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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Mar 28. 2024

햇살 쨍한 오후 3시경 버스에서는

1. 서서히 햇살이 약해질 때가 되었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3-1.

차창으로 보이는 바다는 아직 푸른색이다. 맑은 날씨에 어울리는 수평선이 눈 앞에 나타났다. 언덕을 내려오는 버스는 해안도로의 버스정류장에 멈추었다. 바다가 보이는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내리지 않아도 버스는 이 정류장에서의 출발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이 버스 노선의 규칙이다.

"날씨가 좋기는 하구나." 버스 기사의 한 마디에 둘 밖에 없는 승객들의 눈길이 바다로 향한다. 바다가 파아랗게 사람들 눈에 비친다. 시리게 파아란 빛이 사람들의 눈동자에 스며든다. 며칠째 우중충한 비가 계속 내리더니 오늘 아침부터 개인 하늘이 버스 기사의 눈에도 좋아 보였다.


"아빠, 오늘은 몇시에 마쳐?" 집을 나서는 등뒤에서 아들이 소리쳐 묻는다.

"어제랑 같은 시간, 왜?" 돌아 보는 기사의 눈에 아들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다.

"영진이, 오늘 우리집 와도 돼?"

"또, 게임하게?"

"오랫만이라서."

"오랫만에 게임하게?"

"집에서는 못해. 컴터가 하나잖아. 피씨방에서 게임하고 우리집 와서 자도 돼?"

"영진이 엄마에게 허락받고 오면."

"알았어."

출근길의 아들 미소는 기사를 기분 좋게 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이 기분 좋은 설렘을 간직하게 한다. 짙은 선글라스를 통해 바라보는 햇살에 너울대는 물결이 모양을 바꾸고 있다. 기분 좋은 설렘. 오랫만이다. 며칠 동안의 우울한 하늘이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늘에는 출발하는 비행기가 하늘을 오르고 있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니 한명의 승객이 버스에 오른다. 금발을 뒤로 묶어 단정한 느낌이 나는 젊은 여자 아이다. 기사는 도무지 서양아이들의 나이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사가 운행하는 이 시티튜어 버스는 출발지에서 출발지로 돌아가는 순환버스이다. 승차권을 구입하면 하루 종일 어느 곳에서라도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소에서 내려도 되는 도시를 순환하는 버스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기사는 시티튜어 버스 운행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 했다. 15년 이상의 시내버스 운행으로 다져진 실력으로 관광공사에서 진행하는 모집공고를 3년간 열심히 뒤적거려 지난 해 10월부터 시티튜어 버스를 배차 받게 된 것이다. 3대의 버스를 5명의 기사가 운행을 하는 체계로 짜여진 운행프로그램과 직원의 복지는 관광공사의 직원과 같은 공무원이다. 그래서 뒷배경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기사는 운이 좋았다. 3년동안 한 번 실시한 모집에 성공한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는 하나뿐인 가족인 아들과 외식을 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아빠가 늦게 출근해도 된다는 것에 기뻐했다. 시내버스 운행에서는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아들은 아빠가 힘든 일을 하는 듯하여 내심 걱정을 했었다.

기사는 모집에 성공하지 못했어도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니던 버스회사를 그만두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티튜어 기사모집에 성공하지 못하면, 서귀포로 넘어가는 시외버스 운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에 합격한 것이다.

훗날 들리는 말로는 무사고의 경력과 탄탄한 몸매가 한 몫을 했단다. 면접관이었던 팀장이 운동하냐고 물었을 때 10대에 하다가 그만 둔 유도를 5년 전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했던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 팀장은 운동하는 사람은 술을 잘 안하기에 성실하다는 말을 했단다.


바다를 옆에 끼고 창을 열고 달리는 버스는 제법 운치가 있다. 기사는 이마를 스치는 5월의 바람에 기분이 상쾌했다. 집을 나설때의 아들의 표정도 좋아 보였고, 오늘 자고 간다는 영진이도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인사성이 밝아 아들의 친구 중 기사가 유독 아낀다. 그런 친구들만 아들 옆에 있다면 아들의 인생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기사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사의 친구가 생각났다. 바다를 좋아하여 섬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자 아련한 감정이 명치 끝에서 올라오는 느낌이다.


