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of my first outlanded boyfriend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도착 후 리야드 센트랄 호스피탈, 일명 RCH로 불리던 병원이 내가 근무했던 곳이다.
병원에서의 근무와 기숙사 생활이 전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생활에서 가끔 나가는 쇼핑은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기회도 된다. 쇼핑 장소는 대형마트, 재래시장, 골드마켓, 대형쇼핑센터 등으로 정해져 있었다. 주 2회의 스케줄이 있었고, 신청은 자유였지만 거의 월 2회 쇼핑 신청이 룰처럼 되었다.
월급날 이후, 혹은 귀국을 앞두고 있으면 골드마켓으로 많이 나갔고, 대형쇼핑센터도 가끔 갔다. 재래시장에는 많은 종류의 향신료와 옷가게, 그리고 먹을 것들도 있었다. 골드마켓 혹은 스트릿은 주로 고가의 금붙이나 명품 화장품, 향수를 사러가기도 했다. 향수가 생활화되어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 특유의 마늘냄새를 지우기 위하여 또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화장품은 화장품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향기가 충분히 향수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여자 환자들이 향수가 진하다고 컴플레인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쇼핑은 항상 즐겁고 신나는 일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필요품을 구입하는 것이 쇼핑의 주요 목적이지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쇼핑을 신청할 때가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데이트-물론, 남자 친구가 존재해야 한다-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럴 때는 꼭 2인 1조가 되어야 했다. 한 명은 데이트를 하고 다른 한 명은 데이트하는 친구의 물품을 구입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잘 나가는(?) 사수-내 사수는 대구 미인이었다-를 둔 덕분에 그 1조의 2인일 때가 있었다. 실제 나의 사수는 말은 연애대장이지만 간이 작아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편이었으나 내 사수의 룸메는 말은 아끼지만 행동파여서 그녀의 쇼핑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날의 쇼핑장소는 골드스트릿으로 금붙이를 사거나 근처의 바자르에서 옷이나 신발을 구입하기로 했다. 그날 사수는 근무조였고, 나는 사수 룸메의 데이트-쇼핑을 책임지는 2인으로 쇼핑을 나가야 했다. 딱히 구입할 것이 없어 금붙이를 쳐다보다가 원피스를 한벌 구입했고, 사수의 룸메는 부피가 큰 물건이나 냄새나는 물품을 사달라고 하여 바자르 근처의 생필품가게에서 휴지를 잔뜩 구입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우린 약속 장소에서 만나 잔뜩 산 휴지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고맙다는 의미로 나의 데이트에 쇼핑을 해준다고 했다. 당시 막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나는 그러자고 했다. 한 달 후 나도 소개남과의 데이트를 하게 되어 골드스트릿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날 나의 사수가 쇼핑을 대신해 주기로 해서 난, 아무거나 사달라고 했다. 외국에서의 외국인을 소개받아 거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어떤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개받은 사람은 네다르(테니스선수 '나달'과 같은 이름인데 아랍식 발음이다)라는 이름을 가진 키 165cm 정도의 통통한 체격의 남자로 나보다 2살이 많았다. 기억으로 동글동글한 얼굴에 아저씨 같은 타입이었다. 우린 거리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했다. 그는 내가 선호하는 남자 타입이 아니었고, 순진한 구석이 있고 여자랑 데이트해 보지 않은 티가 나는 남자였다. 그는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의 카드를 전해주었고, 나는 소개해준 사람에게 내 타입이 아니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 후 나는 내 타입의 남자에게 데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찜해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었다.
이제부터 외국인 남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와의 만남은 여러 사건들과 에피소드가 깔려있다. 그의 첫인상은 키 크고 잘 생긴 외국인이었다. 큰 키에 하얀 피부를 지닌 요르다니(요르단인) 였지만 알고 보면 요르단 국적의 팔레스타니(팔레스타인)였다. 그는 급성백혈구성빈혈로 내과병동 VIP룸에 입원한 환자였다. 나는 그에게 호감을 표시했고, 그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사수가 먼저 그를 찜하여 그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사수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어 몇 달 후면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와 그녀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나의 사수는 그냥 즐기는 눈치였다.
나는 그에게 내가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의 귀국이 결정되고, 그와 그녀의 관계는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내 사수이면서 그의 여자친구인 그녀의 귀국 전에 그가 나에게 그의 친구 네다르를 소개해주었으나, 나는 네다르가 내 타입은 아니라는 말을 그에게 전하며 너가 나의 이상형이라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너의 여친이 한국으로 귀국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니 나랑 사귀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그는 퇴원하기 전,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네 주고 갔다. 그렇게 우린 폰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서서히 남친, 여친이 되었다.
그는 회계사로 공주(라는 신분이었으나 나이가 많았다)의 재산을 관리해 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난 그때쯤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을 하고, 여기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애를 시작했다. 리야드 시내에서 몇 번의 데이트를 이어가던 어느날 나는 계약 종료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였다.
그는 나에게 좀 더 머무르기를 권했으나 이미 서명이 끝난 상태라 바꿀수는 없게 되었으나, 그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으로 둘 만의 여행을 계획을 했다.
난, 그와 함께 모든 의견을 공유하며 계약 종료 후 이집트 여행을 계획했다. 그의 친구가 거주하는 이집트, 나에게도 설레게 하는 피라미드를 생각하며 여행 계획은 진행되었고, 드디어 떠나는 날 공항에서 만난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차분했다. 배웅을 나온 사감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우린 이집트행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이집트 여행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른 지면을 빌려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그는 나보다 3살이 많은 건장한 남자로 180cm의 키에 앞니가 살짝 벌어져 매력 있는 미소를 지닌 팔레스타인이었다. 그와의 연애는 그 후로도 이어져 1991년 걸프전이 발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게 만들면서 나는 그와 이별했다.
난 가끔 그때의 내 감정과 이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의 말투를 생각한다.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도 나의 아라비아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떠오르는 그가 나의 첫 번째 외국인 남자친구이다. 나의 외국인과 연애하기 버킷리스트는 성공한 셈이다.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미소 짓게 만드는 추억이다. 그는 60이 넘는 노인이 되었어도 멋진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어느곳에선가 잘 살고 있어 한때 풋풋한 연애를 했던 타향인인 나를 추억해 주길 바란다.
그래, 난 그가 아직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쪽의 사정이 항상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니...
그리고 그와 함께한 나의 추억과 나와 함께한 그의 추억이 있었던 나의 젊은 시절에게 축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