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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생 Mar 24. 2021

<생의 이면>을 읽고

  

이승우의 1993년 작 <생의 이면>.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단 앙드레 지드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거니와 신학 지식도 부족해서 곳곳에 있는 숨어있는 비유를 알면서도 놓쳤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큰 것은 내가 제대로 된 사랑(에로스던, 아가페던)을 아직 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고통받은 적 없는 자가 견디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무거워서, 읽는 내내 질식당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느낀 것은, 작품의 주제가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판단'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박부길이 쓴 소설'과 그에 대한 '화자의 분석' 간 틈이 거슬렸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박부길의 소설에 몰입할 성 치면 화자가 나타나 '이 행동은 이것 때문이다. 여기서 박부길의 심정은 이랬을 것이다.'는 식으로 분석을 시도한다. 이때 나는 나의 감상과 화자의 분석 간 차이 때문에 당황하는데, 무의식중에 화자(곧 저자)를 나보다 상위에 두고 책을 읽고 있어서 나의 판단을 버리고 화자의 분석을 수용하게 된다. 


    나는 이런 의도적인 위화감의 기능을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판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세계에 들어가 그 내부에서 분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객관적인 분석은 원칙적으로 소설 밖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책에서 화자가 시도하는 '객관적인' 분석은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판단', '분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판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판단'은 결국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서 막혔다. 종교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사랑의 이데아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처음 말했듯이, 잘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이다. 무수한 수수께끼를 두르고 있는 금고, 그 상징을 모두 해독하는 날이 내 독서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될 것 같다(불가능하겠지만).



평점은 5점(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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