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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6. 아이를 잃어버린 떠돌이들의 시간

단기 임대 숙소

삼우제를 지낸 후 남편과 나는 파주로 향했다. 

남편은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당분간 일을 쉬기로 했다. 아이가 베란다를 타 넘은 집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당장 갈 곳이 필요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 혼자 살던 지인이 가족들과 살림을 합친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작은 방 두 개에 밝고 아늑한 부엌 겸 거실이 있는 집이었다. 지인들과 그 집에서 삽살개가 지키는 마당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애연가인 지인이 유리문을 밀고 나가서 마당에서 담배를 피울 때 나도 따라 나가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인은 빙긋이 웃으며 당장 이사오라고 말했었다.     

남편은 그에게 집이 나갔냐고 물어보라고 재촉했다. 

망설이다가 연락을 했다. 지인은 내가 집을 구한다는 소식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끼어들어 아이가 갑자기 떠났다고 알렸다. 깜짝 놀란 지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가 살던 집은 이미 나갔다고 했지만 당장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면 그 동네 말고는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차를 몰고 부동산으로 가서 아파트가 아닌 일층이나 이층 주택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아이와 함께 지냈던 추억이 많은 곳이면 괴로울 것 같았고 고층아파트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공인중개사는 전월세 대란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마땅한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싸구려 호텔에 묵으면서 남편과 나는 인터넷으로 부동산 정보를 알아보고 전화를 걸어서 집 구경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원주택 일층 전세가 한 곳 있었지만 직접 가보니 둘만 살기에는 너무 크고 어두워보였다. 잔디가 깔린 마당 한구석 연못은 텅 비어 있었다. 커다란 전원주택에서 연못에 금붕어를 키우고 마당에 꽃을 심고 큰 방과 거실에 세간살이를 갖출 수 있을까. 하나뿐인 아이를 잃고도 집을 꾸미고 살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했다. 내 인생은 이미 끝나버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내가 왜 집을 떠나서 낯선 베개를 베고 있는지 깨닫고 얼어붙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 할 아이의 체온, 알맞게 탄력 있는 팔다리와 억세어지기 시작한 숱 많은 머리카락, 매끈하고 부드러운 배의 피부와 피지 분비로 인해 뾰루지가 돋아난 등의 감촉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 

그 애가 어떻게 되었던가,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면서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딱히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가 마지막에 느꼈을 슬픔과 아픔은 나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통받아 마땅했다.     

                                                               

소식을 들은 친구 한 명이 지역맘 카페를 통해서 단기 임대 숙소를 알아봐 주었다. 

우리는 헤이리로 가서 베이커리 카페 삼층에 위치한 원룸 스튜디오를 구경했다. 통유리창으로는 잔디가 파랗게 돋아난 주차장 건너 갤러리와 카페가 줄이은 거리와 야트막한 산과 하늘이 보였다. 실내의 절반은 층고가 높아서 개방감이 있었고 천장이 낮은 부분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싱크대와 빌트인 세탁기와 냉장고가 갖춰져 있었고 사다리로  올라가는  다락방을 침실로 사용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를 사무실로 사용하던 남자는 갓 오십 대가 된 우리와 비슷한 또래였다. 일찍 결혼해서 다 큰 아들을 데리고 토목 관련 개인사업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가 놓인 두 개의 책상 사이에 칸막이 겸 서류함으로 사용하는 책꽂이를 배치해서 작업공간을 분리해놓은 구조였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고수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한 아버지와 달리 골격이 섬세한 이십 대 초반 청년의 검은 머리카락은 소년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예전에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아이가 커서도 취업을 못하면 개인사업자인 자신이 직원으로 고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을 믿지 않았다. 아이는 다 커서도 손가락을 빨았고 결벽증이 있는 남편은 아이의 버릇을 못 견뎌했다. 나는 남편과 아이가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자상하지 못한 남편이 미웠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아이도 외면하고 싶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마침내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택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헤이리 원룸 스튜디오를 단기 임대하기로 계약했다. 이사는 일주일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다시 차를 타고 영종도로 갔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해변에 있는 신축 호텔을 알아보다가 아이와 함께 호캉스를 가려고 계획했던 곳이었다. 

금요일 오후의 영종대교는 차량 정체 없이 바다 한가운데로 뻥 뚫려있었다. 불빛을 환하게 밝힌 호텔 프런트에  도착하자  주말을 즐기러 온 청춘  남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나 연인과 함께 온 그들은  한껏  들떠서 낭랑한 목소리로  서로를 불렀다. 

주차할 곳을 찾다가 지친 남편과 나는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을 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후에 나는 객실에 남아서 소리 내어 울었다. 

융통성 없는 성격인 남편은 매사에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고 들었다. 꽉 막힌 남편에게 질식할 것 같았다.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나는 나일론 백팩에 잠잘 때 입는 옷과 속옷, 지갑, 핸드폰 충전기를 챙겼다. 일단 다른 호텔로 갈 예정이었다. 

아이의 영혼이라도 만나기를 바라며 떠나려는 찰나에 객실 문이 열리고 담배를 다 피운 남편이 들어왔다. 

그는 방음이 하나도 안된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불평했다. 그에게 산책을 나가겠느냐고 기운없이  물었다. 

피곤하다고, 누워서 쉴 거라고 말하겠지. 나는 바닥만 쳐다보았다.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된다. 그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우리는 어차피 헤어질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대뜸  ‘나가자’고 말하며 앞장을 섰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가 그친 오후였다. 오월의 나무들과  푸른  잡초에는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해변가는 영종도 마린 시티로 조성되었지만 건물 대부분은 유리창만 휑한 공실로 비어있었다. 건물이 들어서지 못한 빈 공터에는 웃자란 잡풀이 무성했다. 

거리를 지나는 인적은 드물었다. 우리는 안개가 자욱한 해변가를 오랫동안 걸었다. 말없이 걸으면서 지쳐 나가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다리가 뻣뻣해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자 천천히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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