진석이는 한 동네에서 같이 뛰어 놀고 같이 미깡밭의 담을 넘고, 같은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불알친구다. 그는 1남4녀의 막내로 아들 낳기 위해 노력하던 집안의 결과물로, 어릴때부터 끔찍한 이쁨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 그는 천성이 개구장이에다 누나들 틈에서도 절대 지지않는 깡다구가 있었다. 남들보다 작은 덩치였지만 깡다구 하나로 중학교때부터 유도를 했다. 그 덕에 기사도 덩달아 유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덩치의 깡다구였지만 대회에서의 상 복은 없었다. 대진운이 없어 강한 상대를 만나기 일쑤였고, 어찌어찌하여 준결승까지 가도 우승후보를 만나 4위 이상을 넘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 바다를 좋아하여 배를 타고 싶다고 부산에 있는 해양고등학교를 간다고 했다. 당시 그의 외가집이 부산에 터를 잡기 시작하여 외삼촌이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유학을 간 진석이는 졸업을 하고 컨테이너 선박을 탄다고 했다. 당시 '배'하면 어선 밖에 몰랐던 기사는 그렇게 큰배가 운항된다는 사실에 감짝 놀랐다. 기사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석이를 배웅하기 위해 부산행을 강행했을 때, 진석이를 걱정하는 가족과 달리 "야~ 너, 멋지다."를 연발했다.

바다를 좋아하던 진석이는 선박생활의 5년째 되던 해에 스페인의 어느 항구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외국여자와 결혼한다고 하니 진석이 어머니는 앓아 누웠다. 그 말 많은 누나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나 깡다구 센 진석이는 아예 무시를 했고, 심지어 결혼을 반대하면 한국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듯이 진석이 어머니도 진석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유독 세째 누나는 끝까지 반대했다. 심지어는 어머니에게 "아들 없던 걸로 해."라고 까지 했단다. 그때도 기사는 진석이에게 "야~ 너, 멋지다."를 연발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기사는 군대를 갔다가 줄을 잘 서서 운전병이 되었다. 평소 운전에, 바퀴달린 탈것에 관심이 많았던 기사는 고등학교때 이미 경운기 수리는 척척해냈다. 그걸 계기로 군대에서 운전할 병사를 찾을 때, 운전면허가 없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손을 번쩍 들고 "경운기 잘 몹니다"고 했다. 그리고는 트럭을 운전하기 시작하여 제대할 때는 군에서 발급하는 운전면허증으로 사회에 나와서 대형면허를 땄다.

처음에는 카센터를 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아 대형면허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내버스를 운전하기로 결심했다. 기사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관광버스를 구입하여 운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버스 회사에서 여경리와 연애를 하여 결혼을 했고, 2년만에 아들을 얻었다. 그때 기사보다 기사의 가족들이 더 기뻐했다.

별 욕심이 없는 성격의 기사가 취직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들을 얻어서 생활하는 것이, 가족들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기사는 갖고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사가 카센터를 하려고 했을 때 집안이 어려워 도와주지 못한것을 항상 부담스러워하던 어머니가 기사가 꾸린 가족을 보며 뿌듯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기사는 바다가 끝나고 시내로 들어서는 갈림길에서 신호대기를 하며 신호등을 쳐다 보고 있다. 빨간불이다. 버스앞에는 렌트카가 있고, 그 앞에는 승합차가 있다. 햇살은 더욱 쨍하게 비친다. 이제 3시가 지난 시간이라 서서히 햇살이 약해질 때가 되었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신호가 아직도 빨간불이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바뀌지 않는다. 무슨일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좌회전을 해야하는 기사는 좌회전 차선에 대기 중이다. 앞에는 렌트카, 승합차가 섰다. 햇살이 쨍한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갑자기 좌회전을 위해 제일 앞에 서있는 승합차 앞으로 왼쪽도로의 승합차가 달려나온다.

'어, 어' 피할 사이도 없이 왼쪽도로에서 나온 승합차가 차선 제일 앞의 승합차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충돌에 밀려 앞의 렌트카가 뒤로 밀린다. '이런, 아직 빨간불인데 이게 무슨일이야?'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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