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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6. 2023

나의 제자들은 기차를 타고 개마고원도 가고 유럽도 가고

- 김수업 '두 아내'

나의 제자들은 기차 타고 개마고원도 가고 백두산도 가고 유럽도 가기를 바란다

        - 김수열 두 아내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3년의 전쟁 끝에 남과 북은 휴전 상태로 7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평소에 당연히 작은 나라니까 서울과 평양이 가깝겠다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2시간도 채 안 되어 버스를 타고 개성을 다녀오면서 이렇게 가까울 수가 있나 충격이었다. 2시간만 가면 부모님과 아내와 남편과 자식과 형제자매를 만날 수 있고 고향에 갈 수 있다. 바로 앞에 두고도 40년 동안 생이별하고 있다니. 휴전선 철조망 하나로 서로 오도 가지도 못하는 현실이 너무 비극적이다.

  6.25가 다가오면 학생들에게 김수열 시인의 시 ‘두 아내’를 읽어 주곤 한다. 최 씨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난 25살에 홀로 남으로 내려오면서 북쪽 부인과 헤어졌다. 50년이 지난 75살이 되어서야 북쪽의 아내와 50이 넘은 자식들을 만나러 간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남쪽 아내는 남편의 북쪽 아내를 위해 시계와 금가락지와 속옷을 정성스럽게 마련한다. 시를 학생들에게 읽어 주다 감정이 북받칠 때가 많다. 50년의 긴 헤어짐 끝에 2박 3일의 짧은 만남이 끝나면 또다시 헤어져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 이산가족이 안타깝다.


  학생들은 아득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너무 먼 과거의 일이고 남의 일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통일에 관한 수업을 하다 보면 통일하면 경제적인 이점과 단점을 나열하는 학생들이 많다. 입시 대비를 위해 속성으로 논술을 익히다 보니 어떤 논제에 대하여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암기하는 수준이다. 학생들 글을 읽다 보면 장점 몇 개와 단점 몇 개로 나누고 어떤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인지를 따지는 것으로 글의 전개 방식이 비슷하다.      

  우리는 대부분 혼란보다는 안정을 원하고 소란스러움보다는 편안함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남과 북이 통일됐을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혼란들과 불편함, 특히 경제적으로 격차가 심한 북한을 남한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통일을 무조건 싫다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래서 통일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점을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설득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논리와 현실적인 이해득실만 따져서 모든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인간적인 가치를 빼고 이익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면 인간성은 사라지고 동물적 본능만 남는 삭막한 사회가 될 것이다.

  살면서 내가 직접 겪지 않았지만, 누구는 이미 겪었거나 혹은 지금 겪고 있거나 앞으로 누군가는 겪을 수도 있는 아픔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 사람이라도 더 인간적인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공부를 통해 합리적인 사고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같이 길러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통일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와 정치, 이념, 경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풀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정치인의 관점에서, 경제인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정치인은 정치인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고 우리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통일 문제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대화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이 평범한 시민들,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상상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내일 갑자기 전쟁이나 사고가 나서 가족들과 헤어졌다고 가정해 보자고 한다. 50년 만에야 가족의 생사를 알게 됐고 내일 만나게 됐다는 상상을 하며 시를 읽어보자고 한다. 짧은 만남 후 다시 남과 북으로 헤어져 죽을 때까지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꽤 심각한 얼굴이 된다.

  그 심각함을 조금 풀어주려고 ‘선생님과 약속 하나 할래?’라고 웃으며 말한다. 우리 10년 뒤에 ‘개마고원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신나서 소리 지른다. “샘! 10년 뒤에 개마고원 어디서 만나요?’ 아이들의 경쾌한 질문에 수업 분위기가 한결 환해진다.      


  덧붙여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유럽의 젊은이들이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속상했던 경험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유일한 육로, 북쪽이 분단으로 가로막혀 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립되어 버렸다. 다른 나라를 가려면 비싼 비행기만 이용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기차를 타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그만큼 성장하게 한다. 사람은 자기 경험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나의 20대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의 학생들이 20대가 된 세상에서는 꼭 통일이 아니어도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개마고원도 가고 백두산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 자유롭게 중국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유럽도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면 정말 좋겠다. 자유롭게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추억을 나누면 좋겠다. 우리와 다른 삶의 모습을 경험하며 삶이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수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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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내

                            김수열     


광복의 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최씨 할아버지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전쟁통에 아내와 생이별하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남쪽을 선택하고는

의당 죽었으려니 하면서도 신청을 해본 것이

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아내가

스물다섯에 생이별한 그 아내가

오십 년 전 그날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십 줄을 훌쩍 넘긴 오누이 자식들과 함께

남쪽의 지아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오매불망 살아 있다는 것이다     

최씨 할아버지는 오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남쪽의 아내와 감자를 다듬으며

가서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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