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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니야 Feb 18. 2023

나의 도전은 실패일까, 아니면 진행중인가?

어느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세 번째

  지난 1월 17일 퇴사를 했다. "도전이 두려운게 아니라 나이 들어 못하는 것이 두렵다"라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직장을 옮긴 내가 5개월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의 도전은 여기까지 인가?'라는 의문을 가진채 사직서를 썼다. 그리고 며칠전 사직한 직장의 부이사가 점심을 사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왜?'라는 의문과 함께 '당신은 나에게 미안해야 해. 그리고 이제야 연락한것은 너무 늦은 결정이고, 나는 당신의 식사를 대접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점심약속을 했다. 식사자리는 생각보다 간결했고, '과장님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제가 요즘 힘듭니다. 과장님 가고 나서도 여전합니다.' 같은 넋두리와 사과를 동시에 받았지만, 난 어떠한 아쉬움도 느끼지 못했다. '당신은 당연히 나에게 미안해야 합니다. 그 자리로 옮기면서 내가 손해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이루어진 이런 저런 대화는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우아하고 애매하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그래야 내파트를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우아하지 못한 말투의 그녀와 비교될테니까.


  퇴사결정을 두고 한달 반 정도의 고민을 동반하였으나, 결정은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어쩌면 인지하고 있었던 절차였는지도 모른다. 3년의 코로나 기간동안 코로나 환자들을 직접 간호하고 관리하면서도 미확진자라는 타이틀을 잘 유지했던 나에게 2022년 10월에서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의 스트레스는 나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했다. 9월에 시작한 체계만들기는 나름대로의 인간관계와 내가 가진 노하우로 시작하였으나 10월에 나타난 부원장이라는 직함이 나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하였다. 아니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간섭하기 시작한 부분에서 의견충돌을 보였고, 나는 그녀의 밀어붙이기식의 일처리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호관리직은 간호사로써의 경험과 인간관계에 대한 노하우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인간성이 성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난 차분하고 안정감있는 병동의 구축을 원하였고, 그런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병동의 간호사들과의 끊임없고 일관된 소통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믿음을 주는 관리자로서의 수간호사와 간호과장이 병원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오픈하는 병원의 일반간호사들을 받쳐주는 것이다. 우왕좌왕하며 이러저리 뒤집히는 결정들로는 조직체계를 잡을 수 없다. 시작단계에서 부터 계획되고 일관된 명령체계가 병동을 이끌어 가는 탄탄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노하우는 병동을 계획하고 구성하고 실천해본 관리자만이 아는 것이다. 그런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내가 도전을 선택한 것은 '할수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뒷배를 책임지던 이사장이 행정부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간호사경력 약 3년, 그것도 종합병원도 아닌 요양병원 이하의 경력을 가진 자를 나의 윗선으로 명령체계를 만들면서 나의 체계관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간호조직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 대한 노하우로 밑에서 올라오는 의견충돌들은 충분히 대화나 리드쉽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래가 아닌 위에서의 의견충돌의 경우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간호사 3년차는 본인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년차로, 이제 나도 의료인이라는 자신감에 넘치며 내가 아는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년차이다. 비의료인으로(예를 들면 간호조무사) 직장생활을 10년 이상 하다가 간호사가 된 경우는 더욱 그런 자신감이 강하게 된다. 함정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확인되지 않은 무모한 자신감'에 '공부하지 않아 준비되지 않은 리더쉽'이 더하여 평소에도 별로 없는 교양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아하지도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이 결정하는 책임감없는 판단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결정이 '아니면 말고'를 깔고 시작하는 번복 가능한 판단이다. 이런 판단은 결정권자가 하면 안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 번복 가능한 판단이나 결정은 훗날 시간이 지나 믿음을 필요로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거나 명령을 해야하는 경우 팀원들의 믿음을 얻지 못하게 되어 조직을 와해시키거나 조직문화가 아슬아슬하게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병원을 개원하면서 병동을 꾸려나가기 위한 간호조직의 문화는 초기 시행착오를 동반하며 정착되는 것으로 수간호사의 역량과 간호과장의 역량이 반영되어 정착되기에 이런 시행착오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어떻게 단기화 시킬것이냐가 관건이다. 수간호사와 간호과장이 코드를 맞추어 간호사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시행착오의 시간을 줄일 수 있느냐가 그 병동이 빠르게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느냐를 결정한다. 병동 하나를 개설하기 위해 기본적인 의료장비에 대한 이해와 조작능력을 갖춘 수간호사가 모든 장비에 대한 관리를 해야하며 소모품에 대한 이해와 사용능력, 보관능력이 필요하고 간호인력과 간병인력, 그외 타 부서 인력들과의 의사소통능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만약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떤 능력이 부족한지 수간호사가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배워나가야 하며 그것을 간호과장이 충분히 받쳐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간호과장은 병동관리외의 모든 체계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한다. 요즘 같이 요양병원관리체계가 복잡해지고 타이트해진 상태에서의 간호과장은 일반관리 뿐아니라 감염관리, 보건관리를 비롯한 인맥관리, 인력관리까지 포함하는 조직관리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내가 그런 관리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좋은 지도자아래에서 약 8년 이상을 훈련받았고, 대학원 진학으로 새로운 체계와 관리법을 통하여 관리자 및 리더로서의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전이 위협을 받는 것은 간호과장이라는 자리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아슬아슬한 의사결정을 감행하는 상사와 그 상사의 결정에 따라 나의 행동력과 결정력이 한계를 가지게되면 끊임없이 그 상사와 타협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하는 조직체계를 위해서는 양보와 타협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어느 순간,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면 이미 결정된 일에 대한 실행과 책임을 져야한다. 옳지 못한 결정을 하나씩 받아들이게 되면 나의 능력에 대한 회의와 동시에 도전의식에 상처를 입게되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게 된다. 끌려가기 위해 시작한 도전이 아니기에 멈추어야 하는 시점이 어디인지 살피게 되는 것이다. 나의 멈춤의 시점은 '애사심'에 있었다. 상사의 입에서 '애사심'이라는 단어가 뱉어지면서 내가 했던 지난 몇개월간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난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도 애사심을 가지고 근무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애사심'은 20세기 독재정권 아래의 경영인들이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강탈할 때 쓰던 표현으로, 나에게 애사심은 그런 의미이다. 그리고 의료인에게 애사심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의료인은 회사에 소속된 직업인이 아니라서 애사심보다는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으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애사심이 아니라 '인간애' 또는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의료인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단체에서 의료 관리직의 일인으로 조직 구성을 통해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다하는 것이다. 의료 및 간호조직을 제대로 갖추어 환자들에게 질 좋은 의료 및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료단체의 간호관리직이 해야하는 사명이다. 그런 사명의식을 가지고 난 간호과장이라는 직위에 도전한 것이다. 나는 현재까지 나의 직위에 맞는 주어진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좀 더 나은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직위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스카우트까지 되면서 자리를 옮겼고, 옮길 때 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나에게는 애사심은 없다. 다만 내가 처한 지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나에게 상사는 '애사심'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난 지금이 퇴사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고민을 했다. 그렇게 요구하는 상사를 두고 간호과장이라는 자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나의 도전을 실패로 끝낼 것인가?

