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앱을 다운 받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겨울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11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11월 초에는 아직 따뜻하네, 11월 중순에는 어 갑자기 추워졌네 그리고 11월 마지막 주에는 11월인데 눈이 오네'라는 아들의 말에 웃음을 머금지만 갑작스러운 추위도 모자라 일주일 만에 눈이 내리는 날씨가 기후변화를 실감 나게 한다. 이제 겨울이 왔음을, 연말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추위가 본격적인 겨울이 되었다.
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에 우연히 라디오 앱을 알게 되어 다운 받아, 모바일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라고 했던가.
참으로 추억이라는 감성을 건드리는 단어인듯하다.
20세기말 청년시절의 감성을 '쓱' 끄집어내는 단어이다.
디제이의 목소리로 소개하는 음악을 듣는 밤시간이 아련하고 감성에 젖게 하는 것도 그 시절의 그러한 감성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라디오는 많은 사람이 듣고 있는 매체이다.
하지만 나에게 라디오는 운전을 하면서 가끔 듣는 매체였다. 딱히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가 없기에 굳이 모르고 지내도 이상하지 않는, 심지어 요즘은 텔레비전 정규방송도 보지 않으니 라디오 들을 일은 없었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알게 되면서, 음악도, 교양도, 영화도 심지어 소설도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다 보니 텔레비전 볼 일도, 라디오 들을 일도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료의 컴퓨터에 깔린 라디오 앱을 보고 '아, 라디오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휴대폰의 스토아에서 라디오 앱을 다운받게 되었다.
나의 청년시절과 마찬가지로 사연을 소개하고 음악을 틀어주고, 주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그 사연이 앱이나 문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때와는 다르다.
다시 라디오를 듣게 되니 좋아하거나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로 사연을 보내고, 내 사연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설레던 젊은 시절의 감성이 기억에서 떠오른다.
그 기억에 아련하게 '그때는 그랬지.' 라며 감성에 젖게 한다.
지금도 라디오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와는 다른 디제이가 진행하는 그 시절의 프로그램 제목이 가지는 아련함은 새로운 감정이다.
내가 알던 프로그램의 익숙한 디제이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요즘 세대들이나 내 또래들의 사연이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다.
라디오에서는 겨울 노래가 흘러나온다. 눈이 내리는 거리의 모습과 겹치는 그 시절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와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의 노래들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야릇한 느낌을 느끼게 하는 라디오와의 만남이 새롭다.
매체가 가지는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남아있는 나의 감성에 감사한다. 그렇게 또 1년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시간들이 다가옴은 아쉽다,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항상 시간은 아쉽고, 선택하지 못한 과거의 시간들이 기억 속에서 감성을 동반하는 때는 왜 항상 겨울인지...
오랜만에 라디오를 통해 젊은 시절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쉽다고 해야 할까. 애매하고 아련한 감성만 잔뜩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이 겨울, 한 해를 보내고 또 맞으며 시간의 아쉬움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이맘때면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정리하고 또 일 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하던 젊은 시절이 아득하다. 이제는 반성할 일 년도 계획할 일 년도 그냥 소리 없이 지나가는 시간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라디오를 통해 일 년을 계획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설사 이상한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이 겨울에 만나게 된 라디오앱이 내년의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