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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생 Feb 23. 2021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1. 음복


정말 좋았다. 따뜻한 카페에서 읽었음에도 몸이 서늘해졌다. '가족 스릴러'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 주인공이 제사를 대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인물의 심리를 아주 잘 묘사했다. 다만 이걸 가족 내에서 여성/남성 간 권력 관계로, '가족 내 성 기율'로, 심지어는 여성 등장인물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말하는 해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 작품 역시 좋았다. 나를 비춰주는, 내가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그런 등불 역시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자각했을 때의 아픔을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다만 에세이 평가 장면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는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조금 '이슈 짜깁기 소설'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3. 그런 생활


게이 커플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그린 작품임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오겠지만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다.


4. 다른 세계에서도


특이한 소설이었다. '낙태죄'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그다지 편파적이지 않은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나는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기 위해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에는 전혀 불만이 없다. 하지만 임신을 선택한 사람의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서술에는 불만이 있다. 그건 자기모순이다. 제도적 개선에서 나아가, 임신과 낙태에 대한 인식에까지 개입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개개인의 선택과 주체성을 존중하는 지점에 서서 낙태 문제를 다룬 작품을 만나고 싶다.


5. 인지 공간


철학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멋진 글이었다. 최근 읽은 sf중 가장 좋았다. 다만 작가 노트에서 작가가 장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장애는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말을 보고, '이브가 갖는 상징과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이 작품을 잘못 읽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찝찝했다. 한편으로, 이런 민감하고 정치적인 소재를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연수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세련된 방식으로 모성을 표현한 점, 그리고 주행 연습이라는 소재가 좋았다. 사실 어떤 말로 이 글의 좋음을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작가노트에 적힌 것과 같이 '너무 투명한 나머지 이래도 되나?' 싶은 작품이어서,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글이 투과시켜버리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꼭 읽어보시기를.


7. 우리의 환대


강렬한 글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낯섦을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아직은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관계를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중에 묘사된 바와 같이 눈부신 햇살을 보고 눈살이 찌뿌려지는 것처럼. 글의 주제의식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소설을 읽는 제 1의 목적을 인생의 성찰(곧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독서는 성공적이었다. 문학의 첨단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지금껏 좋아했던 소설과는 다르다는 점, 또 페미니즘과 여성 서사가 화두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얼핏 보이는 정치의 소설화의 모습은 다소 공포스러웠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한국 문학계가 나아갔으면..



평점은 4점(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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