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정거장 더 가면 나도 내려야 한다.
머리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교양없이 머리가 흔들어 졌다. 감은 눈을 떠보자.
부스스 눈꺼풀을 올려본다.
하차문 앞의 지지봉을 잡고 있는 손이 보인다. 손은 미끈하게 뻗은 팔에 부착되었다. 내 시선이 팔을 올라 목을 지나 얼굴에 머문다.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같이 버스 탄 입술이 붉은 여자 아이다. 그녀가 내리려고 하차벨을 눌렀다. 그러고는 하차문 앞에 섰다. 여전히 입술이 붉다. 립밤을 바른 것이 틀림없다.
버스가 멈추고 내리는 입술이 붉은 여자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창밖에서 올려다 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는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색깔 나는 립밤을 바른 것이 분명하다.
몇 정거장 더 가면 나도 내려야 한다. 졸음을 쫓기위해 눈을 부릅뜬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청진기가 천천히 응오 호안의 가슴에서 좌 우, 아래 위로 일정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호흡이 얕아지는 그의 숨소리가 조용하지만 바쁘다.
'그가 오늘 밤은 넘기겠지.' 마음속으로 속삭여 본다.
이 일을 하다보니 느낌이라는 것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를 보면 오늘을 지날 수 있는지 추측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느낌으로만 추측하는 것이다. 특히 다음날이 오프인 경우 다음 근무날에 출근을 하면 다시 보게 될 것인지 추측해 보는 것이다.
오늘의 예감은 그를 중환자실로 보내자로 굳어진다. 그러나 호흡기내과 전문의의 성정을 모르는 나는 조심스럽다. 병동 주과인 외과의 같으면 중환자실을 레콤해보겠는데, 메인이 아닌 내과 전문의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판단이 안된다.
조용히 청진기를 주머니에 넣는 당직의는 펜후레쉬로 동공을 살핀다. 실핏줄이 터져 붉은기 가득한 흰자가 눈에 들어왔다. 동공반응은 거의 정상인데 수축시간이 조금 길다.
침상 커튼을 걷자 옆 침상의 보호자가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사한다. 아무말도 없이 방을 나오는 뒤통수가 따갑다.
"해열진통제 투여 후에도 피버 안 떨어지거나 비피 높아지면 아이씨유 보냅시다."
모니터로 해열진통제 처방을 픽업하던 나에게 당직의는 낮은 소리로 말한다.
"한 시간 후에 팔로업 할까요?"
"녜. 아이씨유에 자리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노티하고 옮기나요?"
"옮기면 연락 주세요. 오늘 자기는 틀렸네. 7병동에 내 환자도 안 좋아서..."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한 시간이라도 눈 좀 붙이세요." 습관적으로 내뱉은 내말에 그가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 수고해요."
스테이션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힘이 느껴진다. 말로는 피곤하다고 하지만 그의 체력은 아직 견딜 정도로 튼튼해 보인다.
"내가 걱정이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다.
"뭐가요?" 신입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오늘 밤, 내가 걱정이라고. 아무래도 힘든 밤이 될것 같아."
아이씨유 내선번호를 누르면서 푸념처럼 내 뱉는다.
한 시간이 지나고 바이탈을 하고 돌아오는 신입의 표정이 심상찮다.
"선생님. 38도3이고요, 140에 100이예요."
"하트레이트는?"
"120이 넘어요."
시계가 3시를 넘기고 있다. 내릴려면 지금 내려야 한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 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4시가 넘으면 아이씨유에서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그래도 한 시간을 더 기다릴까? 지금 내리지 않는 열이 한 시간을 지나면 내릴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호흡도 점차 옅어질 것 같다.
"트란스퍼 준비합시다."
나의 말에 신입이 당직요원을 부르기 위해 수화기를 든다. 나도 중환자실로 내선 번호를 누른다.
전화상으로 환자 인계를 마친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이동침상을 잡고 있는 신입과 당직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신입답지 않게 침착하다. 저것이 그녀의 장점이다. 일단 침착해 보이는 것. 간호사로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간호사가 당황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당혹스러워 한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느낌이 환자와 보호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가 침착해 보이면 환자와 보호자도 동요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응오 호안 옆 침상의 보호자가 눈에 들어 온다.
