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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Apr 11. 2024

아침의 퇴근 버스 1.

나는, 지금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아침의 북적임이 느껴지는 지나가는 버스에는 서있는 사람이 많다. 한창인 출근시간이 지난 8시 20분이다. 이제 버스안은 어느 정도 숨쉴 공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탈 버스가 7분후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버스 정류장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백팩을 메고 서있는 남자 둘, 얇지 않은 점퍼의 지퍼를 목까지 끌어 올리고 눌러쓴 모자 아래로 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여자가 의자에 앉았다. 교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앳되 보이는 얼굴에 입술이 붉은 여자 아이 하나가 앉아 있다. 나까지 합하면 이 버스 정류장에는 다섯명이다. 이 다섯이 지금 이 시간에 같은 정류장에 있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젊은이 셋과 멀뚱히 버스가 오는 방향에 시선을 맞춘 중년이 지난 여자와 그들을 쭉 둘러보는 나는, 지금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타야할 버스가 도착하여 카드를 찍고 오른다. 버스에 오른 이는 나와 앳되 보이는 얼굴에 입술이 붉은 여자 아이다. 내 뒤를 따라 오르던 그녀가 뒷문앞의 지지봉을 잡고 선 내 옆에 따라 선다. 여자 아이의 입술이 눈에 들어 왔다. 붉은 색이 나는 색깔의 립밤을 바른것이 분명하다. 버스 창으로 거리가 지나간다. 이마가 무거워지며 눈꺼풀 위로 피로감이 느껴진다. 나는 퇴근하는 길이다.


목적지에 내리려면 앞으로 20분 정도 더 가야한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오늘은 멀게 느껴진다. 버스에 서 있는 나의 머리가 지지봉에 살짝 기대어진다. 아, 피곤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렇게 머리를 기대는 모습은 내가 싫다. 다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허리도 펴고, 다리에 힘을 준다. 그러면 눈이 번쩍 떠지겠지. 뒷문 바로 뒷좌석 복도쪽 여자가 하차벨을 누른다. 오우, 예에. 앉아보자. 얼른 길을 비켜주면서 좌석 확보를 위해 몸을 돌렸다. 그녀가 일어나며 카드를 텍한다. 그렇게 나는 자리 하나를 얻었다.


봄이 시작되는 거리에는 벗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이틀전 내린 비로 벗꽃이 피다가 떨어지기는 했어도 봄은 봄이다. 날리는 꽃잎이 만연한 봄이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벗꽃잎이 길가에 세워놓은 승용차의 지붕위로 내려 앉는다. 봄이 곧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 막 끝난 겨울이 뒤 돌아보는 듯하여 옷깃을 여며본다. 요즘은 봄, 가을이 없고 여름과 겨울뿐 인듯하다. 벗꽃이 펴 봄이 온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여름 장마가 시작된 듯한 느낌은 나 혼자만의 느낌인가라고 잠시 생각한다. 나른한 기운에 눈꺼풀 위의 피로감이 다시 느껴진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감으며 지난밤 상황을 떠 올렸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수액 폴대 끌고가는 소리다. 소리는 배선실쪽의 복도를 지나고 있다. 시계를 봤다. 11시 20분을 지나고 있다. 이 시간에 폴대를 끌고갈 만한 인물은 몇 없다. 배선실을 지나면 2인실이 배치된 복도가 나온다. 그리고 비상계단이다. 배선실을 지나지 않고 돌아 나오면 간호사실이 있는 중앙 복도의 엘리베이터 앞이다. 만약 내가 예상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기 전 간호사실을 한번 둘러 볼것이다. 그리고 유유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것이다. 그리고는 1층에 내려 병원밖에 준비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고 침을 뱉고 의자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간호사실을 훓어보고 배선실을 지나 자신의 침상이 있는 병실로 들어갈 것이다.

바퀴 소리가 배선실을 지나 가까워진다. 고개를 들어 폴대를 끌고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가나요? 라고 묻고 싶지만 앞으로 숙여져 있는 그의 몸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말해 준다. 얼른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왜요?"  나의 물음에 인상쓰고 올려다 보는 이마에 땀이 송글하다.

