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니야 May 16. 2024

그아이, 이상한 아이와 나의 서른.


병원 1층 한구석에 위치한 전국적인 체인점의 커피전문점에서 네모난 탁자을 하나 차지한 그아이 앞에는 따뜻한 라떼가 내 앞에는 무난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놓였다. 

"하는 일은 잘돼?" 

"아니." 무심하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휘저으며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아이의 대답이다. 

"강의를 그만해야 할거같아. 너무 피곤하고, 이제 재미도 없고..."

"간이 나빠져서 그런거야?"

"응, 강의 계속하려고 건강검진했는데 결과에 재검 나왔어. 재검했더니 입원하래. 한 달됐어. 입원하라 한지가 ... ... 그런데 미루다 이제 입원한거야. 재검에서 간초음파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간염도 있다나 뭐라나."

"한 달동안 미루다 이제 입원한거야?" 짜증이 약간 섞인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란다.

"아니, 내말은, 왜 그때 입원 안했냐고," 끝말을 흐리며 급하게 변명을 붙인다.

"강의가 마무리하고 입원하려고 했지. 시작한 것 마무리는 해야지."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의도가 묻어나는 말투다. 

"마무리는 잘 했어?"

"응, 이제는 강의 접어야 겠어. 그냥 작품활동만 해야겠어."

"... ..."

"너는 회사일 잘되니?"

"회사일이 잘되고 말고 할게 어딨어. 그냥 그런거지."

"그래도 회사에 잘 다닌다. 너는, 그 회사 들어간지 좀 되지?"

"졸업하고 들어가서 아직까지 다니고 있지."

"이제 베테랑이겠다."

"베테랑은 무슨..."

"그래도 졸업하고 계속 다녔잖아."

"이제 4년째야. 4년이 무슨 베테랑이냐.  너가 더 오래 일했지."

"나는 이것 저것 많이 옮겼잖아. 강의한지는 3년되고."

"근데, 언제 입원했냐?"

"삼일째야. 오늘이. 어제까지 검사했고. 아, 오늘까지 검사했구나. 어제 갑자기 니 생각이 나서 내가 텔레파시 보냈잖아. 너 잘받고 전화하더만." 말하는 그아이의 입술이 살짝 웃는다.

"텔레파시는 무슨. 너 아직도 텔레파시, 뭐 그런거 하니?"

"아직도 라니. 텔레파시는 원래 우리 인간이 사용하던 의사소통인데 인간의 뇌가 너무 게을러지고 생각을 안하기에 퇴화되어서 받을 수 없을 뿐이야. 원래부터 있었던 기능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없어진거야. 우리는 누구나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거야. 원래 있던 기능을 깨우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거야..."

그아이의 텔레파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잠시 잊고있던 내가 단추를 눌려버렸다.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아이의 진지한 말투로 토해지는 단어들을 귓등으로 들으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그아이의 취미가 '텔레파시 보내기'였던 때가 있었다. 

중학생이 된 그아이와 나는 부모들의 성화에 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 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부모님도 나의 어머니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우린 같은 학원에 등록을 하고 수학 단과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학원과 가까웠기에 먼저 도착한 내가 그아이의 자리까지 맡아 놓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아이와 내가 사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때쯤, 어디서 어떤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어떤 친구들을 만나는 건지 어느날 그아이가 텔레파시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텔레파시에 대해 아는게 없었던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아이는 텔레파시가 생각으로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사람은 누구나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나는 그 모든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아이는 지속적으로 텔레파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는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느낌도 눈치도 챌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그아이는 나를 노려보거나 대놓고 쳐다보면서 "내가 보낸 텔레파시 받았지."라고 했다. 

어쩌다 내가 무심히 돌아보거나 어떤 행동을 하면 "내가 텔레파시를 보내서 너가 그렇게 행동한거야."라고 하거나 내가 머리를 긁적이면 "내가 머리 긁어라고 텔레파시 보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학 3년 동안 그녀가 보낸 수많은 텔레파시에 나는 무감각해져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중3학년의 어느날 고등학교 원서를 써야할 때 쯤 그아이는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우리 아빠는 늙어서 텔레파시가 안 통해."라고 했다. 

나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그아이는 예술학교를 가고 싶다고 매일 아빠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야한다고 말했단다. 그러면서 "아빠는 고집이 너무 쎄서 내 텔레파시를 못받아."라고 하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기 싫었지만 아빠 고집을 꺽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도 나는 그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아이에게 텔레파시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그런 존재인것이 분명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우린 살던 집과 가까운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다가구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그아이와 매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 그아이가 학교마치고 집에 가기전에 들렀다. 나는 그아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보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우리집을 방문하는 그아이가 싫지는 않았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 아이가 싫지는 않았다. 

그런 날들이 흘러 고2가 되었다. 그 때쯤 그아이의 텔레파시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아이는 내가 집에 있을때마다 방문하였고, 자신이 방문할 것이라는 텔레파시를 보냈기에 내가 집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주 방문하는 그아이가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싫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방문을 허락하다가는 내가 그아이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아이에게 "이제 우리집에 오지마라."라는 말을 했다. 그아이는 왜 자신에게 텔레파시로 안 보내고 말로하냐며 나를 혼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아이의 텔레파시를 이해할 수 없다.


대화는 그아이의 혼잣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아이의 말에 호응을 하며 돌아갈 버스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시계에 머무른다. 5시를 지나고 있다. 

"저녁밥 올 시간이야." 그아이도 시계를 쳐다보는 내 시선에 따라 시계를 보며 말한다. 자연스럽게 일어나 컵을 직원에게 건네며 병원로비로 향했다. 

"이제 가봐야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저녁밥 사줄께 먹고 야간 버스타고 가. 여기까지 병문안 왔으니 밥 사줄께." 

"아니야. 터미널에 가서 저녁 먹고 출발할께." 

"여기까지 왔는데, 밥 사줘야지."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예전의 그아이 그대로다.

"아니야. 지금 너는 아파서 입원했잖아. 병원밖으로 못나가지. 그냥 올라가." 

"그래? 그럼. 내가 문까지 배웅할께." 그아이는 문쪽으로 향했다.

"이거 반납해야 해." 방문객명찰을 보여주며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담한 키의 중년여자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명찰을 받아들고 장부에 반납이라고 적는다. 

"이제 올라가." 문앞에서 내가 그아이에게 말했다. 

"잘가. 조심하고." 그아이는 손을 내민다.

"결과나오면 연락해." 

"왜?" 악수를 하며 말하는 나에게 그아이는 눈을 맞추며 질문한다. 

"그냥. 결과가 궁금해서." 나도 왜 결과가 궁금한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말했다. 

"텔레파시 보낼께." 

"뭐? 그냥 전화해. 난 텔레파시 못 받아."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아이에게 정색을 하며 빠르게 대답하는 내가 당황스럽다.

"알았어. 전화로 결과 알려줄께. 그러면 또 병문안 와라." 

손을 흔드는 그아이를 뒤로 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거리는 저녁을 준비하는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병원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아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떠올렸다. 간이 뚱뚱해지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다음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