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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1. 시간이 멈추었던 날

열일곱 살에 십일 층 아파트의 베란다를 타 넘어간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바로 내 아들이다. 

나는 난간 밖 까마득한 바닥을 쳐다보았다. 

바람에 날려간 빨래처럼, 푸른 잔디밭 위에 아이의 회색 운동복이 보였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당장 여기서 나도 뛰어내려야 할까. 순간 새카맣게 밀려든 공포로 눈앞이 아찔해졌다. 

오후 다섯 시, 낮부터 부슬비가 내렸다가 그쳤던 날이었다. 

'어쩌면 비가 내려서 땅바닥이 푹신할지도 몰라.' 

이성을 부여잡으려 애쓰면서 차마 뛰어내리지 못한 채로 나는 119에 신고하면서 현관을 뛰어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달려서 내려갔다.         


화단에 모로 누운 아이의 몸은 따듯했다. 창백한 얼굴에 곤히 잠든 것처럼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체육복 운동복을 입은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따스하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잠든 아이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휴대폰이 울리고, 화상통화로 전환한 119 요원이 아이를 반듯이 눕히고 심장 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카메라로 나를 보면서 구급요원이 자세와 동작을 고치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절망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사하길 간절하게 빌었다. 차츰 아이의 하얀 코에서 검붉은 피가 한줄기 흘러나왔다.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바닥 아래에서 아이의 심장은 느리게 뛰다가 이윽고 완전히 멎었다. 

나는 중지에 펜 혹이 생긴 아이의 손을 어루만지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웃자란 잔디 사이로 기다란 벌레 한 마리가 구불구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망연히 풀밭과 아이의 몸과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영혼이 나를 보고 있을까.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발소리를 울리며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이를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미안해서 차마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열을 지어서 달려온 구급대원들이 큰 소리로 숫자를 세며 심장 전기충격기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땅바닥에 전기가 흐를 테니 멀리 떨어지라고 말했지만 나는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곁에 있고 싶었다. 11층에서 추락한 아이가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구급대원들이 심장 전기충격을 시도하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외치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구급대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들것을 가져와서 아이를 엠뷸런스에 태웠다. 그제야 전화로 남편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숫자 버튼을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몇 번만의 실패 끝에 전화가 연결됐다. 남편은 비명처럼 짧은 신음을 내뱉은 후 바로 오겠다고 말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넋을 놓은 나를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실어서 차에 태웠다. 구급차가 출발하자 토할 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자동차 시트에서 내려와 차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서 어디론가 사라지고만 싶었다. 내 몸은 맥없이 흔들리면서 어디론가 정처 없이 실려갔다. 

차에서 내리자 낯선 남자들이 내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병원 대기실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헐떡이는 내 팔을 제복을 입은 남자가 꽉 잡고 있었다. 남자는 허리춤 벨트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혀졌다. 피 묻은 옷을 입은 채로 밝은 형광등 불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두운 곳을 찾아서 몸을 숨기고 싶었다. 자꾸만 내가 구석으로 가려고 하자 나를 붙들고 있던 이들이 대기실의 긴 의자로 칸막이를 친 후 바닥에 앉도록 해주었다. 내 호흡은 거칠게 코와 입을 통해서 나왔지만 멈춰버리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다시 하겠냐고 물었다.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남편의 전화번호를 묻더니 어딘가로 가 버렸다. 

권총을 찬 남자가 나를 보면서 '엄마, 애기 장례식 치르게 정신 차려야지'라고 말했다.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의 장례식을 치를 수는 없어, 나도 아이와 같이 떠나야 해.' 

한 가지 생각만이 또렷하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대로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억센 손아귀가 곧장 내 머리통을 잡아 쥐었다. 머릿속은 뜻 모를 소음이 꽉 차서 웅웅거렸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똑똑히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래도록 그러할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 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들은 경찰과 병원 보안요원이었다. 남편이 도착하자 그들은 내가 머리를 부딪치며 자해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내 옆에 서서 손을 꼭 붙잡은 채로 그들의 말을 들었다. 누군가가 남편에게 아이의 시신을 확인하라고 말했다. 나는 갈 필요 없으니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굳이 따라나섰다. 내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우리는 복도를 따라가서 문이 열린 방으로 들어갔다. 좁고 긴 침대에 내 아이가 누워 있었다. 방금 전까지 평온했건만,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 사이에 피거품이 맺혀 있었다. 웅급실에서 기계로  강하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고 했다. 남편은 우리 애가 맞다며 확인 절차를 마쳤다.

