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하수 Sep 28. 2023

나는 15살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가?

- 체 게바라 ‘나의 삶’, 김경윤 ‘시래기 인생’

  나는 15살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던가?

         - 체 게바라 나의 삶’, 김경윤 시래기 인생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이면서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 편안한 삶을 버리고 볼리비아의 혁명에 뛰어든 사람. 자작시의 한 구절처럼 밀림에서 홀로 사자처럼 외롭게 죽어간 체 게바라. 체 게바라가 15살에 쓴 시 ‘나의 삶’을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이었다. 시의 화자가 꼭 시인 자신은 아니지만,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성숙하고 내면이 매우 강해 보였다. 온전히 자립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학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있다. 학년 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쉽게 다루는 방법으로 깜지를 쓰게 하거나 청소시킨다. 깜지 쓰기와 벌 청소, 두 방법 다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깜지를 쓰면서 벌 청소를 하면서 과연 아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칠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여 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답이 되지 못했다.

  종이 한 장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명언이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쓰는 것을 깜지라고 한다. 명언을 또박또박 쓰면서 그 뜻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점심을 거르거나 수업 시간에 몰래몰래 깜지를 쓰다가 걸려 혼이 나기도 한다.

  벌 청소도 청소는 더럽고 귀찮은 일이며 사고를 치거나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는 공간인 교실을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학년을 마무리할 때도 “새로운 교실을 쓰게 될 다음 학생들을 위해 기분 좋게 대청소했으면 좋겠다”라는 나의 의도를 학생들은 충분히 공감했고 열심히 거들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대충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은 교실을 사용할 후배와 선배들을 위해 청소를 열심히 했다.     


  교과를 지도할 때도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적 방향성과 가치에 맞는 수업인지,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한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의 상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학생의 문제 행동의 원인을 찾고 도울 부분은 도움을 주어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체격도 크고 분노 조절이 안 되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중2 남학생이 있었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우리 반 남학생들이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1년을 어떻게 버틸지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 남학생은 분노조절장애를 보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흥분하여 폭력적 성향을 드러냈다. 커터칼을 들고 친구 손목을 그어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체구가 작은 친구를 화장실에서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리기도 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유는 가정에서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시도했지만 자기만 억울한 듯이 분노를 표출하여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이어지던 대화 사이로 아버지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발견했다. 학생의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가족 상담을 제안했으나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설득한 끝에 어렵게 가족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사과하게 했고 다른 아이들은 이 학생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가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는 부분을 차분하게 바라보게 하려면 일기를 한 달 동안 써 오게 했다. 학교에 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매일 대화를 나누자고 했는데, 일기를 쓰는 일이 힘들었는지 써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매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에 그 아이는 차라리 체벌하거나 다른 반처럼 깜지를 쓰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깜지를 쓰게 하고 종이만 꽉 채웠는지 확인만 하면 너랑 감정싸움 안 하고 1년을 보낼 수 있지, 그런데 나는 네가 어른이 돼서 사소한 일로 분노를 참지 못해 타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네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네가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행복하니?, 너 자신이 만족스럽니?”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그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학생의 눈을 보며 “나는 깜지 쓰기로 대충 넘기고 싶지 않으니, 네가 일기를 써오지 않겠다면 선생님이 너에게서 관심을 거둘 수밖에 없다. 일기를 써 올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의 무관심을 원하는지, 6교시 끝날 때까지 생각해 보고 결정하렴”이라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온 이 학생에게 “고민 좀 해 봤니?”라고 했더니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이 막 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일기 쓰는 일이 쉽지 않으면 분량을 좀 줄여주면 되겠니?”라고 물으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에 속으로 안심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일기를 쓰고 대화를 나눴다. 가족 상담도 6개월에 걸쳐 받았다. 그 이후 학급에서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았고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 헤어졌다. 3학년이 된 후에 문제를 일으키는 명단에 그 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일기를 쓰는 일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너무 괴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를 읽고 자기 삶을 성찰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 없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학생들에게 제일 많이 제시하는 시가 체 게바라의 ‘나의 삶’이다. 자기 또래의 나이인 15살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체 게바라의 시를 읽으며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자신에 대해서 응시해 보기를 바랐다.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처럼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기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다. 품위라는 것이 비싼 명품 가방을 지닌 부자의 것이 아님을, 이 시를 통해 아이들은 배우고 품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다 보면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방식에 대하여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시와 함께 제시하는 시가 김경윤의 시 ‘시래기 인생’이다. 시를 읽고 이 시의 화자인 ‘시래기’와 ‘자신’의 생활 태도를 견주어 보고 어떻게, 어떤 점에서 다른지 써보자고 제시하면 체 게바라의 시가 조금 어려운 학생들은 쉽게 자기 민낯과 대면한다.

   시를 읽은 학생들은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시래기를 보며 부끄러워한다. 어떤 학생은 자신은 ‘시래기’가 아니라 ‘쓰레기’였다며 언어유희를 이용해 재치 있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냥 성찰문이나 일기를 쓰라고 하면 힘들어하던 학생들도 시를 보며 그 의미를 헤아려보며 재미있어한다.

  우리가 모두 시래기처럼,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테레사 수녀처럼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 수는 없다. 나조차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다만 시들을 읽으며 나의 삶에 대하여 성찰한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나의 삶

                          체 게바라          


내 나이 15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시래기 인생

                                    김경윤     


시래깃국이 식탁에 오른 날이면 입맛이 돈다.

처마 밑 응달진 모퉁이 얼기설기 새끼줄에 매달린

누렇게 마른 시래기 한 줄 뜯어 와서

마른 멸치 한 줌 집어넣고

푹 삶아 끓인 시래깃국

술 취한 날 아침이면 속까지 개운하다.     

푸른 시절에는 잎도 주고 뿌리도 주고

이제 마른 몸뚱이까지 이렇게 주고 가는

시래기 인생이라니!

나도 누군가를 위해

시래기처럼만 살 수 있다면.               

이전 14화 나의 제자들은 기차를 타고 개마고원도 가고 유럽도 가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