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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4. 2023

우리가 시(문학)를 만나야 하는 이유

     - 다이아나 퍼러스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

 우리가 시를, 문학을 만나야 하는 이유

       - 다이아나 퍼러스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

                              - 사라 바트만을 위한 헌시           


 중학교 3학년 문학 수업, 참 어렵다. 유튜브나 짧은 방송에 익숙한 세대들은 퀴즈 맞히기 게임처럼 정답이 확실하고 스피드한 것들에 몰입한다. 대학 입학을 목표로 입시 경쟁에 익숙한 학생들은 객관식 문제를 잘 풀어 점수를 올리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문학, 차분하게 글을 읽고 맥락 속에 감추어진 의미와 정서를 이해해야 하는 문학 수업은 지루해하고 어려워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되는 인문학에 대한 효용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극대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고립감과 좌절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마주해야 할 현실은 차갑고 고독하다. 돈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인문학적 이해가 학생들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만들어 준다는 믿음이 있다.


   문학의 가치가 무엇일까?우리가 문학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학의 인식적 가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학은 우리 인간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세계에 대하여 새롭게 자각하게 하고 역사가 인류에게 남긴 생채기를 치유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20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일까,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일까?’라는 질문을 매일 스스로 했다. 국어 교사가 된 후에는 ‘교육의 올바른 방향성과 가치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서점에 들러 서너 시간씩 책을 읽으면 행복했다.  책을 통해 삶에 대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살면서 깜깜한 터널을 걷는 느낌이 들 때, 책은 터널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한 점 빛처럼 삶의 희망을 전해 주었다.


  2014년 12월 어느 날도 서점에 들러 서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책꽂이에서 호기심을 일으킨 시집을 발견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인 다이아나 퍼러스의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였다. 시 제목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위안이 동시에 느껴졌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위로, 한 마디로 죽은 이를 위한 진혼곡 같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멀고 생소한 나라의 시를 접한 나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밀려왔다. 시를 읽으면서 슬픔과 고통이 느껴졌고 다 읽은 후에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몰려왔다. 아름답게 묘사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민트꽃과 프로티아꽃과 부추꽃’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읽을수록 시리도록 아픈 ‘사라 바트만’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 시는 200여 년 전 유럽에서 인종 전시를 당한 남아프리카 출신 원주민인 ‘사라 바트만’(1789년~1815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사라 바트만은 16살 때쯤 백인 들에 의해 부모님과 종족들이 몰살당한 후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20살에는 영국으로 끌려간다. 백인과는 다른 신체 구조를 지녔다는 이유로 나체로 런던 박물관과 광장 등에 전시되었다. 결국 유럽 전역에서 인종 전시를 당하다 25살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그녀는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프랑스 해부학자에 의해 뇌와 성기가 제거된 채 박제되어 프랑스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고 만다.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 ‘코이코이(Khoi Khoi)’ 부족이었던 사라 바트만은 유럽인들에 의해 ‘코이코이’ 대신에 ‘열등한 인종’이라는 뜻인 ‘호렌토트 비너스’로 불렸다. 정당한 이름을 빼앗긴 채 유럽인들의 편견과 차별과 멸시의 낙인이 새겨진 이름으로 불린 사라 바트만.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누이트’라는 떳떳한 이름 대신에 ‘날것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에스키모’로 불린 북극의 원주민들처럼,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민주화되면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인권단체들이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돌려줄 것을 오랫동안 요청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타국에서 유입된 유물은 프랑스 소유'라는 법을 핑계 대며 돌려주지 않았다.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남아공으로 반환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던 프랑스의 상원의원들 앞에서 시인 다이아나 퍼러스가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를 낭송하자 프랑스 의원들이 유해의 반환을 결정한다.

  낯선 나라에서 이름도 잃어버린 채 비인간적인 고통을 겪고 죽어서도 평안을 찾지 못했던 그녀. 그녀의 육신과 영혼은 고향을 떠난 지 192년 만인 2002년 5월에야 자기 고향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스텐 케이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감투 수 강가에 묻히면서 자신의 정당한 이름과 평온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몇 년 동안의 정치적인 노력에도 유해를 돌려주지 않던 프랑스인들에게 이 시 한 편이 던진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내걸고 시민혁명을 성공시킨, 누구보다 문명인으로서,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이 큰 프랑스인들에게 이 시는 예전의 선조와 지금의 너희들이 다른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식하게 했을 것이다.

  과거의 조상들이 제국주의의 괴물이었다면 지금의 너희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박애와는 거리가 먼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 자본주의의 마수일 뿐이라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쉽지 않았거나 회피했거나 아니면 진짜 자각하지 못했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양심을 깨닫게 하는 것, 이것이 시의 힘,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에게 사라바트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이 시를 읽어준다. 이와함께 일제강점기 우리 여성들의 수난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를 떠나 낯선 나라의 전쟁터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일을 당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조선의 여성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사라 바트만이 꿈에도 그렸을 프로티아꽃과 민트꽃이 만발한 고향과 조선의 소녀들이 꿈에도 잊지 못했을 복사꽃과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을 고향.


  시대를 달리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잔혹함과 비인간성도 반복된다. '좋은 시를 읽으면 포도 씨만큼 착해진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좋은 시는 세상을 살면서 최소한 인간으로서 놓지 말아야 할 인간적인 감정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시를, 문학을 만나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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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

     - 사라 바트만을 위한 헌시

                                      다이아나 퍼러스


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 고향에

그 너른 들판이 기억나시는지요,

커다란 너도밤나무 밑을 흐르던 빛나는 푸른 잔디를 기억하시는지요?

그곳의 공기는 신선하고, 이제는 더 태양도 불타오르지 않습니다.

나, 언덕 기슭에 당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나이다.

부추 꽃과 민트 꽃들로 만발한 이불을 덮으소서.

프로티아 꽃들은 노랗고 하얀 모습으로 서 있고,

냇가의 시냇물은 조약돌 너머로 조잘조잘 노래를 부르며 흐르나이다.      


나 당신을 해방시키려 여기 왔나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집요한 눈들로부터

제국주의의 마수를 가지고

어둠 속을 살아내는 괴물

당신의 육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당신의 영혼을 사탄의 영혼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궁극의 신이라 선언한 괴물로부터     


나, 당신의 무거운 가슴을 달래고

지친 당신의 영혼에 내 가슴을 포개러 왔나이다.

나, 손바닥으로 당신의 얼굴을 가리고,

당신의 목선을 따라 내 입술을 훔치려 하나이다.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을 보며 흥겨운 내 두 눈을 어찌하오리까,

나, 당신을 위해 노래를 하려 하나이다.

나, 당신에게 평화를 선사하러 왔나이다.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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