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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Aug 12. 2024

인도, 스쳐지난 프러포즈

타지마할의 아그라에서 받은 프러포즈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가 헤어진 많은 사람들, 특히 내가 만난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한 나이가 되었다. 그중 어릴 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접근했으나 미움으로 끝났거나, 아쉬움으로 헤어져 버린 인연들이 생각날 때면 선택의 아쉬움과 미련이라는 감정이 한켠에 묻어나는 것은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만족하지 못하는, 또는 뜻대로 되지 않은 현실이 주는 실망일 것이다. 그런 많은 실망은 나 자신이 속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남 탓을 하고 싶은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이름은 항상 아쉬움과 함께 운명처럼 다가온다. 인연으로 만났고 인연이 되어서 현재까지 유지하는 인간관계가 있는 반면,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도 인연이 아니어서 헤어지고 인연의 끈이 떨어져서 다시는 못 보는 인간관계를 지나간 인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지나간 인연 중, 오늘은 젊은 날 인도에서 스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의 인도여행은 1990년 페르시아만의 이라크와 쿠웨이트 간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계획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전쟁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던 상태였다. 당시 기숙사내의 불교모임을 하고 있었던 중, 전쟁이 끝나고 휴가를 간다면 인도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인도를 가려고 하니 여러 이름을 가진 신들 중 내가 인도여행을 하길 원하는 분은 이 전쟁을 겨울이 끝나기 전에 멈추어 달라는 기도를 알라, 예수, 마리아, 하나님 그리고 부처님에게 빌었다. 나를 감싸는 분위기를 느끼면서 매일 108배를 시작했고, 코란의 한 구절을 외우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어느 종교의 신이 어떻게 멈추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이 전쟁을 끝냈다. 그리고 나는 휴가날짜를 잡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인도에서의 4주는 나에게 많은 인연을 만나게 했다. 나의 여행동선도 계획과는 다르게, 물론 계획도 철저히 세우지 않고 대강 '이때쯤에는 이곳으로 갈 거야'가 전부였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만 대강 정하고 출발을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행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느낌이지만 뭔가가 나를 인도한다는 생각으로 출발하고, 도착하고, 숙소를 정했다. 도시마다 이런저런 인연을 만들어 가며 세계인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었다. 그중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자이나교도인 아그라의 숙소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아그라는 '타지마할'로 유명하다.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은 가야 하는 곳이다. 인도까지 왔는데 다른 건 몰라도 '타지마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인도여행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로 향했다. 타지마할 북문 쪽에 위치한 정원이 예쁜 숙소를 잡았다. 그 숙소는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추천이 있었고, 장기간 머물게 되면 좋은 곳이라고 했다. 영어로 된 안내책자에는 다른 호텔이나 숙소에 잡상인들이 많은데 이곳은 주인이 잡상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바라나시에서 3성급 호텔에 묵었던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이 좋다고 판단을 했고, 그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는 단층의 방들이 연결된 건물들이 ㄷ자 형태로 이어져 있고, 그 중앙에 정원을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숙소로 10개 남짓한 방들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옛 저택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투숙한 지 이틀째에 직원이 내 방을 노크하며 그곳의 젊은 사장이 저녁식사에 초대를 한단다. 타지마할에서 일출을 보려다 실패하고 돌아온 나는 '왜?'라는 의문은 들었지만 오전에 만난 같은 투숙객인 독일 기자가 사장이 젊고 나이스한 사람이라는 말을 떠 올리며 알겠다고 했다. 

저녁은 호텔에 있는 홀에 준비되었고 사장은 투숙하던 첫날 정원에서 호스로 잔디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그 젊은이였다. 난 그가 이곳 직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을 시크교도라고 했지만 터번을 두르고 있지는 않았다. 그 호텔은 20세 생일선물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 집안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했고, 인도 여자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결혼 한 자신의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난 대접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싫다고 내색할 수는 없어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나자 그가 방이 불편하지 않냐고 했다. 내가 선택한 방은 비교적 싼 방이었다. 화장실이 딸려있기는 해도 대문과 가까운 방으로 조용히 드나들기에는 좋았다. 도로변에 위치하여 도로의 소음들이 들리기는 해도 어차피 밤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 불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을 보낸 다음날 아침, 직원이 내 방을 옮겨준다고 했다. 나는 옮기고 싶지 않아 거절의 표시를 했지만, 직원은 내가 옮기지 않으면 자신에게 큰일이 생긴다며 제발 옮겨달라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뺨 맞는 일을 목격한 후이기도 했고, 신분제도가 아직 존재하는 인도라는 생각에 그 직원의 안위를 생각해서 방을 옮겼다. 정원을 마주 보는 창을 가진 방이었으나 전의 방과 비교하여 특별히 좋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방에 앉아 정원만 내다볼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낮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여행객이니 그다지 풍경이 주는 감흥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침대는 조금 더 좋아 보였다. 


방을 옮긴 날 저녁, 그가 다시 나를 초대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왔기에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맘에 드니 인도에 남아서 자신과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이런!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나는 황급히 약혼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길 했다. 그는 약혼자가 있는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고, 나는 한국인들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투자한 광산을 방문해야 하는 스케줄이 있어 다음날 늦게나 그다음 날 돌아온다며 이틀 후에 확답을 달라며 돌아갔다. 

나는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으로 내 매력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저것이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관광을 위해 나서는 나에게 직원을 어디 가는지 알아야겠다고 한다. 전날 만난 이스라엘 애들 둘과 점심약속을 했기에 나는 타지마할에 들렀다가 점심 먹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타지마할을 둘러보며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내 계획대로라면 아그라에서는 일주일을 머물러야 했고, 4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당장 아그라를 떠나기로 결정한 후에는 망설임 없이 기차역으로 향해, 델리로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예매를 했다. 그 이후 이스라엘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지난밤 이야기를 전하며 아그라를 떠나겠다고 하자 그녀들은 웃으며 '왜 그냥 여기 머무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휴가로 온 여행이라 끝나면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의 말에 그녀들은 '인디언과 결혼하면 직장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라고 했다. 내가 웃으며 '결혼은 한국인과 할 것이다'했더니 '너는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아서 한국인과도 국제결혼이 될 것이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서로의 여행을 축복하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붙잡는 직원에게 "시간이 많이 지난 나중에 내 남편과 아이와 함께 다시 아그라를 방문하겠다"는 쪽지를 사장에게 전해달라고 하며 뿌리치듯 그곳을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으로 가 기차에 탑승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일정보다는 빨리 아그라를 벗어나 델리로 향했다. 

그 델리로 향하는 기차에서 멋진 인디언을 만나 3일의 짧은 데이트를 즐긴 인연을 맺게 되는 사건이 생겼다. 



얼마 전, "위대한 가이드"라는 TV프로그램에서 인도의 아그라와 핑크시티를 보며 그때의 작은 해프닝을 생각했다. 젊은 시절, 여행에서 겪었던 일화지만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호기심만으로 혼자 세계여행을 꿈꾸던 그때의 나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젊은 나에게 40세 이후의 세월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는 나도 꽤나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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