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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07. 2023

험담과 거짓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 판단유보가 필요하다.

        - 도종환 ‘산경’

  막말과 험담과 거짓 기사와 나쁜 댓글이 넘쳐나는 시대,

  마녀 사냥의 시대. 판단 유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 도종환 산경’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나를 돌아본다. 어김없이 부끄러움이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오늘 나는 의미 없는 무성한 말들을 쏟아냈구나’ 반성을 한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소비자에 익숙한 우리들은 사실 확인 없이 각종 정보를 빨리빨리 흡수하고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진지한 판단 유보의 시간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 거짓 정보를 가려내지 않는다.  SNS의 발달로 잘못된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과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수히 난도질을 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이 재현된다. 직장 동료, 이웃, 모르는 사람, 연예인, 정치인 상관없이 누구나 사냥감이 된다. 그게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체질에 따라 맞지 않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무수한 사람들과 같이 섞여 살아간다. 사람의 기질과 성향은 다양하다. 그런데 성향과 기호가 좀 다르고, 일처리 방식이 다르고, 뭔가 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전쟁터의 적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을 죽기 살기로 죽이려 덤벼들며 괴롭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연예인에 대한 루머가 순식간에 퍼지면 시기와 질투에 허약한 인간의 심리를 파고든다. 익명성에 기대어 악성 댓글이 수천 개, 수만 개 달린다.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이미 그들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쓰러지지만 우리들의 입은 멈출지 모른다.           


  학생들도 페이스북 메시지나 카톡 단톡방에서 무성한 근거 없는 소문과 뒷말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학급 내에서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 무리가 있었다. A학생이 B학생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은 근거도 없는 정보들을 사실로 믿고 B학생을 왕따를 시켰고 몇 주 동안 괴로워하던 그 여학생은 담임인 나를 찾아왔다. 여러 학생들의 사실 확인서를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며 A학생이 거짓 정보를 만들어낸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거짓 소문을 퍼트린 학생은 물론 거짓 정보에 놀아난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가해자가 된 것이다.      

  아프다고 지각을 자주 하거나 양호실에 가겠다고 자주 요청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면 말 많은 학생들은 “쟤는 맨날 아프대”라며 핀잔을 준다. 수업 시간에 누워서 잠만 자는 학생에게도 “재는 맨날 잠만 자!”라고 끼어든다. 그러면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나 잘하세요~. 저 친구에 대해서 잘 아세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세요”라고 눈을 보며 한 마디 한다.      

  학생들의 가정사는 학생 개인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수업 시간에 매일 잠만 자거나 멍한 상태로 앉아 있곤 했던 중3 남학생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담임이 아니었지만 그냥 둘 수 없어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고모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술만 드시고 욕을 해서 잠을 못 잔지 두 달이 되어 간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너무 힘들면 상담 선생님과 상담해보고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왔다. 이후에 학생과 다시 대화해보니 아버지가 예전처럼 괜찮아지셨다고 해서 다행히 마음을 놓았던 적이 있다.           

  그 누구도 내가 아닌 타인의 아픔과 삶의 무게에 대하여 짐작할 수 없다. 때문에 남의 일에 함부로 쉽게 말을 해서도 참견해서도 안된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시린  타인의 가슴에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비수를 꽂는 일인데도 우리는 잘 가늠하지 못한다. 타인의 상황에 대하여 잘 모른다면 하물며 타인의 상황을 잘 안다고 해도, 판단 유보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언젠가 학생 한 명이 ‘고발감이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두 번 정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생들과 교감이 잘 되는 편이라, 학생들이 담배 피우고 술 먹은 얘기, 자살 충동 느낀 얘기, 가출 사건 등 웬만한 얘기는 다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다. 깜짝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다가 “고발 얘기 좀 그만해라!, 걸핏하면 고발이냐”라고 화를 냈던 것 같다.  “제발 좀 판단유보 좀 하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진지하게 이성적으로 고민 해 보자. 의도를 생각해 보고 사소한 실수면 넘어가고 문제가 있다면 솔직하게 대화해 보자. 그래도 안되면 다음 단계를 고민하면 되지 않냐'고 말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누구든지 우리에게 적은 아니다. 상대방을 이겨먹어야 나의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작은 일에 흥분해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고 못 살게 구는 일에서 기쁨과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싸움을 벌였다는 자괴감이 들며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다.  


  노자는 전쟁터에서 이기고 나서도 승리에 기뻐하지 말라고 했다. 전쟁에서 아무리 승리했다 한들 이미 전쟁을 시작한 순간 아군이나 적군이나 너무 많은 피를 흘린다. 그러므로 전쟁을 대할 때는 장례를 치르듯이 대하라고 했으며 전쟁을 피하는 것이 제일 좋은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문제나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다.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자란다. 상대를 어떻게 해서라도 흠집 내고 죽이려고 드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학습한다. 집단 광기에 쌓여 막무가내로 떼쓰고 억지를 부리고 밀어붙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면 ‘화살촉’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 화살촉의 말을 어떤 논리적인 근거와 사실 관계 확인 없이 무작정 믿고 따르는 대중들이 있다. 이 화살촉과 그 무리들을 보고 있자면 무섭고 두렵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로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가 떠오른다. 식당에서 노인분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유모차 부대에 대한 내용이 화제에 올랐다. 한 노인분이 “유모차 부대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야?”라고 물으니 옆에 다른 노인분이 “아, 그 사람들 다 미혼모와 이혼녀들이래”라고 대답을 한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라며 안도하던 노인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시위에 나선 평범한 엄마들이 모두 미혼모와 이혼녀로 매도당하는 상황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그 웃지 못할 상황이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미혼모와 이혼녀들이라고 해도 그 사실 하나로 그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논리는 전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보다는 미혼모와 이혼녀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적 시선을 이용한 거짓 정보에 대중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개혁을 꿈꿨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정적이 되어 ‘주초위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던 ‘조광조’ 사건은 ‘카더라 통신’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즉 ‘화살촉’의 거짓 정보에 놀아나 집단 광기에 빠져 이성적 판단을 막아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모습과 일치한다.


  집단 광기에 휩싸인 마녀사냥을 하지 않으려면 판단 유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중세 시대 탐욕에 빠진 지배층의 이익에 놀아나던 시민들. 집단 광기에 빠져 평범한 이웃 사람을 마녀라고 욕하며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방조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데 잘 모르겠다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판단 유보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성급하게 그를 적으로 돌리지 말고, 제발 믿을 만한 정보들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찾아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보자”.

  세상에 태어나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테레사 수녀처럼 살지는 못할망정,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독립투사처럼 살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소음 덩어리’는 되지 말자고 항상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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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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