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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Apr 04. 2024

햇살 쨍한 오후 3시경 버스에서는

2. 하늘에는 하얀 솜털 방석이 쨍하던 햇살의 얼굴을 서서히 감추고 있다

3-2.

바다는 햇빛을 반사하는 물그림자를 머금고 있다. 오늘의 날씨는 며칠 동안 우울한 느낌의 비구름을 몰아낸 하늘이 해를 자랑하듯 뽐내고 있다. 금발을 뒤로 묶어 단정한 느낌이 나는 젊은 여자 아이는 바다에서 눈을 떼고 타야할 버스가 도착할 정류장을 확인했다.

버스정류장 가까운 곳에서 버스가 도착하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정류장에 멈추는 버스가 보인다. 저 버스 놓치면 이 해변에서 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천천히 버스를 향하는 그녀의 눈에 버스의 번호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 번호, 어디서 본것 같은데.'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저 번호, 저 번호. 꿈에서 본 번호군.'  걸음을 멈추고 생각한 꿈은 이틀전의 꿈이었다.

사고가 난 현장에서 주운 번호판의 번호와 같은 버스의 번호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순간 번호판이 주황색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노란색으로 돌아왔다.

'저 버스를 타야 하는군.'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버스가 시동을 건다. 이제 출발하려는 모양이다. 걸음을 빠르게 하여 버스에 오른다. 티켓을 보여주고 오른 버스의 기사는 하늘색 유니폼 셔츠가 깔끔하다. 선글라스를 낀 얼굴에는 기분좋은 웃음을 띄고 있다.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가벼운 목례와 눈인사를 살짝했다.

운전석쪽의 두번째 좌석에 앉은 그녀는 꿈을 생각했다. 사고가 난 현장에서 주운 번호판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려고 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떠올리려고 인상을 썼다.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어. 번호판을 보고 이게 버스라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사고 난 현장에는 버스가 없었어. 승합차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야. 버스가 있었나? 잘 생각해보자. 버스가 있었나? 없었어. 확실히 없었는데 내가 버스 번호판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 느낌이 없었어. 그럼 이 버스는 사고가 나겠군. 그런데 보이지 않았으니 내가 있었어. 내가 있었던 거야.'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여기까지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다가 끝나고 시내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버스가 멈추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 속에서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사고지점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순간 '여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그 장소구나. 그리고 이 버스는 사라지는 거야.'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천천히 기사의 운전대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상상을 시작했다. 버스가 공중에 들어올려지는 상상을 시작하며 눈을 감았다.


어느새 버스는 구름위에 떠 있다. 구름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버스안에 기사와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와 뒤쪽에 따로 앉아있는 두명의 청년이 보인다. 한 명은 갈색톤의 머리색에 피부가 하얀 유럽인의 인상이고, 검은색 머리색의 갈색 피부톤을 가지 청년은 동남 아시아계의 인상이다. 그들은 구름위에 뜬 버스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놀란 얼굴을 유리에 붙이고 있다. 버스가 구름위에 살짝 내려 앉는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지며 도로위의 차들이 엉켜있는 모습이 보인다. 버스는 어느새 좌회전을 하여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는 기사의 목덜미를 쳐다보았다.

'불쌍한 인생이 남의 생을 물려받았구나. 어쩌면 좋아. 혼자가 아니야. 저 뒤에 착 달라 붙어있는 저 여자가 착하기만을 기도할 수 밖에.'

금발을 뒤로 묶은 그녀는 갈색의 눈동자에 비치는 짧은 헤어스타일의 검은머리의 여자가 기사의 몸에 겹쳐져 운전대를 잡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기사는 바다가 끝나고 시내로 들어서는 갈림길에서 신호대기를 하며 신호등을 쳐다 보고 있다. 버스앞에는 렌트카가 있고, 그 앞에는 승합차가 있다. 오후 3시가 지난 시간이라 서서히 햇살이 약해질 때가 되었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갑자기 좌회전을 위해 제일 앞에 서있는 승합차 앞으로 왼쪽 도로에서 나온 승합차가 제일 앞의 승합차를 정면으로 충돌했고, 충돌에 밀려 앞의 렌트카가 뒤로 밀린다.

