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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l 26. 2023

항상 깨어있어라

 - 기형도 ‘전문가’, 유하 ‘오징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여라

            - 기형도 전문가’, 유하 오징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상에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넘쳐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영역 즉 알파고가 넘보지 못하는 인간만이 가진 힘이 뭘까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과 분별력,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이다.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실습생이, 어린 20대 노동자가,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한 업무 환경에서 부당한 지시를 성실하게 따르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자괴감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에 그 구조부터 바꿔야 하는 게 맞지만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와 함께 잘못된 시스템을 인식하고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과 기형도의 ‘전문가’와 유하의 ‘오징어’를 공부한다. 시 ‘전문가’가 좀 어려워서 시 ‘오징어’를 같이 제시해주면 조금 쉽게 이해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다시 말하면 ‘선생님을 만나면 선생님을 죽여라. 부모님도 죽여라, 직장 상사도 죽여라.’라는 말을 덧붙인다.

  선생님의 말이 다 옳을 수는 없어서 선생님이 지시한다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논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따르고 만약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의 지시가 나의 생명과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많은 학생이 의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의 성공기 관련 책을 읽고는 그분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 학생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 같니? 라고 질문을 해 봤다. 당황하던 학생은 책 한 권 본 것이 전부라는 말을 했다. 나는 책 한 권만 가지고 그 사람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6년쯤 지나서일까, 이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 기구의 주요 자리를 차지한 사람의 책이 학생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번에도 이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들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의 언론들 평가는 우리나라의 언론과 다르고, 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책 한 권만 보고 결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라고 언급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이 행한 노력이나 그 대가로 성공을 이룩한 삶에 대해서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특화된 사람들은 많기에 그런 이유로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가정의 행복이 달라진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데 있어, 막연하게 그 사람의 성공 신화만 보고 섣불리 현혹되어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이 사유하는 동물이고 합리적이어서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적 사고를 거쳐 합리적 판단을 내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인간은 생각보다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 다양한 정보를 모으고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꽤 감정적이며 대중심리에 휩쓸린다.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적은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더 많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의 학력과 지위, 유명세, 또는 성공담만을 보고 그 사람을 무조건 인정하거나 신뢰하기도 해서 더 문제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가능한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인간적인 판단을 할까? 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섣불리 믿거나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다.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각도로 생각을 해 보고 생각이 다른 타인들과 토론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자기 생각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이런 고민 속에서 토론 수업을 한 달간 진행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한 학급의 학생 수가 42명이나 되어 많은 학생을 데리고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토론 수업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 김진혁 PD의 영상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이다. 일명 복종 실험으로 알려진 이 영상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판단을 쉽게 하는지 보여준다.  이 실험은 길을 가던 평범한 사람들(나이, 성별을 망라한다)에게 비교적 쉬운 아르바이트를 제시한다. 건물 방 안에서 교사 역할을 맡아 옆 방에서 학생이 문제를 하나씩 틀릴 때마다 전류가 흐르는 버튼을 누르면 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압이 높아지고 옆 방에 있는 사람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게 된다. 전압 볼트는 15V, 30V, 45V, 60V, 120V로 높아져 고통의 강도는 점점 세진다.

   비명을 듣고 놀란 참가자들은 놀라서 잠깐 멈칫했지만, 그 옆에 하얀 가운을 입은 전문가로 보이는 사람이 ‘괜찮을 거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책임지겠다’라고 하자 지시에 따른다. 10명 중에서 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험이 끝난 후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

   반면 붉은털원숭이는 버튼을 눌러야 바나나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동족을 아프게 하는 그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결국 15일 동안 굶어야 했다. 이 실험의 결과를 놓고 인간이 붉은털원숭이보다 못하다고 인간성을 모독하면 안된다. 중요한 점은 붉은털원숭이 옆에는 비인간적인 명령을 내리는 전문가(권위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복종 실험’의 목적은 ‘왜 인간들이 그토록 끔찍한 전쟁과 학살이라는 명령을 수행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실험 결과 70% 가까이 되는 많은 사람들이 비인간적이고 불합리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권위자의 말에 따랐다. 권위자가 책임지겠다고 말 한마디 하자 너무도 쉽게 책임이라는 부담을 벗어던졌다. 실험 설계자는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명령을 내리는 전문가와의 관계를 단호히 끊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통 우리는 나쁜 일인 줄 알지만 간단한 행위 하나만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유혹 앞에서, 겁이 나는 갈등 상황에서, 나보다 권위 있고 힘을 지닌 존재가 ‘내가 책임질게, 괜찮아’라고 얘기하면 순종하는 경향이 있다. 10대들의 집단 폭행 사건과 군대에서의 집단 폭행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가해자들이 전부 악마는 아니며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을 하면 그 말 한마디에 놀랍게도 쉽게 이성적 판단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우리가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고 우리의 인간적 존엄성은 사라진다.

   영상을 본 후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니?’라고 묻자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는 ‘다른 사람이 아플 것 같아서 안 누를 거예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솔직하게 ‘부끄럽지만, 저도 옆에서 괜찮다고 하면 버튼을 누르고 돈을 받았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맹신, 맹목적 추종이다. 아무리 대단한 스펙을 쌓은 사람이고 대단한 권력과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이고 지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되다. 누군가를 맹신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의 부하가 되어 ‘빛이 들지 않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벽돌을 나르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은 찬란한 빛에 현혹되기 쉽다.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사람이든.

 ‘의심하라!’, 이 말은 바로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말과 같다. 오징어가 대낮처럼 밝게 빛나는 집어등 불빛에 현혹되어 죽음인 줄도 모르고 몰려가듯이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잃게 된다.  나 하나 힘으로 모든 사회의 거짓과 싸울 수 없으나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힘이 모여 세상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대통령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라. 다툼이 사유를 만들 듯이 거기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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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기형도


이사 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 담장을 박살 내곤 했다


그러나 애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 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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