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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9. 밤 산책과 레드와인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것밖에 할 수있는 일이 없었다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것밖에 할 수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가 떠난 후 자주 남편과 산책을 했다. 

남편은 본래 목적 없이 걸어 다니는 산책을 끔찍이 싫어했지만 넋을 놓아버린 나를 데리고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나가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의무가 되었다. 

밖으로 나와서 발길 닫는 대로 걸으면서 우리는 여느 중년부부처럼 사소한 일상에 대해 얘기했다. 

양평의 논밭이나 영종도의 호텔에서 구읍나루터까지 왕복 한 시간 정도 걸을 때는 아이에 대해서도 자주 얘기했다. 우리 아이도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파랗게 갠 하늘을 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도 산책 나가서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날 아이를 야단치지 말고 함께 산책을 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힘든 공부 대신에 매일 가족이 다 함께 산책만 하고 살아도 좋았을 텐데. 

후회는 끝이 없었다.


단기 임대숙소에 정착하고 난 후 남편은 점점 바빠졌다. 혼자서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가서 꼭 필요한 물건부터 짐을 싸서 옮겼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버릴 물건들과 옮길 물건을 정리하고 보름간 미뤄뒀던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절에 가고 불공을 드리는 게 다였다. 

하루 종일 일기를 쓰거나 책을 몇 장 읽고는 시름에 잠겨있는 나와 달리, 남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멍하니 넋 놓고 있는 나를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가고 각종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하고 슈퍼에 들러서 냉장고에 식료품들을 채워 넣고 밥을 해서 먹거나 식당에서 사 먹어야 했다. 

남편에게 있어 나와의 산책은 점점 더 힘겨운 의무가 되어갔다.

그가 해주는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나는 그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그는 애초부터 생각이 많은 나와 달리 단순하게 행동하는 쪽이었다. 

아이가 자폐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앞으로의 인생은 아이를 위해 바쳐야 한다는 나와 달리, 부모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자상한 아빠는 아니었다. 그가 잘한 것은 없지만 더욱 치명적인 실수를 해버린 것은 나였다. 

그가 미웠지만 그를 필요로 했다. 나에게는 누군가 곁에 있어줄 사람이 절실했다. 내가 가졌던 정체성은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내 아이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죽음이 시시때때로 나를 건드렸다. 나는 공포에 떨었다. 

막연히 죽고 싶다는 생각과 실제로 마주친 죽음은 달랐다. 누구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냥 살아가는 거라고 여겨왔다. 그렇지만 내 아이는 달랐다. 그 어린아이는 어떻게 단번에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걸까. 내가 아이를 그토록 불행하게 만들었던 걸까. 아이가 떠난 날부터 그 질문은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로 뇌리를 갉아먹으면서 나를 괴롭혔다.


어두워진 후 남편과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의무적인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날, 잠들기 전에 레드와인을 한 잔 마셨다. 나는 알코올에 약한 체질이었다. 와인을 한두 잔 마시자 금방 몸에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졌다. 술기운이 오르자 한결 잠들기가 수월했다.

다음날부터 술이 떨어진 날 밤에는 아예 차를 타고 나가서 편의점에서 술을 사 왔다. 

한밤중에 스튜디오 마당의 정원 테이블에 와인병과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나와서 글라스에 술을 따라서 퍼마셨다. 어두운 밤하늘은 푸르렀고 등불이 높이 걸린 바깥은 시원했다. 

남편과 나는 술에 취해서 서로를 비방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내가 원망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이미 떠나버린 아이를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겨우 일상을 꾸리는 그에게 왜 아이를 애도하며 슬퍼하지 않느냐는 나의 비난은 선을 넘은 도발이었다. 

아이에게 내가 심했다는 것을, 지나친 불안에 잡아먹혀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이를 몰아붙여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의 원흉은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죽지 못해 살아있는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먹고사는 일에 열중하는 그를 또 미워했다. 

나는 아이에 대해 얘기하고 슬픔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가 아니었던 그가 아이가 떠난 후라고 달라질 리 없었다. 그가 미웠지만 헤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힘이 없었다. 하다못해 다른 공간에 있는 것도 무서워서 원룸 스튜디오를 얻을 지경이었으므로.   

 그는 나와 말다툼을 하고는 책상에서 엎드려 잠들었다. 그 또한 내가 견딜 수 없이 미웠던 것이었다.


나는 내 주위 모든 것을 원망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 번만 더 내게 기회를 주었더라면. 아이에게 심했던 나를 깨닫고 뉘우치게 했더라면.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십육 년 동안 한시도 놓지 않고 공들여서 키웠는데. 어떻게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을까.

나에게 닥친 현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끝은 날 것이다. 어느 때고 나 또한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나는 앞으로 아등바등 무엇이 되지 않기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죽음을 바라보며 사는 것밖에 할 수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를 벌써 잊었느냐고 비난했던 남편은 이미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내 몫이자 나의 선택이었다. 내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그가 나를 버리거나, 아니면 원망하거나.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이는 나보다 인내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행동이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아이가 그토록 빠른 결단으로 베란다를 타 넘어가는 엄청난 짓을 저지를 줄이야. 

어쩌면 아이는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토록 깜짝 놀라게 한 것에 대해.

그 아이는 내가 슬퍼하며 살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기꺼이 슬퍼하다가 죽을 생각이었다. 

내 사랑하는 아이를 애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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