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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3. 아이가 처음 타 본 리무진

사랑하는 내 아이가 살아있을 적에 해준 것이 너무 적었다

밤이 늦도록 자리를 지켜준 조문객들을 배웅하고 남편과 나는 제단 앞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시신은 같은 건물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다음날 정오 무렵에 화장장으로 향할 것이었다.

기막힌 상황에서도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아무튼 지금은 우리 가족 셋이 한 건물 안에 있기 때문이랄까.

자정이 넘어가자 우리는 제단 안쪽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서 비몽사몽간에 잠깐 눈을 붙였다이 모든 것이 악몽이기를눈을 뜨면 사흘 전으로 돌아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렇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로 속절없이 날이 밝았다.

남편과 나는 좁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 방을 나와서 비용 정산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눴다. 아이를 위해 앞으로 더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만 십육 년의 짧은 생을 살고 간 아이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 없었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세월이 많이 남아있을 거라고 믿고 매사에 허리띠를 조여매기만 했다. 아장아장 걷던 눈앞에 보이는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떼쓸 때, 키가 쑥쑥 자랄 무렵 이것저것 먹고 싶다며 조를 때, 청소년이 되고 최신형 휴대폰을 갖고 싶어 했을 때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던 기억이 시퍼런 날붙이처럼 가슴을 베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나흘째 날 정오가 지나자 남편의 큰형 부부가 찾아왔다.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발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와 남편은 검은 리무진에 올랐다친척들은 각자 차로 이동했다아이의 관은 벨벳 천에 덮여서 뒷좌석에 고이 실렸다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 타보는 리무진이자 짧은 생에서 눈을 감은 후에야 단 한번 타 본 차였다.

화장장까지는 멀지 않았다정체 없이 길이 뚫려서 차로 이십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우리 차례가 되려면 한 시간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화장터 직원은 위층에 전망 좋은 휴게실도 있고 따로 카페도 있으니 편하게 기다리라고 권했지만 나는 아이와 함께 차에 있고 싶었다.

기사님이 주차장 구석의 나무 그늘에 차를 세워주었다무성한 아카시아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녹색 틈새로 햇살은 밝았다열어둔 차창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아이는 바로 옆에 누워 있었지만 단단한 관이 나와 아이를 가로막아 그 얼굴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무력하게 차에 앉아서 화장할 순서를 기다릴 뿐이었다.

내 손을 또 남편이 끌면서 시간이 되었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지정된 소각로 앞에 서자 하얀 벽에 난 유리 안으로 커다란 쇠 난로 같은 원통이 보였다. 전광판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꺼지는 동안 형님 부부와 오빠 부부는 쉴 새 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형님네와 가족들의 안부를 나누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질문에 일일이 대꾸하느라 나는 분쇄기에 들어가기 전 아주 잠깐만 보여준 아이의 뼈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최신식 시설을 갖춰서 소각과 분쇄에 걸리는 시간이 한 시간도 안 걸린다는 설명은 미리 들었다. 나는 양복을 입은 직원이 정중히 건네주는 하얀 보자기를 얼떨떨하게 받았다. 보자기 안에 든 묵직한 상자는 아직 뜨거웠다.     


그 와중에도 다행한 일이라면 아직도 남은 일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일단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유골함을 들고 평소 아이가 생활하던 곳을 둘러보는 노제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멀리서 온 분을 되도록 잘 대접하려고 식당을 찾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서 칼국수집으로 갔다. 열 살 위인 형님께서 나에게 링거를 맞지 않으려면 탄수화물을 먹어야 한다며 앞접시에 국수를 덜어주었다. 권하는 대로 국물을 떠먹는 나를 보며 형님께서 동서가 잘 버틴다며 말씀하셨다.

나는 잘 버티고 있는 거구나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기절하지도 않고 따라 죽지도 않고 장례를 치르고 밥을 먹는구나멍한 머릿속에서 한 가닥 생각이 지나갔다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을 보았다.

잔인한 운명이 나를 쉼 없이 고문하고 있었다나에게 일어난 일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로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미치거나 기절하거나 심장이 당장 멎어서 죽으면 좋으련만사흘 전까지 옆에서 뛰어다니던 내 아이의 유골함을 차에 놓아둔 채로 식당에 앉아서 국수를 먹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호수공원으로 갔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철마다 벚꽃과 설경을 보러 오고 호수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던 곳이었다.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산책로를 걸었다아이에 대한 추억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동안 몸속 깊은 곳에서 샘물이 솟아나듯 눈물이 흘러나왔다아이의 유골함을 품에 안은 부모에게 어울리는 습기였다.

공원 주차장에서 친척들을 배웅한 후 남편과 둘이서 아이와 즐거운 추억이 많았던 곳만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가 떠난 집이나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학교에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수영과 스케이트, 코딩을 배우고 숲 놀이와 전통놀이를 했던 구립 문화센터로 갔다.

아직도 뜨끈뜨끈한 유골함을 안고 어둠이 내린 광장을 가로지르는데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와서 열기를 식혀주었다또 차에 올라서 한강변으로 갔다잔디밭을 거닐며 어두운 강물 너머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이승을 떠난 아이도 저 불빛을 보고 있을까, 생각에 잠겨있는데 우리를 걱정한 올케가 왜 여즉 안 오냐며 자꾸만 전화를 걸어왔다.

그날 밤은 오빠 집에서 자고 다음날 친정아버지를 모신 양평에 수목장을 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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