'이런, 아직 빨간불인데 이게 무슨일이야?' 순간, 기사는 5년전 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아들의 엄마이자 자신의 부인이었던 선주를 생각했다.


선주는 그가 일하던 버스회사의 사무직을 보던 여자였다. 처음 보던 그 해에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스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업고등학교를 다닐때 2번의 휴학으로 그녀는 학교를 늦게 졸업했다. 당시 22살이었고, 일찍 제대한 기사는 26살이었다. 사내에서 둘 뿐이었던 20대의 남녀가 어영부영 연애를 하고 1년만에 결혼을 하고 2년 후에 아들이 태어났다.

선주는 결혼 당시 부모가 돌아가신 상태여서 고아나 마찬가지 였지만 쾌활하고 밝은 이모에게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기사는 선주의 이모를 어머니처럼 대하였고, 기사의 집에서도 밝은 성격의 선주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욕심이 없는 기사가 선주에게 보이는 애정은 남들 눈에도 보였다. 똑 부러지는 성격은 아니지만 기사를 먼저 배려하는 선주의 서글한 성격이 기사의 어머니는 마음에 들었다. 기사를 먼저 배려하는 모습에서 선주의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선주가 어느해 건강검진 결과에 이상이 있다고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는 대학병원에서 진행한 정밀검사에서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3기말, 4기초라고 했다. 평소 소화가 잘 안된다고하여 위장 관련 검사를 실시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하여 지나왔던 것이 결국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선주는 술을 많이 마시던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많이 울었다.

어느날 선주가 자신이 죽어도 기사의 옆에서 기사를 보살펴야겠다고 했다.

그때 기사는 "그런 생각하지 말고 몸을 추수려야지."라고 했다.

하지만 선주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내가 죽어도 자기랑 같이 있을테니 부담스러워 하지마. 나는 자기가 나 없으면 아무 희망이 없다는 거 알아." 라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선주는 기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먼 길을 떠났다.

선주의 말대로 선주가 떠난 한 달 동안 기사는 일도, 생활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아들은 기사의 어머니가 돌보았다.

선주가 떠난지 한 달쯤 되는 어느날 기사의 꿈속에 선주가 나타났다.

"자기야, 내가 자기랑 있는다고 했쟎아. 이제 일어나서 나랑 같이 생활하며 아들도 돌봐야지. 언제까지 할머니에게 맡겨둘거야. 내가 옆에 있어."라며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 날 이후, 기사는 조금씩 기운을 내기 시작하였고, 선주가 떠난지 두 달만에 회사에 복귀를 했다. 그리고 아들도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사의 전부가 되었다.


렌트카가 뒤로 밀리는 것을 바라보며 선주 생각을 하던 기사는 갑자기 운전대와 몸이 버스와 분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선주가 구름위에서 기사를 바라보며 손짓을 하고 있다.

"선주야." 기사는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좌석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선주가 기사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운전대에 손을 올리며 기사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기사는 아득한 기분이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건 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목 뒷덜미에서 시선이 느껴지며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정신을 차린 기사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려고 하였다. 기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스가 좌회전을 하고, 기사는 운전대를 돌리고 있다.

버스가 유유히 좌회전을 하니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리고 승합자 한 대가 반대편 차선에서 오더니 멈추지 못하고 좌회전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사고네." 금발을 뒤로 묶은 여자아이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한다.

기사는 백미러로 금발을 뒤고 묶은 창백한 피부에 갈색눈동자의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한국아이는 아닌것 같은데, 한국말 잘하네.' 기사는 이내 백미러에서 눈길을 거두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약간 멍한 머리속에서 선주가 웃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3시가 지나는 시간의 하늘에는 하얀 솜털 방석이 쨍하던 햇살의 얼굴을 서서히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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