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꿈꾸며
- 윤재철 '인디오의 감자'' , 방탄소년단 '소우주'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꿈꾸며
- 윤재철의 ‘인디오의 감자’ , 방탄소년단(BTS) ‘소우주’
새 학기 3월이 다가오면 담임으로서의 부담감이 크다. 40명이 넘는 학생들을 1년 365일 머리에 둥둥이고 있는 느낌이랄까? 교과와 담임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이 쉽지 않다. 교과 수업도 중요하고 담임 반 아이들의 예민한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담임을 맡으면 학기 초 3~4월에 반 학생들 전체를 한 번이라도 상담한다.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상담하는데 학원 가기 바쁜 학생들과 일정 조율이 쉽지 않다.
중1 여학생 한 명이 첫날부터 말 한마디 없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 맘에 걸렸다. 말이 많거나 적거나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되는 지점은 아이가 어떤 미동도 반응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와 30분 넘게 상담하며 부모님과의 관계나 일상생활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아, 질문을 바꿨다. "00아, 자기 전에 무슨 생각 하니?"라고 물으니 "죽고 싶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생각이 뭐니"라고 되묻자 눈물을 글썽이며 "아, 또 시작이구나"라고 대답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무엇 때문인 것 같아?"라고 물으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에 다녔어요. 학원 다녀와서 숙제하면 밤 12시가 넘어서야 자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해요. 그런데 엄마가 나를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라며 거의 체념 조로 얘기한다. 그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에고 맘고생이 심했구나, 엄마하고 오늘 바로 통화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 있으렴"하고 안심시켰다. 바로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하니 아이와 대화를 진지하게 나눠 보시라 말씀드렸다. 학생의 어머니는 나의 말에 "00의 언니는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그럴 줄 몰랐어요"라며 놀라신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과 성향과 원하는 바가 다 다르며,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이면 즐길 수 있고 거기서 행복을 느낀다. 그 여학생의 언니는 공부가 힘들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와 목표가 확실하여 감당됐다. 반면 그 여학생은 기질도 다르고 자신이 원하는 바도 아니었기에 불행하고 죽고만 싶었던 것이다.
다음날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 여학생은 평소와 다르게 밝고 신난 표정으로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저 학원 끊었어요!"라고 소리치며 웃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그 여학생은 치어리더 동아리를 만들어 아주 활력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학교생활을 했다. 체육대회와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중학교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윤재철 시인의 시 ‘인디오의 감자’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과 재능이 다 다르며 그것을 인정해 주었을 때 열정과 에너지가 폭발한다. 그 열정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들어도 견딜 힘과 의지를 불어넣어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학벌과 학력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다양한 경험치와 노력을 존중하는 일에 소홀한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의사나 법조인이 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래야 존중받는 사회다. 사회가 이러하니 부모들은 자녀들이 무시당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풍족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사회 분위기와 어른들의 인식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염된다. 학업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낙오자나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선생님, 저는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은데 영어 단어를 외우면 얼마 못 가 금방 잊어버려서 우울해요"라고 말하는 여학생이 있다. "너는 머리를 엄청 예쁘게 잘 만지잖니. 선생님은 머리 만지는 게 너무 어려워서 네가 부럽다"라고 말하니,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학생들도 친구들의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학업성적으로 반에서 서열을 매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서열은 주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얼마나 발언권을 갖고 있느냐로 표출된다. 당시 중2 남학생 한 명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선행학습을 통해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도 좋았고 두뇌 회전도 빨라 재치도 있었다. 학습 과제를 빨리 마친 후에 큰 소리로 수다를 떨면서 지식이 부족한 친구들을 무시하곤 했다. 그 학생의 말 한마디에 성적이 낮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들은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는 했다.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면 그 남학생에게 웃으면서 농담 섞어 "200년은커녕 100년도 못 살고 한 줌 먼지가 되어 우주 속으로 사라질 놈이 그 근거 없는 자만심은 어디서 나왔을까"라고 말하곤 했다. 순간 잘난척하던 그 학생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부끄러워했다. 아직은 부끄러움을 아는 모습이라 귀엽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빈 수레가 요란한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빈 수레와 동급으로 취급되면 좀 그렇지?"라며 한 번 더 놀린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학생들은 그 말이 재미있는지 "00아, 100년도 못 살고 한 줌 먼지가 되어 우주 속으로 사라질 놈이 그 근거 없는 자만심은 뭐냐?"를 따라 하곤 했다. 중1 때 그 남학생의 교과 수업을 담당했던 과학 선생님은 그 아이 중심으로만 반 분위기가 돌아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주눅 들어 말도 못 했는데,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학급행사나 소풍을 가보면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아이들의 개성이 드러난다. 한 번은 학급행사로 교실에서 삼겹살을 구워 팔았었다. 유난히 쉬지도 않고 열심히 뜨거운 불판에 고기를 구워내는 학생이 있었다. 힘들어 보여 "00아, 뜨겁지 않아? 다른 친구와 교대하면서 해"하라고 말했다. "아니요, 삼겹살을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라며 고기를 굽고 상을 차리며 즐거워하던 남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촌으로 소풍을 가서 자전거를 탔을 때의 일이다. 여학생의 자전거 체인이 풀려 난감했다. 수업 시간에 눈에 띄지 않던 남학생 하나가 장갑도 없이 기름때를 묻혀가며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주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학생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기질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다 공부만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고 있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의 길이 어떤 길이든 온전히 찾아갈 수 있다. 스승의 날이면 이 시 ‘인디오의 감자’가 더욱 생각나는 이유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그런데도 교육을 100년 앞을 바라보고 설계하는 일은 드물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교육 문제는 더는 자기 일이 아니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교사들은 하루하루 수업과 생활지도와 업무처리 하기에 바쁘다. 정치권은 올바르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정치적인 표만 계산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고 다양한 개성과 능력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 그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모두 다 공부만 해서 의사나 검사, 교수만 존재하는 사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한가? 사회는 각 분야에서 자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하다. 판사, 변호사가 필요하듯이 미용사, 운동선수, 소방관, 경찰도, 가수도 필요하다. 인디오의 감자처럼 저마다의 강점과 기질,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할 때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창의성을 드러내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 다양한 빛깔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인디오의 감자’와 맥락을 같이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방탄소년단(BTS)의 ‘소우주’가 아닐까 싶다. 문학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리듬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우리 각자’가 바로 ‘소우주’라고 말한다. 방탄소년단은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했다. 인디오의 감자처럼 자신의 강점을 유지하며 자신의 길을 갖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회에서 정한 틀만 고집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남준, 석진, 윤기, 호석, 지민, 태형, 정국이가 음악 대신에 학생은 공부가 최우선이니 모두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말을 따랐다면, 부모님들이 그들을 응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방탄소년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음악과 춤이라는 멋진 꽃도 피워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소우주’의 가사처럼,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진 인디오의 감자처럼, 지금, 자기 자리에서, 외로워하지 말고, 각자의 별로,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 70억 개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이, 우리 사회가,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 아름다운 별이고 역사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