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하다 정신 차려보니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려는 6월,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어영부영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주가되는 독서모임이 되어버렸다. 처음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때 시간이 안될것 같아 거절했었다. 그러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리고, 이런 저런 사건들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고, 이것저것 따질것도 없이 승낙을 하고 모임의 주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어떤 모임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흥미를 빨리 잃어버리는 내 성격상 어떤 일을 오랫동안 끌고 나가지 못하는데 모임의 주체가 되어버렸고, 회원들의 압박(?)으로 최소 2년이상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짧은 기간의 모임이나 단회성의 모임은 설계하고 주도한 적이 있어도 6개월이상 가는 모임이나 집회의 주체가 된 적은 없는것도 흥미를 빨리 잃기도 하고, 어떤 일이나 조직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내 자유분방한 성격때문이리라. 타인이 주체가 되는 모임을 설계하고 모임이 성립되는 걸 보고 빠진적은 있어도 내가 모임을 끌고 나간적이 없는터라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앞으로 지속하자는, 아니 모임원의 표현으로 '영원히 지속되어 우리과를 대표하는 모임이 되자, 그래서 후배들에게 잘 물려주는 모임이 되고 싶다'는 그런 모임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인내와 관심을 쏟아야 함과 동시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알 수 없는 그런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그렇게 주어졌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은 그렇게 되어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내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읽게하고 독서 후 서로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어야하는 일까지 맡게되었다.
이 독서모임의 주제는 "문학 작품 읽기"이다. "문학 작품"이라는 테두리에서 도서를 선정하여 읽기로 한 것이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평소 누가 추천해준(지인이나 매체등에서) 책이나 도서관의 서고에서 목차를 보면서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한다. 평소에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나 철학, 인문학 서적들을 뒤적이던 내가 독서모임의 주제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독서모임이나 독서토론회 같은 곳의 주제들이 베스트셀러이거나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도서들을 선정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이 독서모임의 회원들이 "국문학과 학생"으로 이루어진 특징으로 <문학>에 초점을 맞추기로했다. "문학"이라는 주제의 책들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했고, 특히 모임에서의 도서 선정이란 것은 모두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것과 그 모임의 주제에 어울리는 도서여야 한다는 생각에 더 많이 고민했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들을 읽고 있는가를 생각했을 때, 대답은 미지수였다. 특히 나를 생각했을 때, 내가 선정하는 책들이 <문학>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도서들이고, 또한 요즘의 베스트셀러들은 비문학이 주를 이루는 듯하고, "국어국문학과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의 특색에 어울리게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임의 주제를 "다양한 문학 작품 읽기"로 정하고 회원들에게 우리 독서모임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나를 포함하여 4명이 시작한 이 모임의 회원들이 모두 동의를 했고, 모임의 이름도 '시나브로, 문학에 스며든다'로 정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모임의 첫번째 선정도서는 '국어교과서 작품읽기'시리즈 중 "고등 시"였다.
시를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시를 잘 이해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지극히 주관적인 책읽기를 한다. 나의 책읽기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 위주로 이루어지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특히 '시'라는 분야는 지독히도 주관적인 읽기-물론 시를 분석하는 경우는 다르겠지만-이다. 그래서 문학작품 읽기를 시작하면서 쉽게 접근하자는 의미도 있고, 우리가 알고있는 시-그러니까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과 요즘 교과서에 실리는 시는 우리의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들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는 의미에서 선정하였다. 회원들은 의외로 좋은 선정이라는 반응이었고, 책을 읽고 모여서 의견을 말할때도 학창시절의 생각과 함께 '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이 생긴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학교에서 배우는 시들도 알게되어 좋았고, 이 시들이 왜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들을 공유했다. 시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첫번째로 선택한 '시'장르가 성공적이었다는 느낌으로 요즘 유행하는 고전작품 이어쓰기의 관점으로 이상의 <날개>에 이어쓰기를 감행한 작품 "정오의 사이렌이 울릴 때" 를 두번째 도서로 선정했다. 이런 문학적인 작품 세계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도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회원이 있어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평소에 비문학작품을 많이 읽으시는 양선생님도 최신 작품들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세번째로 선택한 도서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러시아 작가들 중 카프카를 선택한 것에 특별한 동기는 없다. 다만 "변신"이 가지는 주제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들의 생각에 관한 이야기. 그렇게 책을 선정하고 읽고, 이야기를 하였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러나 단지 독서를 위한 독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독서는 생각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정신활동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독서를 그냥 글읽기만으로 그친다면 독서의 큰 기쁨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책을 읽고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많은 자기계발서와 많은 투자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서도 그렇고, 다른이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렇게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기에는 독서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 과연 각자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해 본다. 나는 지독히도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모든일을 내 위주로 생각한다. 예전의 내 필명이 "내가 기준"이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일의 기준은 '나'라는 생각에서 만든 필명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릴때 누군가 키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나보다 작으면 키 작은 사람이고, 나보다 크면 키 큰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일의 기준이 내가 되는 나의 생각에는 독서도 내가 위주가 되었다. 그런 내가 독서모임을 주관하면서 다른사람들이 읽어도 부담되지 않는 책을 고르기 위해 고민한다. 4명중 3명이 직장인이고 다른 모임들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책읽기가 부담이 되지않게 단편소설위주로 선정을 하고 있다. 짧게 읽어 부담없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읽기를 하기위해 선정되는 책들은 대체로 고전소설이다. 현대의 단편 소설들도 읽어보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선정하여 읽는다. 그래서 모임에서는 평소에 선정하지 않을 것같은 종류의 책들을 선정하여 서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회가 되면 요즈음의 장편동화와 아시아문학중 서사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해야겠다. 그런 시간들이 조만간 찾아오길 기대해 보자. 그리고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생각만 하지말고 일단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길 추천한다. 요즘은 전자책도 많으니 책들고 다니기 부담되는 경우에 핸드폰에 저장하여 짬짬히 읽어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오늘도 소소하게 일상에 대한 이야길 한다. 최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수요일에는 작품을 토요일에는 일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 오늘의 다짐!!
Oct-15.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