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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5. 2023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 손택수 '흰둥이 생각'

*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 손택수 ‘흰둥이 생각’          


  손택수 시인의 시 ‘흰둥이 생각’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축축해진다. 아버지의 약값을 위해 개장수에게 팔려갈 상황에 놓인 흰둥이, 그런 흰둥이 때문에 슬픈 어린 나도, 앓아누운 아버지도, 아버지의 약값을 걱정하는 어머니도 모두가 가엾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힘든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이별의 슬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것이 삶임을 깨닫는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중2 남학생 한 명이 쭈뼛대며 따라온다. 평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던 학생이다. 시 창작 시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운 감정을 시로 진솔하게 표현하던 아이였다.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인성이 꽤 괜찮은 학생이다.

  나는 "무슨 질문이라도 있니?"라고 물어봤다. 남학생은 머뭇거리며 "도대체 이 시가 왜 안타까운 감정이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말을 꺼냈다. "아픈 아버지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개를 파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개를 불쌍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라며 너무도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가난한 형편에 아픈 아버지의 약값을 위해 기르던 흰둥이를 팔아야 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시속의 화자인 어린이가 흰둥이에게 연민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둘이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 서로가 쌓았던 정과 추억마저 아무것도 아닌 듯 받아들인다면 삶이 너무 삭막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시를 읽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여 경험치를 넓히며 공감 능력을 기르는 것이 문학의 맛이고 존재 이유이다. 이 시를 통해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한 연민을 고민하는 녀석의 눈빛이 귀엽다.

  불교 경전의 한 구절인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지닌 연민과 공감 능력의 아름다움은 꼭 인류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와 가족은 물론 종교와 정파를 넘어 사회, 국가로 그 사랑이 확장되고 국가와 인종을 넘어 인류애가 된다. 또한 인간이라는 같은 종에 대한 사랑을 넘어 다른 종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운다면 우리들이 쉽게 동물을 학대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09년도쯤 광릉국립수목원 안에 동물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좁은 울타리와 수족관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하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의 동물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가지 않는데 단체 연수로 수목원에 갔었고 해설사를 따라 동물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때 난생 처음 이리를 봤다. ‘파피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이리를 본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파피용은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한다. 영화 파피용의 주인공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과 집념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이리 파피용또한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기 위해 동물원의 담장을 넘어 여러 번 탈출 시도를 했다가 잡혀 왔다고 한다.

  이리의 야생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나 보였다. 그 좁은 우리와 담장으로 갇혀 있는 이리의 모습은 보기에도 가혹할 만큼 형벌 같았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벽을 넘어 자유를 향해 벽을 타고 뛰어오르는데 그 활활 타는 에너지라니….

  자유를 향한 이리의 갈망과 그 이리를 가두고 있는 벽의 긴장감이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숲 속을 활보해야 할 에너지 가득한 생명이 좁은 공간에 평생 갇혀 있다. 인간의 호기심과 즐거움을 위해 과연 지속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옆으로 이동했다. 좁은 울타리에 나무 밑동만 보였다. 나무 밑동 위에 움직임도 없이 앉아있는 나뭇조각 인형이 보였다. 해설사님이 소쩍새라고 알려줘서야 난생 처음 보는 소쩍새를 만나게 됐다. 관람객 한 명이 쇠창살 사이로 걸려 있는 나무 막대기로 소쩍새 주위 나무 밑동을 딱딱 치자 겁에 질린 소쩍새가 몸을 움찔거리며 좌우로 피하곤 했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것도 스트레스가 상상 이상일텐데 관람객들이 막대기로 건드릴 때마다 두려움은 극에 달할 것이다. 소쩍새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몰래 가서 나무 막대기를 치워버렸지만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다. 한 개인의 힘으로 거대한 수레바퀴를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런 통증에 익숙해져야 함에도 항상 마음이 아프고 울적하기만 하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양하기에 동물원에 대한 찬반 여론이 존재할 것이다. 자연은 먹이사슬 구조로 되어 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먹히고 다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에게 먹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의 본질은 무엇이고 인간과 다른 종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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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 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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