은 사람을 조금씩 밖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내 글쓰기의 본질이다.


마음에 담아 두었지만 말로 하지 못한 사랑과 감사의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마음은 말로 표현해야 알 수 있다고 자주 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말에 잘 담아낼 줄 모른다. 글은 말보다 조금 나은 방식으로 내 마음을 사람과 세상에 전달해 주었으면 싶다. 때로는 변명과 이해를 바라는 이야기도 있을 터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상태를 공유하고 이해를 구한 뒤에 했어야 하는 많은 칩거와 거리 둠이 무시로 행해졌다. 그들에게 이제라도 사회인의 얼굴로 지낼 에너지가 다했을 때 동굴로 파고드는 나의 성정을 알려주고 싶다. 이해와 용서는 그들의 몫이다. 감히 요구하지는 못한다.


일상다반사라는 제목은 특별한 주제 없이 떠오르는 것들을 써보겠다는 의미이다. 부유하는 것들, 스스륵 흔적이 없어지는 것들을 잡다보면 진짜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답을 찾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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