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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Aug 02. 2023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 권정생 ‘애국자가 없는 세상’               

            

  수업 시간에 자신의 꿈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꿈을 ‘군인’이라고 말하는 학생에게 “군인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니?” 또는 “군인 중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지?”라고 물어본다. “멋있잖아요. 남자답고”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는 “애국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학생들에게 권정생 시인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소개하며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이고 ‘애국자란 어떤 사람일까?’라고 질문을 해본다. 시 제목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애국자가 없으면 나라를 어떻게 지킬 수 있냐며 이상하다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자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에 관해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하고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한다.      


  오랜 식민지와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피해를 본 역사가 있어 우리는 ‘애국’이라는 말에 울컥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맹목적인 애국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잘못하면 왜곡된 국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진짜 ‘애국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애국을 풀이하면 국가에 대한 사랑이고 애국자는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말의 본질을 놓칠 때가 있다. 국가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잘못된 명령을 내릴 때도 그 국가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게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세계 평화와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벌였다. 이때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미국의 실상을 알리며 정부를 비판하는 강연을 다녔다. 하워드 진이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정부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며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벌인 이유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베트남에 매장되어 있는 고무와 주석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고발했다. 즉 미국의 소수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위선과 실체를 비판했다. 이때 한 소녀가 증오가 가득한 시선으로 하워드 진을 노려보며 “그렇게 싫은 이 나라에 왜 사느냐”라고 말하자 하워드 진은 “내가 사랑하는 것은 조국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은 정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다 권력을 잡은 권력자와 정권을 조국인 것처럼 혼동하는 실수를 종종 한다. 하지만 2016년 온 나라에 울려 퍼진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명확하게 말해준다. 우리는 우리의 권력을 대통령에게 위임했을 뿐, 대통령이든 정부든 그 누구든 국가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국가는 다름 아닌 국민이기 때문이다.         

  

  『논어』의 ‘애지욕기생(愛之慾起生)’이라는 구절을 ‘애국’에 대입해 보자. 진짜 애국은 조국이 잘 살게 하는 것, 바로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다. 국민이 제대로 생명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애국의 본질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가끔 우리나라도 강해져서 미국처럼 주도권을 잡아 다른 나라를 주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군사적으로 튼튼한 나라가 되면 좋지만, 그 방향이 다른 나라 국민을 억압하고 죽인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와 어긋난다.      

  우리나라가 장기 독재를 거치면서 허울뿐인 국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너무 많이 죽이고 국민이 오랫동안 고통의 세월을 견디게 했다. 학생들에게 애국을 강요하고 맹세하게 했던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 안에 진정으로 존중받아야 할 국민과 자랑스러워야 할 태극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생명에 대한 존중과 평화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왕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와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만 있을 뿐이었다.

  유시민은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맹목적인 국가주의적 표현 대신에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수정하여 애국의 방향성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만들기로 제대로 자리매김하였다.

  고작 단어 몇 개 바꾼 것이 쉬워 보이고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단어 몇 개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과 노력은 절대 쉽지 않은 길이었다.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시무시한 독재 권력과 맞서 온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여기 어쩌다 권력을 잡은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 대신에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진짜 목숨 바쳐 애국한 분들이 계신다.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에게 맞서 국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쓴 장태환 사령관, 김병주, 김오랑이 그들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절대 권력자에게 충성하며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참히 학살한 지휘관들과 달리 안병옥 경찰국장은 어쩌다 권력을 잡은 권력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광주시민을 보호했다. 전두환 집권 이후 권력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자들은 애국 훈장을 받았지만, 안병옥은 국가반역자라는 오명을 쓰고 끌려가 고문당하고 몇 년 안 되어 돌아가셨다.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벌어졌을 때, 예비검속으로 제주도민 수천 명을 총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졌다. 제주도 전역에서 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러나 성산포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이라는 글로 명령을 거부하여 제주도민 수백 명을 살렸다. 문형순 경찰서장은 권력자에 대한 충성보다는 진짜 애국을 택했다.          

  만약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문형순 같은 경찰서장이 더 많았다면 제주도민이 그렇게 많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형순 서장은 만주 독립군 출신으로 강직한 인물이었지만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권력자에 충성하지 않았기에 경찰 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후 극장 매표소 직원 일 등을 하다가 쓸쓸히 돌아가셨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총칼로 국민을 위협하고 죽이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애국이라고 믿었던 안병옥 경찰국장과 문형순 경찰서장.


  나는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권정생 시인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학생들에게 낭송해 준다. 어쩌다 정권을 잡은 권력자와 조국을 동일시하며 맹목적 충성을 바친 이들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국민처럼 학생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학생들이 어쩌다 권력을 잡은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기를, 진짜 애국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애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질없는 일인 줄은 알지만, 어린아이처럼 맑고 고운 마음을 가진 권정생 시인의 바람처럼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총과 폭탄과 피가 난무한 전쟁터 대신에 아름다운 무지개와 알록달록한 꽃밭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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