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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May 09. 2024

그아이, 이상한 아이와 나의 서른.

2. 간이 뚱뚱한 그 아이와 병문안이 처음인 나는  


그아이가 입원했다는 병원은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1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도로변에 위치한 병원이다. 새건물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된 건물도 아닌 깔끔한 회백색 칠을 한 6층 건물이다. 

입구에 위치한 작은 로비의 안내데스크에서는 아담한 키의 중년여자가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난 그아이의 이름을 대고 면회를 왔다고 했다.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웃는 얼굴의 여자는 516호실이라고 말하고는 '면회'라고 쓰여진 목걸이식 명패를 하나 내밀었다. 그 명패를 엘리베이트 버튼옆 인식기에 인식을 시켜야 엘리베이트 작동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면회 후에 반납해야 한다고 친절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냥 가져가면 어떻게 되나요?" 장난기 발동한 내가 웃으며 물었다. 

"예, 환자가 좀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자주 받는 질문인 듯, 대답이 바로 튀어 나온다. 

"이런 질문하는 사람, 많은가 봐요?"

"녜, 보호자님처럼 물어보시는 분이 많아요. 그리고 실제로 가져가시는 분도 있고요. 그래서 입원 시에 환자분과 보호자에게 공지합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인 여자는 딱딱한 대사를 딱딱하지 않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면회시간은 저녁 6시까지 입니다. 6시 이후에는 '보호자'라고 쓰인 명패를 받아야 병실에 머물 수가 있으니 머무시려면 6시 이전에 오셔서 명패 바꾸어 가셔야 합니다."

돌아서는 나에게 빠르게 말한다. 

"녜." 

아, 보호자. 그아이의 보호자가 병실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트로 향했다. 



침상 4개가 두개씩 마주보며 놓여있는 구조의 병실은 방문 맞은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드리우고 있다. 그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침상의 이름표를 보며 그 아이의 침상을 찾았다. 

빈 침상엔 이불이 반듯하게 개어져 베개 아래에 놓였다. 침상옆의 상두대에는 각티슈와 물병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흔한 각티슈와 흔하게 볼 수 있는 손잡이 달린 뚜껑 있는 물병이 덩그렇게 놓인 상두대에서 그 아이의 다른 어떤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병원이 어색하다. 이렇게 아는 사람없는 병실은 더 어색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며 침상의 이름표만 쳐다보고 섰다. 

"총각, 병문안 왔나봐. 거기 아가씨, 검사하러 갔는데, 올 시간 됐으니 조금만 기다려 봐요."

옆 침상의 보호자가 문쪽으로 걸어가다 돌아보며 말한다.

"아, 예" 짧은 대답으로 이 대화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그렇게 또 물끄러미 서 있다. 나는 아무래도 병실이, 병원이 어색하다. 

좀 나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나가려다 돌아 들어오는 옆 침상의 보호자와 병실문 앞에서 마주쳤다. 

"가지말고 좀 기다려봐, 올 때 됐으니까."

"휴게실에 좀 있다가 올께요."

"휴게실은 간호사실 지나서 복도 끝에 있어."

무심한 듯 말하는 그 보호자의 눈에는 호기심이 반짝거린다. 

호기심어린 그 시선을 그대로 뒷통수에 맞으며 문을 나서 복도를 따라 걷는다. 복도 끝에 있다는 휴게실에 들어서자 병원 주변의 낮은 건물 옥상이 내려다 보이는 넓은 창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따갑지 않게 들어와 휴게실의 조명 역할을 한다. 짙은 색유리로 눈 부시지 않은 태양을 바라볼 수 있어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넓은 창을 등지고 3개가 붙어있는 대기실용 의자가 놓였고, 원형의 작은 테이블이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다. 벽걸이형 대형TV 에서는 연합뉴스가 채널의 아나운서가 뉴스를 담담히 쏟아내고 있다. 그 아나운서 오른쪽 모서리에는 음료수 자판기와 정수기가 나란히 놓였다. 대기실용 의자 옆으로 넓은 창을 등지고 찜질방에서 볼 수 있는 동전넣는 전신형 안마기가 놓였다. 그 안마기에 6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으~~"소리를 내는 걸로 보아서 동전을 넣었나보다. 

아무도 없는 대기실용 의자 왼쪽 끝에 앉아 무심하게 TV를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앉으니 걸어왔던 복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TV 위의 디지털 시계가 '14:20'이라는 붉은 글자를 새기고 있다. 시계가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허기가 졌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시내버스로 이동한다고 점심을 걸렀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통감자 한통에 물 한병 먹은 것이 전부다. 

'뭘 좀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복도에서 걸어오는 환자에게 시선이 갔다. 그 아이다.

그 아이는 내 옆의 빈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잘 지냈구나."라고 말한다.

뭘 보고 잘지냈는지 아는거야?

"잘 지내 보이네." 그 아이가 내 시선을 마주하며 다시 말한다.

"응, 나야 잘 지내지. 너는 왜 입원했냐?"

우리의 대화는 인사가 없다. 무턱대고 본론부터 말하는 그 아이의 대화법에 항상 내가 말려든다.

"아파서."

"아프니 입원했겠지. 내 말은 어디가 아프냐고?"

그 아이의 병명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다. 살면서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해 보지 않은 나로써는 궁금하다. 도대체 어디가 아프면 입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쓸데없이 튼튼해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나에게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대단히 아픈 사람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픈 곳이 없어 보이는 그냥 평범한, 내가 아는 몇 년전의 그 아이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응, 간이 부었데."

"엥?"

"간이 뚱뚱해졌대."

"왜?"

나의 질문에 그 아이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이다. 순간 내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 나도 몰라. 왜 간이 부었는지. 간이 부었다고 입원하자고 해서 입원했어. 그리고 검사하자고 해서 검사하고,"

바닥에 고정한 내 시선이 그 아이의 슬리퍼로 옮겨간다. 삼선슬리퍼. 어디서나 볼수있는 짙은 파란색에 흰줄 세개가 발등을 지나고 있는 일명 학생 슬리퍼. 슬리퍼에 감싸인 그아이의 발가락 4개에서 멍든 엄지 발톱에 시선이 머물렀다. 

"며칠전 문턱에 걸려서 멍든거야." 내 시선을 눈치챈 그 아이의 대답이다. 

"아팠겠다." 의미없는 위로가 내 입에서 나왔다. 

" ... ... "

" ... ... "

잠시의 침묵이 그 아이와 나 사이에 머문다.

'병원은 어색해.' 생각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어색하지?"

"응?"

"병문안 처음이니?"

"어, 응"

"다음에 어디 병문안 가면 음료수라도 사 들고 가라. 이렇게 빈 손으로 오지 말고."

"너가 오라고 했잖아. 맛있는 거 사 오라고 말하지."

"그걸 말해야 아냐. 기본 이잖아. 넌 테리비도 안보냐. 드라마에 보면 병문안 갈때 다들 뭐 사들고 가잖아. 과일바구니가 안되면 바카스라도 사 와야지." 

"그러냐. 나가서 사올까?" 머쓱해진 내가 서둘러 묻는다.

"아냐. 빈 손으로 왔으니 1층 카페에서 커피 사줘."

"커피 마셔도 돼?"

"간이 부은거지, 위장은 괜찮아."

간이 뚱뚱한 그 아이와 병문안이 처음인 나는 간호사실 앞 엘리베이트로 향해 천천히 걸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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