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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03. 2023

선한 사람들의 침묵과 무관심에 대하여

         - 마르틴 니뮐러 ‘그들이 왔다’

  선한 사람들의 침묵과 무관심에 대하여

              - 마르틴 니뮐러 그들이 왔다         

 

  학교에서는 종종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 등이 일어난다. 직접 가해를 한 학생들도 있지만 알면서 모른 척 눈을 감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 방관자가 되기 쉽다.

  우리는 보통 방관자 학생들에게 ‘방관자, 너희들이 더 나빠, 친구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어’라고 꾸짖는다. 동시에 나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 너 자신은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한가?, ‘우리 어른들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당함에 대해서 같이 연대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가?’

  우리 어른들은 내 일이 아니라서, 귀찮고, 불편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불의와 부당함을 못 본 척 지나친다. 우리가 방관자로서의 무책임함을 내비쳤기 때문에,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을 학습하고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학생들과 마르틴 니뮐러의 ‘그들이 왔다’라는 시를 공부한다. 이 시는 독일의 나치 통치에 반대했던 목사인 마르틴 뉘밀러(Martin Niemöller)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찰한 것이다. 내가 공산주의자가 아니어도, 내가 노동자가 아니어도, 내가 미혼모가 아니어도, 내가 실업자가 아니어도, 내가 이민자가 아니어도, 내가 홍콩 시민이 아니어도, 내가 여자가 아니어도 혹은 남자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차별과 억압을 당한다면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정당함에 대해 요구해야 한다. 그 누구라도 인간의 존엄은 존중되어야 한다.  

  개인은 홀로 살 수 없다. 혼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 사회는 무수한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지구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나와 상관없는 소수의 권리와 자유만 침해당하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권리와 자유가 침해당하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곧바로 다른 이를 억압할 것이고 그 사람 다음은 우리 차례이다. 무관심에서 벗어나 주변과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홍콩 시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때, ‘우리나라 일도 아닌데, 웬 걱정이고 오지랖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우리 일도 신경 쓰기 바쁜데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 5월, 빛의 도시가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고립되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과 폭도들이라고 거짓을 말할 때, 그 언론을 그대로 믿고 국민이 광주를 외면하고 있을 때,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푸른 눈의 독일인 기자였다. 그렇게 광주의 진실은 다른 나라 기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자유와 정의를 억압에 저항하는 타국의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억압당하면 그 이웃 나라의 민주주의도 억압당한다. 1970년대 남미의 나라들이 그랬듯이 역사가 증명한다. 한 나라의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한 나라에서 의료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다른 나라도 의료민영화가 빠르게 이루어진다.      


  마틴 루서 킹이 남긴 명언인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이 끼치는 침묵이었다’라는 이 시와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한다.’라고 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한다. 고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은 공동선에 관심 없다는 말이고 부당한 차별과 무시를 당해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 정치가 곧 우리의 일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정치를 떼어놓고 삶을 말할 수는 없다. 정치에 따라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서 정치가 중요하다. 생필품 가격부터 전기료, 선박, 숙박 시설 관리, 교육, 의료 시스템까지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전염병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와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발병했을 때, 전염병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과 실천력을 비교해 보면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K-방역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렀던 서구의 나라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을 배우고자 하는 모습이 증거이다. 아프간 내전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제일 먼저 탈출시켰던 우리 정부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대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생명과 소박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이웃에, 정치에,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는 말이다. 현재의 정치가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면 역사가 된다. 허무하기도 재밌기도 한 것이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에 일어났던 비극적 일들이 드라마에서만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정치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자신의 기득권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바른 신념을 가지고 백성을 위했던 사람들을 모함하고 귀양을 보내고 죽였다. 똑같은 일이 현재 정치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드라마에서는 뻔히 보이는 일을 현실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다. 얼굴과 이름만 달라질 뿐 과거의 일이 현재에 반복되는데 우리 시민들은 언론과 정치에 잘 속는다. 정치에 무관심하다가 피상적인 정보 몇 개만을 가지고 투표하고 또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다가 또 속는다.


  김진혁 PD가 제작한 ‘운전 시 안전띠가 삶과 죽음을 가르듯이 평상시에는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라는 영상을 보면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영상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의 100년 동안의 살인율과 자살률의 통계 수치를 조사하다가 특정 정당의 집권 시기와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보수정당 즉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살인율과 자살률이 올라가고 진보정당 즉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살인율과 자살률이 떨어진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그것은 실업률과 관련이 있었고 정부의 정책에 원인이 있었다. 대부분 미국의 민주당(진보당)은 친서민 정책, 공화당(보수당)은 친기업 정책을 이끈다. 즉 민주당(진보당)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 사회보장제를 확충하고 실업자에게는 실업수당을 지급한다.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기 때문에 실업률은 낮아지고 살인율과 자살률도 낮아진다. 반면에 공화당(보수당)은 친기업 정책이 우선이므로 복지정책을 반대하기에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하고 실업률은 높아진다. 실업자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수치심이 높아지게 되는데 결국에는 자기 삶을 비관하게 되어 자살하거나 살인하게 된다.


  김진혁 PD가 만든 또 다른 영상에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5월 1일 노동절에 ‘당신이 행복한 삶을 유지하고 싶다면 노동조합에 가입해라.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라고 연설한다. 방관자로서 무관심하게 있지 말고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당당히 노조 활동에 참여하라고 말한다.

  오바마가 노동조합을 강조한 이유는 이 영상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할 당시에는 기업가들이 사적 이익을 챙기지 못하도록 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물론 교육과 복지를 위한 시설 확충에도 관심을 기울여 중산층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보수당) 레이건 정부가 집권한 1960년대 이후 노조 탄압이 시작되면서 노동조합이 약화 되자 중산층이 급격히 하위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이유는 20년 동안 임원 임금과 일반 노동자 임금이 무려 200배 가까이 벌어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민주당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문재인, 혹은 진보 쪽 인사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노조 활동을 부추기는 무책임하고 가벼운 언행을 문제 삼았을 것이다. 곧 경제와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언론들과 보수 세력들이 나서서 강력하게 비난했을 것이다. 심지어 빨갱이 혹은 자본주의 붕괴 세력이라고 매도하며 신문의 지면과 뉴스에서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나와 주변과 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경계하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개인에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폭력부터 부당한 집단과 권력에 의해 벌어지는 불의는 물론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까지를 다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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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왔다

                            마르틴 뉘뮐러      

    

나치가 처음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갈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둘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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