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나올 때마다 길고양이 가족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헤이리 마을은 한 집 걸러마다 예술인들이 갤러리나 작업실, 북카페를 운영하는 독특한 마을이다.
집을 떠나온 우리가 단기 임대로 정착한 스튜디오는 헤이리 마을 내에서도 관광객이 자주 드나드는 거리의 적색 벽돌 건물이었다.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일층과 이층에는 이름난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서 스튜디오 창으로 갓 구운 빵 냄새가 올라왔다.
남편은 원룸 스튜디오에 최소한의 세간살이만 가져와서 되도록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스튜디오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야외용 테이블이 있는 잔디마당이 나왔다. 아침이면 마당에 앉아서 밤이슬이 맺힌 밤나무 가지에 까치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바람을 쐬었다.
헤이리는 산책하기 좋은 동네였다.
실내에 가만히 있으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산책을 나가서 걷고 또 걸었다. 가게들의 반짝거리는 유리 쇼윈도와 장미꽃이 흐드러진 초록 넝쿨과 옥수수수염처럼 늘어진 연푸른색 밤나무 꽃을 보면서 정처 없이 걸었다. 평일에는 거리가 한산했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나 젊은 커플들로 활기가 넘쳤다. 독특한 외관의 3층 건물들 사이로 넓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서 걷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묵직한 슬픔이 찾아왔다. 그토록 많은 길을 아이와 함께 걸었는데. 손을 잡거나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도란도란 예기를 나누었는데. 걷다가 다리가 아파오면 아담한 카페나 식당에 들러서 눈에 띄는 메뉴를 골라서 나눠 먹었는데.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아이는 없었고 더는 그 얼굴을 볼 수도 말을 걸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걷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이 이름을 불러보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여전히 내 곁에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새끼 고양이들을 발견했다며 나를 이끌었다. 이웃집 뒤편의 데크 위에 검고 흰 무늬가 뒤섞인 길고양이가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 세 마리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새끼들이 젖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옆으로 누워서 다리로 품어주었다. 새끼 두 마리는 어미를 닮아서 흰색과 검은색이 섞였고 나머지 한 마리는 검정, 흰색, 황갈색이 뒤섞인 삼색 고양이었다.
한 번은 어미 고양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새끼 고양이들이 데크 위를 돌아다니다가 한 마리가 일층 아래로 떨어졌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새끼 고양이가 가냘픈 소리로 울었다. 풀밭에서 안아 올려서 털 뭉치처럼 부드러운 몸을 만져보았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떨어지고도 무사한 새끼 고양이에게는 ‘바람’이라는 이름을, 나머지 고양이들에게는 ‘밤’과 ‘해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 아이도 바람처럼 가벼워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도 다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후로는 참치캔이나 닭고기를 갖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고양이를 보러 나갔다.
조심성 많은 어미 고양이는 노란 눈으로 나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갈라치면 이빨을 내보이며 냐옹 울었다. 새끼들은 데크 바닥의 깨진 나무 틈 사이로 얼른 숨었다가 내가 뒤로 물러나면 슬그머니 나오곤 했다.
새끼 고양이들의 뾰족한 귀가 나무 구멍 밖으로 살짝 보이고 자그마한 앞발이 올라오는 걸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셋이서 뒤엉켜서 꼬물대는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들은 아무리 봐도 싫증 나지 않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거칠게 숨을 들이쉬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다가 신발을 꿰신고 고양이들을 보러 나갔다. 자연의 순리대로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 움직이는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천천히 흘러갔다.
새끼들을 키우느라 사냥을 나가지 못해서 굶주렸을 어미는 나를 경계하면서도 두고 간 생선이나 닭고기를 급하게 씹어서 삼켰다. 새끼들은 매일매일 자랐다. 비가 많이 내린 날 고양이들은 비를 피할 곳이 없는 데크를 떠났고 며칠 후에 아래층 작업실 베란다에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털이 부숭부숭해진 새끼 고양이들은 쑥 자란 것 같았다. 조금 큰 새끼 둘은 앞발로 서로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덩치가 작은 막내 고양이는 어미 옆에 꼭 붙어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길고양이 가족이었다.
5월 말에서 6월로 접어들자 날씨는 늦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었다. 밤에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보면 먼 숲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쉼 없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별을 세어보고 달의 모양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비가 오지 않는 밤이면 계단 입구를 밝히는 알전구를 켜고 와인을 갖고 마당에 나와서 한두 잔 마셨다. 술에 취하면 아이를 잃어버리고 낯선 곳에서 와인을 마시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밥을 해 먹지 않았다. 약천사에 다녀오는 길에 식당에서 하루 한 끼를 사서 먹을 뿐이었다. 화창한 날에 꽃으로 단장한 음식점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점원이 세팅해준 음식을 삼키다 보면 목이 메었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기뻐했을 아이가 생각나서, 그 아이가 갑자기 떠난 것이 서러워서, 아이가 없는데도 꽃이 핀 뜰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것이 서글퍼서 눈물을 참으면서 밥을 먹었다. 누군가 보면 의아하게 여길까 봐 얼굴을 돌리고 땀을 닦는 척 냅킨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열여섯 해 동안 최선을 다해 살다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무리한 아이는 슬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곳에 갔을까. 뒤끝 없이 밝은 성격이었던 내 아이가 더 이상의 슬픔이나 아픔이 없는 곳에서 부디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