대기실로 돌아 나오자 연락을 받고 도착한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오빠에게 나를 부탁하고 병원비를 수납하러 갔다. 오빠가 생수병을 건네주며 물을 마시라고 말했다. 오빠와 나는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란히 서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남편이 다시 돌아와서 내 손을 잡았다. 권총을 찬 남자가 이끄는 대로 남편과 나는 경찰차 뒷좌석에 탔다.

차는 곧장 우리가 살던 아파트로 향했다. 

그 와중에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둠이 내린 현관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아는 이웃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경찰 두 명이 앞장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하게 말하라고 했다. 이른바 현장 진술이었다. 

나는 캄캄한 머릿속을 더듬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경찰은 아이의 키와 체중, 그리고 내 키와 체중에 대해 물었다. 아이의 체격이 나보다 훨씬 컸다. 아이 키는 175센티미터에 몸무게 55킬로그램, 나는 162센티미터에 48킬로그램. 

경찰은 고개를 갸웃했다. 173센티 아니었나. 

유아 때 아이가 소아과 침대에 누워서 키를 쟀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는 모로 누운 채로 연신 꼬물거렸다. 그때처럼 아이가 다리를 움츠렸었나.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몇 시간 전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도 곧장 뛰어내리지 못한 채로 붙잡고 있었던 베란다 난간의 감촉만이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경찰들은 남편의 안내로 집 안을 확인했다. 그동안 나는 내 방에서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내 방과 침대의 잘 정돈된 이불과 빨강 스툴의 색감까지 꿈이라고 여기기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경찰차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달린 후 주차장에 멎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한 번 가본 적 있는 민원실과 멀리 떨어진 경찰서 본관 건물 앞이었다. 앞장선 경찰을 따라서 곧장 건물로 들어가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나는 크림색 레자 소파에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는 쇠사슬로 연결된 수갑이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경찰이 묻는 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도록 자세하게 말했다. 아이의 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야단을 쳤고 아이가 거실로 나갔다.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나왔을 때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길게 설명할 것도 없었다. 

형사는 아이가 평소 성격이 어땠는지, 학교 생활은 어떠했는지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평소에는 나와 사이가 좋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게임 때문에 갈등을 빚었다는 말을 들은 후 경찰은 책상으로 가더니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했다. 

한참 후에 돌아온 형사는 출력한 문서를 보여주면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게 했다. 

몇 가지 문구를 수정한 후 형사는 내 휴대폰을 제출하라고 말했다. 형사사건이므로 부검을 원치 않는다면 휴대폰 포렌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연락해야 할 곳을 떠올리며 망설이는 사이에 남편이 나서서 포렌식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형사는 포렌식 하는데 2~3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며 유심칩을 가져가서 임시로 중고폰을 대여해서 전화를 사용하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침착하던 남편이 언성을 높였다. 아이의 노트북을 확인했고 휴대폰도 가져갔는데 내 휴대폰 포렌식이 왜 필요하나며, 애 엄마가 범죄자냐며 영장을 가져와야 내주겠다고 말했다. 형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경찰서 건물을 나왔다. 주차장을 지나고 거대한 철문을 지나서 큰 길가로 나왔다. 인적은 드물고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하얀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 고즈넉한 밤이었다. 

택시를 잡기 힘들겠다며 남편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분무기로 뿜어내듯이 고운 안개비를 맞으며 백여 미터를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자 남편은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차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큰 도로가에 나란히 서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차도가 마치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길처럼 보였다. 포근한 봄밤의 축축한 공기가 비현실적으로 또렷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오빠의 하얀 승용차가 좌회전 신호를 받아서 크게 유턴을 하더니 우리 앞에 멈췄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올케와 나와서 나를 가운뎃 자리에 태운 후 옆에 탄 조카와 양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오빠는 일단 자기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조수석에 탄 남편이 도중에 내려서 짐을 챙겨갈 테니 나를 먼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올케가 연신 괜찮아요?라고 물으며 생수병을 내 입에 대주었다. 오빠의 자동차는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나는 어두운 밤과 불빛이 명멸하는 것을 번갈아 보면서 오빠네 가족들의 말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차가 멈추고 올케와 조카가 양옆에서 내 팔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현관문을 열고 방문을 열어서 올케의 안방에 나를 데려다가 앉혔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물을 마시고 옷을 갈아입었다. 무언가 먹으라고 권했지만 먹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날 밤 올케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남편이 언제 도착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침대에 눕히려는 손길을 한사코 뿌리치고 어두운 구석 바닥에 이불을 덮어쓰고 있다가, 그러다가 아마 올케가 내미는 파란 알약을 삼키고 기절하듯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올케의 안방에서 나는 다음 날을 지내고 하룻밤을 더 잤다. 남편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줄곧 내 옆에 있었다. 경찰에서는 결국 부검을 실시한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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