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에 만날 같은 색의 사람들을 기대한다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말이 있다.
초록색의 종류가 얼마나 많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그 많은 색깔 중 왜 하필 '초록'일까도 생각해 본다. 왜일까? 왜 초록만 딱 꼬집어 이야기할까?
혼자 곰곰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자연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색이 초록'이라서가 아닐까 한다.
현대 서양 문명 발생의 가장 중요한 나라를 꼽으라면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 일 것이다. 서양의 문학과 정신을 이어오는 그리스로마신화의 뿌리가 되는 지중해의 자연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는 색이 초록이다. 그러나 초록이라고 다 같은 초록은 아니다. 지중해의 대표적인 올리브나무와 유칼립투스나무의 초록도 다른 빛깔의 초록이다. 한국의 산하에도 많은 초록들이 존재한다. 소나무의 초록과 동백나무의 초록은 같은 색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록은 같은 초록이 아닌가?
약간씩 다르지만 같은 계열인 초록.
우린 "초록은 동색이다."라는 말을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약간씩은 다르지만 결이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울리면 '동색'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끼리는 또 서로 알아본다. 느낌과 예감으로 서로가 끌리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쇠붙이는 자석에 붙게 마련이듯이 서로 끌리는 '기'에 서로가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상사는 참으로 교묘하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이라 이런저런 일들도 생기고 이런저런 인연이 생긴다. 처음엔 좋은 인연으로 시작했다가 악연으로 결론짓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동색'이 아니라서 이다. 그런 경우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만남을 성사시킨 경우로, 직장생활이 대표적으로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난 아직도 직장생활을 한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제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재화를 획득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가정을 꾸려간다는 것은 이런 경제적 재화가 필요한 일이기에 가족 구성원 중 한 명 이상이 재화벌이에 나서야 하고, 그중 내가 포함된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고 가족과 지내는 시기는 유아기에서 끝난다.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의 경우, 생후 1년이 지나면 어린이집에 보내진다. 그리고 그 아이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타인과 비교가 되며, 유아교육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에 의해 돌봄을 받게 된다. 그 돌봄에는 부모의 경제적 재화를 소비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집 동기생'들이 탄생하고 '유치원 동기생'들이 생기게 된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 더 많은 동기생들과 선배 후배들의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와 어울리며 "초록은 동색"이 되는 경험을 하고, "약육강식"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재화의 풍족함과 재화벌이를 위한 부모의 직업이 매개체가 되어 다시 "초록은 동색"이라는 계급이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재화가 내 아이의 "동색" 경험을 풍부하게 해 주거나, 축소시키면서 아이의 인생에 "약육강식"이 먼저 자리를 잡게 되던지, "초록은 동색"이 자리 잡게 된다. 이를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나와 너의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냥 사회가 그러려니, 인생이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경제관념이 확실하지 않아 재산을 불리는 방법을 잘 모른다. 요즘 많은 책들이 재산을 불리고, 젊은 시절에 돈을 모아 워라밸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세월을 살아와 버렸고, 나름 기술직이라 수월하게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 재화벌이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지만 남아있는 재화가 없어 노후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은 하지만 재화를 생각하면 뭐 했나 싶다. 이런 와중에 "초록은 동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한다. 나와 동색인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없다. 그런 직장도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면서 생활을 이어간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다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오늘도 두서없는 글을 끄적이며 살아온 날들을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살아온 날 만큼은 아닐 것이라 장담한다. 살아갈 날들은 같은 "초록"의 색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