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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10. 친구의 고백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단기 임대 숙소를 알아봐 준 친구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 

내 아이의 소식을 듣고도 담담히 위로해주던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실은 한강에 투신했다는 것이었다. 

밝고 느긋한 성격인 그녀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는지 까맣게 몰랐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덮어놓았던 상처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가 집을 나갔던 과정과 남겨진 어머니와 그녀의 형제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온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가족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한 이가 세상에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몹시 생소하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나자 남편은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마침 지인이 새로 마련한 작업실에 남는 공간이 있어서 월세를 일부 부담하고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3층에 위치한 작업실 통유리창으로는 녹음이 짙은 야산이 보였다. 중앙에 커다란 서가를 놓은 실내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일하는 틈틈이 지인은 이런저런 개인사를 들려주었다. 도박에 손을 댔던 그의 누님 또한 수년 전에 스스로 떠났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돌이킬 수 없으니, 아이를 잘 보내주고 자책하지 말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아이는 아직 어렸고 그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 가르친 것은 나였다. 내 의도대로 아이를 조종하기 위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독버섯처럼 심어주었다.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직장을 얻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남들이 쉴 때도 공부해야 하고 그들보다 몇 배나 노력을 해야만 앞서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편안하게 쉬고 즐길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장애를 극복한 인물들의 수기나 위인전을 읽으면서 자신도 꼭 그렇게 살 거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추천 도서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독후감을 썼으며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인물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영화를 보고 와서 나에게 물었던 일이 생각난다. 엄마는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전태일이 처한 상황에서 죽음을 택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깊은 생각 없이 말했다. 눈을 반짝이면서 내 말을 듣던 아이는 그 때문에 자살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행위라고 혼자서 결론지었던 걸까.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아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독서기록장을 발견한후에 오랫동안 생각했다. 자신의 삶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기를 바랐던 아이는 막연히 언젠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했던 게 아닐까. 

그날 진지한 표정으로 묻던 아이의 얼굴과 부주의했던 나의 대답을 기억하면,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온다.

생각해보면 그 일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저녁에 게임을 하던 아이에게서 노트북을 빼앗았을 때였다. 흥분한 아이는 죽어버릴 거라며 창 쪽으로 뛰어갔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는 아이의 몸을 붙들었다. 아이의 맹목적인 충동성에 깜짝 놀랐다. 

그 행동을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여겼던  것이 너무도 후회된다. 

나는 아이의 자살충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도록 컴퓨터 게임을 가능한 한 제한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유일한 낙이었던 게임과 동영상 시청 시간을 빼앗긴 아이의 삶이 어떨지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 잘못으로 새싹처럼 푸릇푸릇한 소년이었던 내 아이가 스스로 떠났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차라리 미쳤으면 좋겠다.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나 또한 죽는다고, 내 죽음도 머지않았을 거라고 되뇌면서 힘겹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작업실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곁으로 갈 날이 또 하루 가까워졌다고 속으로 말한다. 


견딜 수 없는 순간순간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노트를 펼치고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마치 아이가 곁에 있는 것처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펜을 쥐고 글씨를 썼다. 

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너무 그리운 나머지 때때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 떠난 후 백일이 지나고부터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 

지인들은 작업실에서 쉬면서 무엇이든 끄적이고 글로 쓰라고 독려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또렷해지고 아이가 떠나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질까 봐 더운 물만 마셨다. 인생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사방에 캄캄한 절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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