  결정을 하기 전에 또 다른 사항을 고려해야 했다. 현재 속한 단체(병원)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상황을 무릅쓰고 머물렀을 때 과연 이 단체는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뒤로 물러 않은 대표이사와 병원의 생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부이사, 조무사로 오래 근무하다 간호사된지 3년 경력의 간호행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직설적이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간호조직에 대한 이해가 없는 행정부원장, 마찬가지로 규모있는 병원관리는 해본 적 없으나 생색은 내고 싶은 원무과장과 간호조직의 위상과 의료체계를 제대로 만들고 싶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의견충돌들을 거쳐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것에 더하여 제일 중요한 의료보험체계에 따른 수익구조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여 난 하룻밤을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렇게 가지말라고 말리며 나를 잡았다가 마지막에는 도전의식을 격려해 주었던 나의 롤모델인 전직장의 간호부장님과 나를 믿고 따라 주었던 투석실의 수간호사, 병동의 간호사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렇게 난 나의 도전을 멈추었다. 


  앞서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병원을 하나 개원하기 위해서는 수억의 자금과 의료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간호조직의 빠른 안정이 병원의 흥행을 좌우한다. 병원에서 가장 큰 조직이 간호조직이다. 병원의 크기에 따라 간호조직의 크기가 달라질 만큼 인력면에서나 업무면에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크기이며, 병원업무의 80%이상이 간호조직의 업무이다. 그런 조직의 수장으로 인력관리의 능력과 조직관리의 능력은 병원의 색깔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외래가 활발한 병원의 경우는 의사의 능력에 따라 조직의 흥망이 좌우될 수 있지만, 틈새시장인 요양병원의 경우는 외래가 활발하지 않고 입원환자가 위주이다 보니 간호조직의 역량이 의사의 역량을 넘어 선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때는 간호사병원이라는 타이틀도 가졌다고 한다. 그 때 만큼은 아니지만 병원에서의 간호조직의 업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역활은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개원하는 병원의 경우는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간호과의 수장을 제일 처음 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간호과장은 인력모집에서 관리, 조직 체계 구축과 조직이 추구하는 상황에 따른 의료장비의 구입, 의사의 종별에 따른 의료소모품의 준비, 타 부서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체계의 관리, 인증관리를 위한 기초적인 시설 배치 및 관리까지 관여해야 한다. 간호과장이 독자적인 의사결정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런일 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는 병원업무와 간호조직에 대한 이해와 현 시대의 의료보험체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의사결정권자가 되어야 개원하는 병원은 성공적인 안착이 가능하다. 하나의 병원을 개원하기 위해 시설의 입지, 구조, 동선, 시설, 인력 등등의 눈에 보이는 물질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력까지 많은 시간과 경제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병원은 그런 곳이다. 일반 의원처럼 의사 혼자 외래만 보는 그런 곳이기 보다는 지역의 의료체계를 만들어 주는 기초적인 곳이 된다. 물론 돈을 벌기위해 병원을 개원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체계를 갖추고 의료의 질을 높여 지역에서 자리를 잡으면 의료보험체계는 지불을 한다. 단, 의료보험체계가 지시하는 제약과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함정이 있다. 그래서 많은 좋은 원장님들은 의료보험체계가 지불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환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많은 의술들을 시행한다. 그런 의사들이 많을 수록 그 병원의 수익 구조는 떨어진다. 그래서 많은 의료조직에서 그러한 수익구조들을 바꾸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이런 의문이 든다. '나의 도전은 과연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진행중인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8년의 시간을 고생해서 구축한 나의 왕국을 떠났지만 5개월을 투자한 새로운 장소에서의 도전은 마쳤다. 그러나 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나를 가꾸기 위한 투자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막연하게 시작한 브런치작가로의 입문은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 '70대에 자서전을 쓰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국문학의 이해, 이미 시작하였지만 다시 시작하는 나에 대한 도전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도전'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의 의지를 잡아본다. '언제나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오늘도 난 새로운 시간표를 작성해 본다. 


Feb-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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