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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들처럼 Oct 24. 2021

13. 남은 날의 모든 아침이 오늘과 같더라도

나의 슬픔은 내 슬픔, 나의 고통은 내 고통일 뿐 

정신과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가장 충격적인 기억이 고장 난 비디오처럼 무한 재생된다. 미칠 것 같은데도 미치지 않은 채로 괴로워하면서 하루를 살아야 한다. 의사는 숨이 막힐 것 같을 때 숨이 쉬어지는 약과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해 주었다. 나는 약을 먹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가 겪었을 고통과 괴로움에 눈감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는 나를 사랑했고, 나 또한 자신을 한없이 사랑한다고 믿었다. 나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지쳐있었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아이에게 고교 수업과 학습을 빠짐없이 챙겨주기가 힘에 겨웠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는 격주로 집에서 온라인 클래스로 수업을 받았다. 나는 수시로 아이를 들여다보면서 수업에 집중을 하는지, 숙제와 전달사항을 제대로 챙기는지 수행평가 일정을 기록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에 아이가 게임 해설 동영상에 빠져서 과제를 메모하거나 다음 수업 준비를 해놓지 않았다며 아이를 야단쳤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갖고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하는 환경에서 아이는 번번이 유튜브나 게임의 유혹을 참지 못했다. 제풀에 분에 겨웠던 나는 아이에게 막말을 했다. 떠나기 하루 전 그 순간, 아이는 나의 막말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예전 같으면 맑은 갈색 눈동자로 엄마를 보면서 미안하다거나 앞으로는 잘하겠다거나 엄마가 너무 심하다며 눈물을 글썽였을 그 아이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소년이 되어서 무표정하게 허공만 쳐다보았다. 

그때부터 내 아이는 죽음을 생각했을까. 죽고 나면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자기가  없으면  엄마도 편해질 거라고, 앞으로도  공부만  해야 하는  인생은  그다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내 감정에만 눈이 멀었다. 우매하고 모자란, 어리석디 어리석은, 부모  자격도  없는 짐승보다 못한 에미가 나였다. 나는 아무 말 없는 아이가 미웠다. 그래서 내 말이 지나쳤던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머리가 커지고 반항한다고 여기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십일층 베란다를 타 넘기로  결심한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무리 무서워도 나아가야  한다고, 꼭 해내야만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겠지. 그 어린 내 아이가 여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이를 악물었겠지. 

그토록 짧았던 내 아이의 인생이 너무 슬펐다. 그 어린아이가 무섭고 슬픈데도 그리해야 한다고 다짐하도록 내몰렸던 그 상황이 너무 가엾었다. 그렇게 만든 나는 어미도 아닌 괴물이었다.

나는 십일층에서 뛰어내린 내 아이가 죽어가던 모습을 죄다 지켜보고도 따라 죽을 용기가 없던 나를 본다. 죽어서 아이에게 용서를 빌고 떳떳해지고 싶은데도, 죽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내 모성애와 양심을 본다.      

나는 노트와 볼펜을 갖고 다니면서 시시때때로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괴로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키고 노트에 감정을 털어놓았다.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이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쓰고 또 썼다. 눈으로 보고 말을 걸 수 없더라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아이와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이는 대답할 수 없었고 나는 또 지쳐갔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 그랬듯이 나는 떠나고 난 후에도 또 아이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나를 두고 그렇게 떠났느냐고, 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또 아이에게 불평했다. 살아생전 아이를 야단쳤던 것처럼. 나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구제불능이었다.

아이가 떠난 지  백일이  되던 날, 혼자서 아이를  수목장 한  곳에 찾아갔다. 

아이가 좋아하던 초콜릿 케이크를  풀밭에 올려놓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울다가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늦은 오후의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 후부터 더는  날짜를 세지  않았다. 절에도  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이에 대한 기억이 밀려오면 그냥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이가 떠나던  순간이 떠올라서 고통스러우면 어떻게든 그보다  덜  고통스러운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책과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책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인터넷을 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혼자 멍하니 앉아서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웠던가, 왜 아이를  기쁘게  해주지  못하고  힘들게만 했었나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후회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슬픔과 고통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 앞으로 내 인생에 기쁨은 없으리라.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던 가족과 지인들은  달라지지  않는  나를  보면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잠이 깨는 순간이 두렵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사고가 난 이후로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낯선 잠자리를 알아채고 내가 왜 그곳에 와있는지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이다. 

꿈속에서 아이는 아직 어렸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다녔고 생기가 넘쳤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따스한 피부의 감촉을 만끽하면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열일곱 살에 자살했다는 소식은 말도 안 된다며, 악몽을 꾸었던 거라며 안도한다. 

그러다가 아침 해가 떠오르고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아이가 세상을 떠나고 없다는, 그것도 베란다를 타 넘어 뛰어내렸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과 아이의 표정을 떠올리면 미칠 것 같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지자 해가 짧아졌다. 

어둑어둑할 무렵에 거리로 나와서 몇 시간씩 길을 걸었다. 

어차피 인생이 혼자라면 앞으로도  내 아이를 기억하고 나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살아가겠지.

나는 평범한 학부모로 살아가던 생활을 정리하고 혼자서 떠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앞으로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지낼 수 있기를, 그러다가 나 또한 아이처럼 혼자서 이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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