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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12. 길에서 우는 사람들

자식 잃은 것보다는 돈 잃은 게 낫다

오후에 작업실에 혼자 있는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혼잣말을 마구 쏟아내다가 사이사이로 숨을 끅끅거리며 우는 소리였다. 

창가로 가보니 분홍색 여름 원피스를 입은 자그마한 아주머니 한 분이 울면서 산책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어.’ 

울음 섞인 말소리는 점점 또렷하게 들려왔다. 

덜컥 겁이 났다. 마지막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던 내 아이의 핼쑥한 얼굴이 떠올랐다. 서둘러 신발을 꿰차고 작업실을 뛰쳐나와서 아주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는 언덕배기 중턱의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벤치가 있건만 그곳까지 가서 제대로 앉을 기운도 없어 보였다. 아무도 없는 덤불 속에 짐승처럼 온몸을 파묻고 숨어버리고 싶은 그 마음을 나도 알았다. 나는 아주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다. 목이 쉰 내 음성에도 울음이 묻어 나왔다. 

아주머니는 눈물이 흐르는 커다란 눈을 껌뻑이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사기를 당해서 수억 원의 돈을 날려버렸다고. 남쪽 지방에 살다가 아들 방을 얻어주러 올라왔는데 가진 돈을 다 날려버린 후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초라한 반지하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검은곰팡이 슬어있는 방바닥을 걸레로 닦다가 지난 일이 후회스럽고 억울해서 죽고 싶었다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와서 걷다 보니 여기였다고 했다. 

여름 운동화를 신은 그분의 자그마한 발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나도 소리 내어 울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경찰이 사기꾼을 잡아 올 거라고, 요즘 세상에 사기 치고 도망갈 수 없으니 그 돈은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달랬다. 

아주머니가 여전히 서럽게 울자, 나도 따라 울었다.      

그쪽은 왜 우냐고 묻길래 한 달 전에 내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다. 열일곱 살밖에 안된 남자애라고 말하는데 그만 통곡이 터져 나왔다. 

아주머니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울었다. 미안하다며 내 손을 붙들고 함께 울었다. 우리는 인적 없는 한낮의 숲 속에서 한참 동안 울었다. 

이윽고 나보다 연상인 아주머니가 나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아이들도 자라면 부모와 데면데면해진다고. 대학 가고 스무 살 넘어서 집 떠나면 부모 자식 간에도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이 된다며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가 어떻게 죽었냐고 묻는데 말문이 막혔다. 어린 아이의 자살은 부모의 책임이자 수치였다. 얼어붙은 내 표정을 본 아주머니는 무언가 짐작한 듯했다. 

친한 지인의 딸이 자살했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부부싸움을 했다며 친정집에 찾아왔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별일도 아니었다고. 그런데 친정부모에게 아기를 맡겨놓고 나가서 베란다에서 갑자기 뛰어내렸다고. 

아주머니는 측은한 듯이 나를 보더니 돈 날린 게 자식 잃은 것보단 낫다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돈은 또 벌 수 있지만 떠나간 자식은 돌아올 수가 없다면서. 지당한 말이었다. 

주저앉았던 땅바닥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면서 한결 가뿐해진 얼굴로 아주머니는 내 연락처를 물었다. 


나는 아들이 둘 있다는 그분이 부러웠다. 

고개를 저으며 그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더는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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