"수술이 잘 안된건가?"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말이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몰라요."
나의 단호한 말투에 보호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한다.
"우리애 수술한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이지?"
"녜, 아시잖아요. 회진할 때 같이 보셨잖아요."
"그런 것 같아서 물어봤어. 선생님. 우리애보다 하루 뒤에 수술했나, 저사람?"
알면서 물어보는 거다.
"궁금해 하지 맙시다. 그리고 들어가서 좀 주무세요. 환자는 자는데 보호자가 안 자면 어쩌려구요."
"우리애도 일어났어. 그렇게 사람이 실려가는데 안 일어나고 배겨."
보호자인 환자의 어머니는 눈을 흘긴다.
"아무리 조심해도 이동침상으로 옮기려면 불을 켜야지 어쩌겠어요."
"그렇기는 해. 그래도 새벽 3시반에 옮기는 건 좀 그래."
"새벽 3시반에 아픈데 어쩌겠어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내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보호자는 "수고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우리애'라고 지칭하는 그 아이는 맹장절제술을 했고, 내일 퇴원한다.
요즘 맹장절제술은 일명 DRG라고 불리는 '정액숫가제'에 묶여있는 병명이다. 수술비용과 약제비, 기타 인건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들이 일정한 금액으로 책정되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정해진 액수만큼 지급 받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특별한 후유증이 없으면 수술 후 이틀 정도 관찰 후에 퇴원을 시키고 외래로 방문하여 실밥을 뽑는다.
수련된 외과의에게는 힘들지 않는 수술 중 하나이다. 요즘은 로봇수술도 한다는데, 아직 우리 병원은 로봇이 들어 오지 않아 그것까지는 가능하지 않다.
생각은 생각의 꽁무니를 쫓아 생각한다. 지금의 나도 생각에 빠져 졸음과 꿈의 경계를 넘고있다.
지난 주, 응오 호안을 새벽 3시반이라는 시간에 중환자실로 보내고 다음 근무에 돌아와 있을까를 기대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는 시간 동안 그를 잊고 있었다.
어제 근무 중,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응오 호안이 한 시간전에 사망선고를 받았는데, 액팅미비가 있어 병동에서 해야 한단다.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다. 왜 나의 근무시간에 그의 소식을 들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 혹시 열이 안떨어졌어요?"
"녜, 내려오는 날부터 38도 이하로 떨어져 본적이 없어요."
내 물음에 중환자실 간호사의 대답이다.
'역시, FUO 였어. 그럴거야.'
어디서 그런 확신이 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잘 진단하지 않는 '원인불명의 열'.
열어 본 전자 챠트에 기록된 병명은 '상세불명의 대장염', '수술 후 원인을 알수 없는 상세불명의 발열'.
사망진단서는 예외없이 '심정지'였다.
25세의 젊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죽었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한국에 일하러 온 젊은 태국인이고 없는 맹장수술과 대장염증에 대한 수술을 받고 일주일만에 심정지로 한국의 병원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의 한 생명이 꺼졌다. 정확한 이유도 없이. 아니 이유는 있다. 고열. 그리고 심정지. 그게 전부다.
그의 인생에 대해 물어 줄 사람 하나도 없는 이 이국땅에서 그는 혼자 중환자실의 침대에서 죽어갔다.
슬픈 생각은 전염병처럼 머리에서 가슴으로, 팔로,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내가 슬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환자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이동침상에 누워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표정이 자꾸 생각난다.
내려야 할 정거장이다. 하차벨을 누르면서 '버스에서 내리면 그의 생각은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버스는 멈추고 하차문이 열렸다.
아스팔트를 밟고 있는 내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양말에 눈이 시리다. 무거운 다리를 인도위로 올린다.
집까지 5분 정도 걸어야지.
햇빛과 함께 날리는 벗꽃잎이 봄이라고 아우성친다.
아침의 퇴근 버스,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