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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2. 하루, 이틀, 사흘째 날

내 아이의 장례식

지나고 나니 시간이 흘러간 것을 알겠다. 그 당시에는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마치 굳어가는 검고 찐득한 꿀처럼 뻑뻑하게 내 몸을 통과해서 천천히 지나갔다.

밤에는 기온이 서늘하게 내려가는 오월 초순, 나는 오빠네 집 안방의 침대 옆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올케가 죽을 끓여서 내왔지만 먹지 못했다. 어딘가로 숨고만 싶었지만 아무 데도 숨을 곳은 없었다.

안방에는 화장실이 딸려있어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있었다.

남편은 내 옆을 지키면서 계속 전화 통화를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아이의 시신을 국과수로 보낸 경찰에 항의 전화를 했다. 지방에 계신 형님에게도 전화로 사고 소식을 알렸다.

잔정이 많은 손위 형님이 어쩌다 그리되었냐며 전화기에 대고 우셨다. 침착하게 일처리를 하던 남편이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절벽 끝에 선 채로 기댈 곳이 하나도 없던 그의 손을 형님께서 붙잡아주었던 것이었다. 연로하신 시부모님께는 알리지 말까도 했는데 형님께서 마침 시댁에 와있던 터여서 모두 알게 되었다.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친정오빠가 아이의 장례식은 따로 치르지 말자고 말했다. 번거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밤새 장례식장을 지켜야 하는데 너무 힘들 거라며, 조용히 우리끼리 아이를 잘 보내주자고 말했다.

남편은 시댁에 전화를 걸어서 장례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고 알렸다. 시부모님은 놀란 와중에도 아이 엄마인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말했다. 남편이 내 의사를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굳어진 뇌세포로 한동안 생각했다그러다가 아이의 돌잔치를 제대로 치러주지 않았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젊은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직장 일로 바빴다몇 번인가 참석했던 돌잔치에서 본 아기들은 하나같이 찡그리며 울었다돌잔치는 불필요한 허례허식이라는 생각에 아이의 돌 무렵에도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서 점심식사만 했다십육 년의 짧은 생을 살았던 내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무대를 가져보지 못했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우리 둘이서만 장례식장을 지켜도 좋다고, 국화꽃에 둘러싸인 아이 사진을 보면서 못난 엄마 아빠가 얼마나 슬퍼하고 뉘우치고 후회하고 슬퍼하는지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고 싶었다.

남편이 병원에 전화를 걸어 장례식장을 알아보았다.

부검을 마친 아이의 시신이 도착하는 다음날에 맞춰 작은 호실 하나를 예약할 수 있었다발인은 다음다음 날이었다빈소를 이틀만 차린다는 소식에 남편의 형님 두 분은 양일에 나눠서 방문하시기로 알려왔다.  

다음날 아침, 오빠의 집을 나와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신경정신과에 들렀다. 아이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성을 잃지 않도록 의사 선생님께 신경안정제를 처방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어릴 때 ADHD 약을 처방해준 적이 있는 선생님은 충동성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곧이어 도착한 장례식장의 상담직원도 무척 친절했다.  어린 자식이 스스로 떠나도록 만든 부모는 죄인이었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동정하고 잘 대해주었다.

깔끔한 양복을 입은 장례식장 직원이  앳된 소년에게 어울리는 소박한 꽃장식과 영정사진 액자흰 국화 서른 송이장식이 없는 오동나무 관관에 넣을 꽃다발그리고 어여쁜 수의를 고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상담실을 나와 긴 복도를 지나서 입구 전광판에 아이의 이름과 사진이 떠오른 곳으로 들어갔다제단 안쪽 방에서 나는 검은 치마저고리로남편은 검은 넥타이에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었다냉장고와 찬장에 비치된 물품들을 살펴보는 동안 꽃장식과 영정사진이 도착했다.

우리는 제단에 초를 켜고 향을 피웠다.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인 사진 속에서 아이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석 달 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스튜디오에 찾아가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그날 아이는 직접 인터넷을 뒤져서 근방에 사진 잘 찍어준다는 스튜디오를 찾았다. 신이 나서 교복 위에 롱 패딩을 걸친 아이를 데리고 나는 차로 십여분을 가서 주변을 살피다가 주유소 옆 건물 이층에 있던 스튜디오를 찾아냈다.

