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정리하며 한 해를 돌아본다
사람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많은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회생활을 한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혹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한다. 노래방에서는 '즐겨 듣는 노래와 잘 부르는 노래는 다르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또 '잘하는 것은 직업이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다'라는 말도 있다. 이 모든 말들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꿈많은 십대 시절에 되고 싶은 꿈을 직업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고, 생활전선에서 당장의 직업을 구해야 하는 현실에서의 선택은 취직 잘되는 전문직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판검사가 되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라'는 생활 신념같은 흐름을 갖고 자식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술은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도 전문직이라는 포장의, 기술직 같아 보이지 않는 기술직을 선택하여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남들도 한다는 결혼을 하고(난, 결혼이라는 것을 못 할줄 알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고, 또 여러가지 이유로 재취업을 하고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직업적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겨 이를 계기로 늦은 나이로 대학원에 진학 하여 2019년 가을학기에 논문을 준비하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는 사태로 논문을 포기하고 학점을 맞추어 2020년 8월, 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래서 아직도 논문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다.
대학원 진학은 나에게 학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었고, 공부란 이렇게 하는구나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마치고 나니 무엇인가에 도전하여 성취한다는 느낌을 알아버렸다. 그런 느낌과 나이 들어 생긴 마음의 여유로 어릴때의 꿈이었던 문학에의 도전을 시도하고 싶어졌다. 나는 문학을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이해는 한다고 생각했었다. 글쓰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원 동기들의 부추김으로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으로의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시적인 글쓰기와 일반 글쓰기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이 아닌 대학을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하게 되어 10대에 포기했던 국문학도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려 했다. 그렇게 선택한 국문학과가 얼마나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졸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배움을 목적으로 하기로 정했다. 그래서 첫학기 6과목의 빠듯한 수업을 마무리하고 두번째 학기부터는 3~4과목으로 선택하여 직장을 다니면서 집중적으로 수업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때쯤, 브런치를 알게되어 습작처럼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모아 작가신청을 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간간히 두서 없이 글들을 올리게 되어 지금까지 오게되었다.
그렇게 2022년의 여름이 되었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옮긴 직장에서 우여곡절 끝에 모든 직을 내려 놓는 좋지 않은 결과로 마음의 아픔을 달래며 추스리고 있을 때 마침, 대학에서의 강의 제의가 들어 와 변화를 주어야 하는 내 상황을 구해 주었다. 그래서 모든 직을 내려 놓고 다시 취업한 직장에는 강의를 한다는 전제를 깔았고, 그 직장은 그것을 허용해 주어 지금 겸임교수로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과 강의 그리고 배움을 병행하고 있기에 주부로서의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20대여서 신경쓸 부분이 많지 않고, 건강상의 이유로 일찍 은퇴한 동반자가 집안 대부분의 일들을 해결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는 학문이 국문학이고 오픈 수업과 학과 모임에 몇번 참석하였더니 덜컥 편집부라는 직책을 맡게되었다. 모든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는 자체 문학지를 편찬하는 걸로 알고있다. 방송통신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라 국문학과의 한 해의 마무리로 문학지 편찬을 한다. 편집국장이라는 자리는 그 문학지를 편집하고 발간하여 완성하는 일을 한다. 요즘 대학이라는 것이 학생수도 줄어든다는데 방송통신대학교는 지역대학으로 나누어져 있어 학생수가 얼마 안되기로 유명하다. 지금 현재 내가 다니는 지역대학의 경우는 1학년이 단 2명 뿐이다. 그나마 2학년은 편입생이 있어 6명이 되었지만 학생회 일은 2명이 한다. 대학의 특성상 오픈 수업이나 모임 공지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라 그런 모임에 얼굴을 내밀게 되면 강력히 거절하지 않는 이상 학생회일을 하나 정도는 맡아서 하게 된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모임이 있다는 공지를 받고 참석하였다가 엉겁결에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되었다. 편집부는 오로지 학과 문학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학생회의 임원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전부이다. 행사에 참석하고 회의하고 하는 일에는 다른 임원들 보다 별로 강요가 없다. 하지만 문학지 발간은 회장과 같이 한다고는 하지만 거의 주가 되어서 진행하여야 한다. 그래서 8월부터 원고 모집 공고를 하고 학년 대표들을 닥달하고, 개인적으로 행사참가 후기나 사진, 그림 등을 강요(?)하고, 후배를 위하여 과제물 하나 정도는 제출해 달라고 어름장을 놓아 모집 후 순서를 배열하고 실을 작품을 골라 1차 교정 시행 후 출판사에 넘긴 일을 수요일에 마무리를 했다. 아직 발간사 작성이 남아있지만 내가 의도하였던 거의 모든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직장을 다니고,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한 학기를 마무리했고, 또 한 학기의 중가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가 남았고, 나 또한 학생으로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루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나가 마무리 되어가는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그렇게 정신 없이 보낸 2023년이 11월을 며칠 남겨두고 12월을 맞이 하려하는 시점이다. 어제 받은 2024년도 달력이 이런 감상적 기분을 더욱 감상에 젖게 한다.
