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
- 폴 엘뤼아르 '사랑하는 여인'
* 사랑은 그 사람을 살게끔 하는 것!
- 폴 엘뤼아르 '사랑하는 여인'
향가 ‘서동요’는 훗날 백제의 무왕이 되는 서동이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마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선화 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는다. 선화공주를 모함하는 노래를 지어 퍼트린다. 결국 서동은 궁에서 쫓겨난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남학생 중 몇몇은 예쁜 여자를 얻기 위한 성공의 모험담이나 낭만적이라고 받아들이며 재밌어한다.
우리는 "진짜 영웅이 미인을 얻는다" 거나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진짜 사나이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 말들 속에는 서동처럼 당사자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를 쟁취하는 것이 남자다움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용인해도 된다거나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사고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여자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거나 사귀다가 헤어지는 상황이 되면 여자를 폭행하고 심지어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학생들이 ‘사랑’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특히 중학교 학생들은 성에 대해서 민감한 나이다. 남학생의 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탐닉의 대상이 되어 야한 농담질과 장난거리로 여겨진다. 성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경험이 성과 사랑에 대한 왜곡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동요’, 황순원의 ‘소나기’, 알퐁스 도데의 ‘별’,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이 끝나면 “근데, 진짜 사랑이 뭘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중학교 남학생들 대다수가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사랑’ 더 나아가 ‘육체적 사랑’을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어떤 학생은 "좋은 거요"라든가 "이상해요", "더러워요"라는 말들을 하며 깔깔댄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이상하고 더러운 거?"라고 반문하며 "성과 사랑이 더러운 거면, 부모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우리들은 더러운 존재들인 거네?"라며 되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대답을 한 친구를 보며 "이 더러운 놈아~"라며 놀리기 시작한다. "사랑은 성스러운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고 그냥 삶의 한 부분이니 잘 생각해 보자"라고 말한다. "그럼 진짜 사랑이 뭘까?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실상 우리 어른들도 사랑이 어렵다. 사랑이라는 말이 매우 추상적이기도 하고 매우 복잡하다. 사랑을 이성간의 관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대상으로 대입해 보면 조금 쉬울 것 같다. 대상에 따라 사랑의 형태가 다를뿐 사랑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애국’, ‘부정과 모정’, ‘형제애와 자매애’, ‘우정’ 혹은 타인에 대한 사랑에도 적용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지나친 집착과 욕망이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심하면 살고 싶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 중에서 논어의 ‘애지욕기생(愛之慾起生)’이 가장 그 맥을 잘 짚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이 구절을 소개하며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면 소유하려 들지 말고 그 사람이 제대로 삶을 살게끔 해 주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라며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살아보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 삶의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관계 또한 변한다. 꼭 누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또는 갈등을 하다 서로 상처 주고 힘들어 하다 이별하기도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화가 뭉크의 그림 ‘이별’처럼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피를 철철 흘리듯이 아프다. 함께 했던 시간들, 온전하다고 여겼던 나의 몸과 육체가 부서지고 나의 삶이 사라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하던 여인이 이별을 고하자 남자 주인공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울부짖는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도 많다. 남녀 한쌍이 젊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자식도 낳고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픈 시부모를 간병하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렇게 평생을 바쳤는데 그 사랑이 변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프고 시리고 슬픈 사랑도 세상에는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게 삶인지도 모른다.
남학생들을 보며 "남학생들 특히 잘 듣자. 사랑은 변할 수도 있으니, 사랑하던 여자가 떠난다고 죽이면 안 된다"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져 본다. 농담을 들은 학생들은 피식하고 웃으며 한 친구를 가리키며 "너 말이야, 선생님 말 잘 새겨 들어"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사랑하는 여인’을 읽어준다. 그러면 학생들은 "오글거려요"라든지 "말이 안 돼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원래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며 말이 안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이 시를 낭송하는 동안 눈은 웃고 있고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한 번은 마초기질을 가진 남학생이 있었다. 단순하고 거친 모습이 보여 가끔 목석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날도 위의 시가 좀 어려웠는지 그 남학생은 "나는 이래서 국어가 싫어. 애매모호해!"라는 말을 툭 내뱉는다.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굴던 그 남학생이 시 창작 시간에 ‘사랑’을 소재로 시를 짓기 위해 엄청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특한 생각이 들어 발표를 시켰다. 반친구들 앞에서 그 남학생은 자신의 자작시를 낭송했다.
“제목 원주율”
“우리 사랑 원주율처럼 끝이 없으면 좋겠다”
시 낭송이 끝나자 학생들은 "우와~~~!"라며 함성을 지르고 신나 했다. 나도 웃으며 "시 멋있네!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원주율에 빗대어 참신하고 간결하게 잘 표현했네"라고 칭찬해 주었더니 멋쩍게 웃었다. 옆에 있던 한 남학생이 "선생님, 이 친구가요, 국어 수업 듣고 나더니 서점에 가서 시집들을 한참 들여다보던데요."라고 큰 소리로 폭로하자, 그 친구 얼굴이 새빨개졌다.
학생들은 시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물론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와 감정들을 배운다. 사랑, 이별, 배신, 시기와 질투, 연민, 슬픔, 고독, 행복과 기쁨, 실패와 좌절, 절망과 희망 등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오만가지 생각과 느낌들 말이다. 나의 학생들이 시를 읽으며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미리 경험해 보길 바란다. 그래서 살다가 실제 그 상황을 만나고 그런 감정들을 만나게 되면 자기도 타인도 좀 덜 아프고 덜 상처받으며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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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
폴 엘뤼아르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있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과 같은 형태,
그녀는 내 눈과 같은 빛깔,
하늘 위로 사라진 조약돌처럼
그녀는 내 그림자 속에 잠겨 사라진다
그녀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있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그녀의 꿈은 눈부신 빛으로 싸여
태양을 증발시키고
나를 웃게 하고, 울고, 웃게 하고
할 말이 없어도 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