아이는 가족사진과 프로필 사진이 벽에 빼곡히 걸린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서 잔뜩 얼은 채로 촬영을 마쳤다출력된 사진을 찾을 때까지 근처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 관련 책을 들춰본 일연예인처럼 멋지다고 감탄하며 이미지 파일을 추가로 구입한 일뽀샵 기술의 승리라며 아이를 놀렸던 기억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선명했다.     

검은 치마저고리 상복을 입은 나와 검은 양복을 입은 남편은 아이 앞에 두 번씩 절을 올렸다그 아이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두른 것을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담배 피우러 나가는데 같이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장례식장 밖 벤치 옆에서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조문객들 틈에서 남편이 담배를 피웠다.

하늘은 푸르렀고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기분이 너무 이상하지?' 남편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조금 웃으려다가 둘 다 눈물을 훔쳤다.

우리는 큰길을 건너가서 잠깐 산책을 하기로 했다식당 사이로 난 길을 지나자 인적이 드문 흙길이 나왔다.

아무도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아이에게 지금 보고 있냐고, 왜 그랬냐고 마음속으로 물었다.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도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마음이 타는 듯했다.

아마 아이도 지금 멀지 않은 곳에서 나와 남편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울고 있는데 입관을 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전화로 알려준 대로 장례식장 건물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복도로 나와있던 젊은 직원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얀 피부에 강아지처럼 눈이 예쁜 아가씨가 건너편 방으로 들어가서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라고 말했다손도 잡아보고 볼에 뽀뽀도 해주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라며되도록 조금만 아이를 만지고 너무 많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아이가 먼 길을 잘 떠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옆에 말없이 서 있는 마르고 앳된 남자 직원은 안경을 쓰고 부끄럼을 타는 모습이 내 아이와 닮아 보였다흰 가운을 입고 직장에서 일하는 청년의 모습에 열일곱 살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저렇게 의젓하게 자랄 수도 있었을 텐데가슴속이 찌르르 울리며 아픔이 차올라왔다한편으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어여쁜 누나와 형이 마지막 가는 길에 아이의 몸을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어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을 따라 다음 방으로 들어가자 좁은 침대 위에 크림색 삼베옷을 입은 아이가 누워 있었다. 깨끗한 버선을 신고 머리를 완전히 감싸는 귀여운 모자를 쓴 채였다. 꼭 감은 눈은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 어릴 때처럼 긴 속눈썹에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하얀 앞니가 보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보고 말랑말랑한 뺨에 입을 맞췄다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엄마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말을 걸어보았다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왜 그랬냐고 물었다아무리 어루만져도 차가운 아이의 손은 덥혀지지 않았다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옆방에서 대기하던 직원이 시간이 다 되었다며 문을 열었다. 남편과 나는 속절없이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꽃장식에 둘러싸인 아이의 사진을 보고 울음을 참으면서 국화꽃 한 송이를 또 올렸다.

사진 속에 아이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다이제야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난 것을 알아챈 것일까.

환하게 잘 웃던 내 어린아이는 언제부터 저토록 슬픈 얼굴을 했었나청소년이 되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런가 보다 자연스러운 일로 넘기고 대수롭지 않게 아이를 대했던 과거가 못 견디게 후회스러웠다.     

첫 조문객은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담임 선생님은 놀란 와중에서도 나를 위로하며 장례식에 꼭 찾아가고 싶다는 뜻을 알려왔다. 두 달밖에 안 되는 고교생활이었지만 살뜰하게 마음을 써준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포장해온 죽을 건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교장선생님도 함께 왔는데 안면이 없었기에 주차장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의 영정 앞에 선생님이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묵념을 올렸다.

저녁이 되자 오빠 부부와 조카들이 찾아왔다.

올케는 보온도시락에 죽을 넉넉히 끓여오고 커다란 밀폐용기에 오렌지와 포도를 모양 좋게 담아왔다.

죽은 먹을 수가 없었지만 올케가 권하는 대로 과일 몇 조각을 먹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조카가 많이 놀랐을 텐데, 어서 집에 가라고 말했지만 올케는 애들도 다 커서 이해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밤이 되자 지방에 사시는 남편 형님 부부께서 찾아오셨다. 따로 장례식장에 식사를 마련해놓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오시라고 권했지만 이미 먹고 왔다며 한사코 사양하셨다.

나를 위로하고 함께 슬퍼해주신 형님 부부께서는 아마 내색하지 않은 채 저녁식사를 거른 것이리라. 남편은 형님 부부에게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인사말을 건네고는 또 울었다.

어린 자식을 순식간에 잃은 사실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아서 펑펑 울지도 못한 채로 남편과 나는 장례식장을 지켰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다가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사흘째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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