시간은 의미 없이 흐르는 세월이지만 인간은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1시간, 1주일, 1달, 1년이라는 의미 속에서 우린 생활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12월이 되면 당연히 송별의식을 하고 신년을 맞이하는 행사를 한다. 그리고 또한 마음으로도 생활로도 늙어감을 자랑하거나 안타까워 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듬을 알아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이 세는 것을 그만 두게 된다. 나이 세는 것을 그만 두게 되면 나이를 말하는 것보다 태어난 연도를 뱉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된 나만의 느낌으로 나이를 이야기하면 이렇다. 58년 개띠들이 하늘같은 선배들이고 63년 토끼띠는 62년 호랑이띠를 뛰어 넘지 못하고 직장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토끼는 75년, 87년으로 이어져 여전히 직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호랑이는 74년, 86년으로 이어져 큰소리를 치면서 살아남아 있다. 64년 용들은 76년, 88년으로 이어져 직장에서도 행사의 마스코트가 되고 65년 뱀들은 용과 말 사이에서 77년 89년으로 스르륵 넘어간다. 66년 말들은 백마임을 자랑하다 78년 황금말 90년 흑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67년 양들은 초식동물의 모습으로 79년, 91년으로 이어진다. 68년 원숭이들은 잔재주에 자신의 꼬리를 잡고 돌다 80년, 92년의 신선함에 꼬리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69년 닭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부리를 쪼아대고 날개짓하여도 결국 용이나 호랑이의 먹이가 되어 81년, 93년에 기대를 하지만 호랑이를 이겼다는 이야긴 듣지 못했다. 70년 개들은 58년의 고생은 모르고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82년, 94년의 반련견들을 부러워 하게 되고, 71년 돼지들은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쫒아가다 83년, 95년의 먹성에 놀라 주춤거린다. 72년 쥐는 쥐잡기 운동은 피했지만 84년, 96년의 시대의 흐름은 피하지 못했다. 73년 소는 값이 많이 나가는 한우가 되고 싶었지만 85년, 97년 처럼 출신 성분을 바꿀 수는 없었고 74년 호랑이는 62년 호랑이보다 뛰어날 수 없음을 알고 86년, 98년에게 경고를 날린다. 그렇게 시간은 의미가 없이 흐르지만 의미를 담는 세월이 되어 모든이의 생활을 지배하고, 생각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다. 시간은 그렇게 감상적인 기분으로 2023년을 마무리한다.
그래도 내일은 아직 2023년이다. 12월이 버티고 있어 2023년은 아직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또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2024년이 우리 곁에 머물게 되면 우린 또 새로움으로 무장을 하고 시간을 되돌리려고 노력하며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렇게 새해 계획을 세우고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먼 길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는 2024년을 계획하길 바란다. 욕심을 조금 버리고 의미를 조금 덜 부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인생의 묘미일 수 도 있을 것 같다. 남들에게 강요는 못해도 나는 시도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 시간을 붙잡지 말고 보낼 수 있는 그런 2024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