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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생 Feb 28. 2021

<제5도살장>을 읽고


장소상실(placelessness)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 장소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이 약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드레스덴만 한 곳이 있을까 싶다. 아름다운 역사 도시 드레스덴은 영국의 폭격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했다. 다행스럽게도 몇몇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그중에는 커트 보니것과 <제5도살장>의 주인공 빌리 필그램이 있었다.


작중에 인간만이 자유 의지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전쟁에서 인간은 죽음마저 자신이 택할 수 없다. 자유 의지는 처참히 몰락한다. 전쟁을 겪은 빌리 필그램은 그렇기에 '뭐 그런 거지.'라며 죽음을 담담히 묘사한다. 전쟁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자유 의지의 몰락으로 인해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외계인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4차원적 시공간 인식은 회상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나는 어떤 배경지식도 없이 이 책을 읽었다. 나쁘지 않았다. 인생의 끝이 해피 엔딩일 것임을 미리 아는 인간은, 어떤 순간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검색을 통해 이 책이 대표적인 반전(戰) 문학임을 알게 되었다. 그 반전 문학적 가치는 전쟁에 휘말린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사실적으로 다룬 것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살아있지만 푸르스름한 상앗빛의 발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앞으로도 생길 것이다. 언젠가 전쟁이 사라지게 될까? 아니, 지금 전쟁이 사라졌다. 뭐 그런 거지.



평점은 4점(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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