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들처럼 Oct 24. 2021

5. 삼우제

깊은 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정처 없이 걸었다

어두워진 후에 산책을 나왔다. 

언덕배기 모텔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자 교외선 열차가 지나가는 고가도로가 나왔고 마을로 통하는 갈림길이 보였다. 

왼쪽 길로는 붉은색 지붕이 있는 세련된 이층 집이 있었다. 오른쪽 길로 가면 인가에 닿을 때까지 논밭을 가로질러가야 했다. 우리는 왼쪽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얀 창살문 너머로 잔디밭이 잘 가꿔진 별장처럼 보이는 이층 집을 지나서 논밭 사이를 걷다가 차가 여러 대 서 있고 환하게 불이 켜진 전원주택을 지났다. 

마당에 묶어놓은 개들이 짖어대자 바비큐 화로에 벌건 숯을 담아 나르던 아주머니가 인사를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가 마을의 공통 인사말인 모양이었다. 

‘저기 모텔에 묵어가는 사람이에요.’ 남편이 인사하자 아주머니는 유쾌한 표정으로 ‘안녕히 가세요.’라며 마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려나 보았다. 

남편은 앞장서서 계속 걸었다. 오월 저녁 바람은 신선했다. 길 양 옆은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채워 넣은 논이었다. 가로등 빛은 아늑했다. 온 사방에서 수만마리쯤 되는 개구리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논에 고인 물 표면 위로 가로등 불빛이 어른거렸다. 사위는 인가 하나 없이 캄캄했고 개구리들은 여름 장맛비처럼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걷다가 지쳐서 수월하게 잠들 수 있도록, 최대한 멀리 돌아가는 길로 갔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자갈을 던지듯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캄캄한 거리를 걸었다. 모텔로 돌아와서 더운물로 씻은 후 남편과 한 이불속에서 꼭 붙어서 잠들었다. 

이제는 우리 둘 뿐이었다. 벼락처럼 닥쳐온 아이의 부재가  견딜 수  없어서 잠결에도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다.                                                                                           


이튿날 아침에도 산책을 나섰다. 고가 아래의 하천을 따라 야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자 왼편에는 계단식 논이 있었다. 목을 여러 겹으로 움츠린 커다란 백로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갔다. 

오른편 길가 풀밭 옆으로는 시냇물이 흘렀다. 그 너머로는 황폐한 무덤이 드문드문 흩어져있는 야산이 나왔다.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덤들은 정다워 보였다.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데다가 화강석으로 빙 둘러쳐진 묘지석에 한글로 이름을 새겨놓은 부부 묘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묘지석에 새겨진 날짜와 이름, 가족관계를 읽어보았다. 일 년 안에 잇따라 유명을 달리한 부부의 무덤이었다. 세 자녀의 이름과 출생 연도, 그들의 배우자와 손자녀들의 출생 연도도 있었다. 다복한 집안인가 보았다.

시냇가에서 나는 돌을 하나 골랐다. 황갈색 타조 알만  한 크기에 줄무늬가 있는 매끈한 돌이었다. 

나는 돌을 시냇물에 씻어서 입에 대고 혀로 핥아보았다. 땅 속에 반쯤 묻혀있던 돌은 햇빛을 받았는데도 시원했다. 혀의 돌기처럼 오돌토돌한 표면에서는 돌의 맛이 났다. 

남편이 유성펜으로 돌 표면에 아이의 비문을 써넣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 여기 잠들다.‘     

    

자동차를 타고 수목장을 한 풀밭으로 가서 아버지의 비석 옆에 아이의 조그만 묘비를 땅에 묻었다. 

비석 아래쪽에는 작고 노란 풀꽃들이 아기 이불만한 크기로 모여서 환하게 피어있었다.

이전 04화 4. 수목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