"배가 아파요?"  나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 열 좀 재주세요."

"예." 준비실 안에 있던 입사 6개월차의 신입이 대답한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막체온계가 서있는 환자의 귀속으로 들어간다.

"37도 6부요."

"방에 가요. 의사선생님 부를께요." 그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배에 손을 올리고 숙여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서있다.

"선생님. 바이탈 체크해주세요."

나의 지시에 신입은 그에게 손짓을 한다.

"go to bed."  아직도 서 있는 그에게 나는 서툰 영어를 뱉았다.

내 말에 움직이는 그를 보면서 당직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몇번 가고 묵직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당직은 얼마전에 부임한 호흡기내과 전문의다.

"612호. 응오 호안님. 이틀전에 압뻬했구요. 지금 배아프다 합니다. 열은 37쩜 6부고요. 비피는 지금 재고 있는데, 허리를 펴지 못하고 걸어요."  

"올라 가봐야 하나?" 나의 대답에 돌아오는 질문이다.

"이그젬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알겠어요."

수화기를 내려 놓고 그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틀전 맹장수술을 마치고 입원한 그는 통증을 잘 참아내는 사람이다. 수술 부위의 통증도 내장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들은 그의 수술기록은 단순 맹장염으로 수술한 것이 아니었다. 맹장염 진단으로 수술을 시작했는데, 맹장이 없었단다. 이미 오래전에 맹장절제가 된 상태였고, 대장이 시작하는 부위에 대장이 한쪽으로 밀려 맹장처럼 부풀어 있고 염증을 동반한 종양주머니가 달려있어 그 대장의 염증성 종양주머니를 절제하는 수술을 했단다. 그래서 정확히 이야기하면 맹장절제술을 한것이 아니고 종양제거술을 한것이다. 문제는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하는 그에게 수술 후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데, 외과 전문의의 그림을 동반한 설명에 그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상태를 그가 알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가 이해했다고.

그 종양제거술 당시 수술실 간호사는 PA가 그의 대장을 한참을 주물럭거렸다고 표현했다. '맹장이 없는데 염증이 보여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라고 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그는 이틀이 지나는 동안 아프다는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허리를 굽히며 아프다고 한다. 그것도 영어가 안되는 내 근무시간에.

그의 방에 도착한 나는 신입에게서 "110에 60, 114회"라는 보고를 받았다. 평소 혈압이 130대 측정되던 그가 110이면 약간의 문제가 있다. 열도 37도가 넘고, 맥박도 100회가 넘는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이 그의 고통을 대변해 준다. 바로 누울 수 없어 옆으로 누워있는 그가 "으~"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문을 열고 들어 온 당직의는 희끗한 귀밑머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중년이다. 경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들었지만 호흡기 내과 전문의라 미덥지는 않다. 그는 바이탈을 보고하는 내 말에 "통증은 언제부터?"라고 질문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전화할 당시 아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능숙하게 응오 호안의 몸을 바로 돌려 다리를 세우게하는 호흡기 내과 전문의의 손을 바라보며 내입에서 나온말이다.

호흡기 내과 전문의의 손이 그의 수술부위 근처에 이르자 응오 호안은 인상을 쓰며 신음을 뱉었다.

"드레싱 준비해줘." 응오 호안의 수술부위에 붙은 거즈를 벗겨내며 호흡기 내과 전문의는 말했다.

"선생님 드레싱 준비요." 옆에 서있는 신입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커튼을 열고 나가는 신입 앞에 옆 침상의 보호자들이 커튼 안의 상황을 보려고 목을 빼는 것이 보였다.

거즈를 벗겨낸 수술부위의 실밥 아래로 약간 붉은 색의 부어오른 절개 부위의 피부가 보였다.  

"인펙션인데." 호흡기 내과 전문의가 건조하게 말한다.

"오늘 드레싱 할때는 괜찮았나?"

"특별히 나쁘다고 인계 받은 건 없습니다."

드레싱 카를 끌고 오는 신입의 뒤쪽으로 옆 침상의 보호자가 고개 돌리는 것이 보였다. 보호자 뒤쪽 벽의 시계가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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